[토요판] 임진영·염상훈의 앙성집 짓기
⑨ 반외부공간 만들기
한옥의 처마·대청·툇마루와 같이
안과 밖 사이 만든 ‘전이 공간’
집에서 누리는 경험 폭 달라져
창을 내는 방식도 풍경 좌우해
아파트는 단열 탓 창 크기 작아
낮은 창, 높은 창, 천창 등 활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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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벽을 통해 안과 밖의 경계를 줄인 앙성집은 한옥 처마처럼 건물의 안과 밖 사이에 바닥 데크를 깔아 전이 공간을 만들었다. 염상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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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시골 큰집 가는 길목에는 콘크리트로 지은 정자가 있었다. 모양새는 볼품없었지만 지평선이 보이는 논밭 한가운데에서는 최고의 놀이터였다. 대들보에 끈을 걸어 그네를 타기도 하고, 콘크리트 처마에 숨은 제비집을 구경하기도 했다. 마루에 누워 떠다니는 구름을 하염없이 보던 여름날의 기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허름한 그 콘크리트 정자는 왜 그리 좋았을까? 그늘을 만들어주는 지붕과 앉거나 누울 마루가 전부이지만 처마와 기둥은 논밭의 지평선을 액자 속 그림처럼 담아냈다. 말 그대로 자연을 바라보는 쉼터였다.
기둥과 지붕이라는 최소의 요소로 구조물을 만들고 자연의 풍경을 끌어들이는 정자는 서양의 파빌리온과도 비슷하다. 평면에 벽을 많이 세우지 않고 활짝 열어둔 앙성집도 파빌리온과 정자의 성격을 담고 있다. 차이라면 집을 감싼 원형의 담이 프라이버시를 지켜준다는 것이다. 보호하되 최대한 열어두는 집, 그것이 앙성집의 핵심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바람, 비와 눈, 계절의 변화를 느끼려는 집이라, 벽으로 튼튼하게 감싼 견고한 집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 셈이다. 그러나 벽을 없앤다고 끝은 아니다. 벽을 세우지 않는 대신 그 경계를 다른 방식으로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중간 영역을 만들어주고 창을 내는 방식을 통해 집의 안과 밖을 바라보는 시선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다.
앙성집도 중간 영역 만들기로
한옥의 현대적인 실험을 이어가고 있는 건축가 조정구 구가도시건축 소장은 한옥의 디엔에이(DNA)로 세가지를 꼽는다. 마당, 처마, 평면의 단순함이다. 특히 마당과 집 사이의 처마가 있는 공간이야말로 현대 한옥이 가져야 할 원형이라고 강조한다. “그늘을 만들 뿐 아니라 활동하거나 마당을 바라볼 수 있는 중간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폭이지만 지붕이 덮인 이 외부 공간은 한옥의 대청이나 툇마루의 성격과도 비슷하다. 지붕으로 보호되고 기둥으로 영역을 만들면서 안과 밖의 중간 성격을 띤다.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 사이의 이런 반 외부 공간을 건축에서는 ‘전이 공간’이라고 부른다. 겹겹이 쌓은 페이스트리 빵이 공기를 품어 더 부드럽듯이, 공간도 켜를 중첩해 경험을 풍성하게 하는데, 한옥에서는 이러한 공간의 중첩이 잘 드러나곤 한다. 우리가 한옥에서 경험하는 평온함은 대부분 이런 공간에 앉아 안에서 밖을 바라볼 때 극대화된다. 그래서 반 외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집의 성격이 달라지고 집 안과 바깥에서 누릴 수 있는 경험의 폭도 달라진다.
반 외부 공간을 만드는 방식은 다양하다. 처마나 캐노피(비를 피하기 위해 현관 앞에 튀어나온 부분, 간이가림막)를 깊게 낸 뒤 아래에 나무 데크를 깔기도 하고, 일부러 건물의 채를 나누어 사이 공간을 두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벽과 기둥보다 지붕이 큰 구실을 한다. ‘나무 정자’(pergola)처럼 지붕 없이 틀만 짜두는 것으로도 중간 영역을 만들 수 있다. 완벽하게 보호된 공간은 아니어도 기둥의 높이와 두께에 따라 영역이 만들어진다.
앙성집은 이 두 가지 모두를 활용하기로 했다. 먼저 지붕을 연장해 2m를 뻗어 내었다. 긴 건물을 따라 2m×14.3m의 반 외부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마당과 집에 접하는 중간 영역이 생겼다. 깊은 처마는 직사광선을 차단하고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는 기능도 한다. 이곳에 작은 의자 하나를 두거나 해먹을 달아매거나 혹은 방석을 하나만 깔아도, 이곳에서 하늘과 마당을 하염없이 볼 수 있다. 직각으로 별채를 연결하는 지붕은 연결 부분을 비워내었다. 연결된 얇은 보(기둥 사이를 잇는 건축물의 뼈대)만으로도 지붕은 ‘나무 정자’처럼 영역을 만들어준다. 무거운 지붕보다 가끔 이렇게 열린 지붕이 좋을 때가 있다. 지붕을 따라 바닥에 나무 데크를 이어서 연결한 것도 같은 이유다. 굳이 벽을 세우지 않아도 지붕과 보, 바닥 재료만으로도 중간 영역이 만들어진다.
흥미롭게도 이렇게 중간 영역을 만들어주면 안과 밖의 경계가 흐릿해질 때가 있다. 안에서도 바깥으로 연결된 것 같고 밖에서도 실내와 이어진 것 같다. 사실 이 부분은 건축 전공자인 우리 눈에 너무나 중요했는데, 바닥과 천장의 면이 안에서 밖으로 그대로 편평하게 뻗어 나가도록 하는 것이었다. 전면 유리창이 있을 뿐 집의 안과 밖이 하나의 천장, 하나의 바닥 아래 놓이는 것이다. 아주 작은 디테일이지만 시각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아름답다. 물리적으로 이를 해결하는 데에는 설비와 단열을 해결하기 위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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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성집은 천창과 벽면의 창을 맞닿게 해 뒷마당과 하늘이 보여주는 자연을 실내에 끌어들이도록 했다. 염상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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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마당은 전면 유리로
한옥에서 창을 통해 바깥 풍경을 끌어들이는 것을 ‘차경’이라고 한다. 건축가 최욱 원오원 아키텍츠 소장님은 적절하게 만들어진 창을 ‘사람의 눈과 같은 영혼의 은신처’에 비유했다. 창의 형태나 모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바라보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아파트와 사무실의 창들은 법규가 정한 최소의 높이, 규격화된 제품의 크기로 결정된다. 창이 적을수록 단열에 유리하기 때문에 창을 내는 크기는 언제나 인색하기도 하다. 하지만 창을 내는 방식을 조금만 달리하면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창은 바깥 풍경을 어떻게 바라보게 할 것인가, 무엇을 바라보게 할 것인가를 말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건축가가 지은 집에는 낮게 깔린 창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렇게 바닥에 창을 만들면 앉아서 땅에 자라는 풀들을 바라보게 된다. 좌식 생활에 익숙한 집이라면 앉았을 때의 눈높이로 창을 내기도 한다. 높은 창을 내면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모서리 창을 만들면 시선이 분산되어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천창은 하늘과 별을 보기 위한 로망이다. 풍경 대신 은은한 빛만 들이는 창도 있다. 천창을 수직으로 내면 직사광이 아니라 은은한 간접광이 들어온다. 하늘에서 빛이 떨어지는 공간의 분위기는 말할 수 없이 평화롭다. 창을 서로 엇갈리도록 내면, 서로의 움직임을 짐작하면서도 간섭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비교적 전면 유리가 많은 편인 앙성집이지만 처음에는 창을 내는 방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앞마당에는 전면 유리로 완전히 열어두는 대신, 뒷마당은 벽으로 조금씩 나누어 일부분만 보여주도록 했다. 화장실 위치를 바꾸기 전까지는 거실 끝에 모서리 창을 두기도 했다. 창의 방향을 이렇게 고민한 이유는 창을 만들어 내부를 활짝 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밖을 바라보는 창의 역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어 했다. “자연은 이미지가 아니라 공간이다. 액자 속의 납작한 자연이 아니라, 자연에 들어가고 싶다면 내 주변이 자연으로 둘러싸여야 하지 않을까?” 창을 한 방향으로 내면 자연은 그림처럼 다가오지만, 창을 두 방향으로 내면 우리가 자연으로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앙성집의 천창은 벽면의 창과 맞닿아 있다. 천창은 하늘을 보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뒷마당과 하늘을 실내에 끌어들이는 방식이기도 했다. 화장실의 창은 뒷마당의 조경을 보여주고, 별채의 전면 창은 거실과 대각선으로 시선이 이어진다. 여러 방향으로 시선이 이어지고 확장하는 덕분에 앙성집은 내부 면적은 작지만 마당까지 넓게 쓰는 집이 되었다. 그리고 옆 마당에는 완벽하게 벽으로 막아, 숨어들 공간도 잊지 않았다. 집에는 사는 사람의 열망이 담기기 마련인데, 부모님과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하늘과 마당에 열려 있는 집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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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영은 건축저널리스트이자 기획자다. 건축전문지 <공간> 편집팀장을 지냈고, 현재는 <마크> <도무스> 등에 글을 쓰며 건축물 개방 축제인 ‘오픈하우스서울’을 기획하고 있다. 남편인
염상훈은 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이자 건축가다. 움직이는 파빌리온 ‘댄싱 포레스트’ 등을 설계했다. 부모님과 함께 쓸 ‘앙성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과 좋은 공간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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