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임진영·염상훈의 앙성집 짓기
⑦ 비일상적인 공간 만들기
층고는 공간감의 주요 결정 요소
2.3m 높이 아파트에 익숙한 우리
높은 천장은 주택 지을 때 로망
2.7m와 3.5m 사이에서 고민
담도 같이 높아져 결국 2.7m로
전면 모두 열려 있어 개방감은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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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모형을 만들어보고 층고와 규모의 비교를 해보면서 결정한 앙성집 모형. 염상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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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복이 주는 경제성과 편의는 꽤 만족스럽다. 표준 범주로 분류된 치수에 맞춰 스타일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맞춤복을 주문할 때의 만족감은 세세한 부분에서 드러난다. 허리선을 잡아주거나 체형을 보완해주는 등 내 몸에 맞춰줄 뿐만 아니라, 내가 바라는 스타일과 디테일도 반영된다. 그런데 기성복이든 맞춤복이든, 옷을 고를 때 중요한 것은 같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다.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 그리고 언제, 어떤 장소, 어떤 상황에서 입을 것인지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선택에 큰 도움을 준다. 집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그 집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게 효과적이다. 그곳에서 보내는 하루 일과는 어떨지, 휴식을 위한 곳인지,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 주로 무엇을 하며 보낼지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앙성집은 요양과 재충전을 위한 곳이다. 휴식을 위해서는 하늘을 바라볼 수 있고, 외부에 열려 있어서 자연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어야 했다. 서울 같은 도시의 소음과 분주함, 일상의 노동이 필요한 살림집에서 벗어나 최소의 살림만 갖춘 집이었으면 했다. 우리가 여행에서 만나는 호텔과 펜션 등의 공간들이 편안한 이유는 바로 이런 비일상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설계한 원형집도 이 비일상적인 공간감과 비례감을 만드는 것에서 출발했다. 건축에서 그 공간감을 결정하는 것은 층고, 벽의 열고 닫힘, 평면의 구성, 천창의 존재 같은 것이다.
공간의 변화를 만드는 층고
허허벌판에 놓인 집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원형 담과 티(T)자형으로 가로지른 원형집의 기본 얼개가 정해지고, 우리는 세세한 결정에 나섰다. 원형집의 핵심은 건물과 원형 담이 일체화해서 이어진다는 것이다. 내부 공간은 2개의 방 외에는 실의 구분 없이 열린 평면을 구성했다. 가로로 뻗은 건물에는 거실과 방이 이어져 있고, 전면창을 두어 마당을 향해 완전히 열어 뒀다. 뒷마당을 향해서도 부분적으로 전면창을 두어서 거실은 양쪽으로 바깥마당에 이어진다. 담으로 보호되어 있지만 집의 양쪽으로 바깥마당을 두면서 내부는 안이면서 바깥과 같은 개방감을 갖는다. 독채처럼 분리된 또 다른 방은 직각으로 이어지면서 다시 마당을 나눈다. 덕분에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원형 공간에 크기도 다르고, 방향도 다르고 바닥 재료에 따라 느낌도 다른 3개의 마당이 생겼다. 어느 방향에서나 원형의 부드러운 곡면을 마주할 수 있는 것도 마당을 특별하게 하는 장점이었다. 안정감과 개방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계획안이었다. 이 기본 얼개를 바탕으로 먼저 조율해야 할 것은 층고, 즉 천장까지의 높이와 비례감이었다.
건축가 켄민성진 소장님의 에스케이엠건축사사무소(SKM Architects) 사무실은 넝쿨이 우거진 녹색 정면만큼이나 인상적인 내부 공간으로 꾸려져 있다. 1층에 들어서면 6m에 이르는 회의실이 손님을 맞는다. 2개 층에 달하는 공간에 들어서면, 머리끝이 확장되는 느낌마저 받는다. 층 4개는 거뜬히 들어갈 수 있는 높이를 두 층으로 사용하는 과감한 층고의 실현은 공간의 퀄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켄민성진 소장님의 건축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건축은 면적이 아니라 체적(부피)으로 이야기해야 하며, 층고가 높을수록 창의력도 높아진다”는 켄민성진 소장님의 말은 높은 층고가 사람들에게 고양된 공간감을 전해줄 수 있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주거에서도 2층 높이의 공간은 매력적이다. 주택의 로망이기도 하다. 건축가 김승회 교수님의 주택 연작에는 언제나 ‘상승하는 공간’이 담겨 있다. 1층에서 2층까지 시원하게 열린 중심 공간을 두고, 이를 계단으로 오르면서 공간의 스케일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2층에 다다르면 높은 창을 두어 하늘로 시선이 닿게 하는 세심한 조율을 하기도 한다. 김승회 교수님의 작업실이기도 한 여주주택에서도 높은 층고를 가진 거실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높이의 방들을 조직했다. ‘집들의 집’과 같은 개념이다.
높이의 변화는 우리 몸이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공간 요소다. 높은 층고만큼이나 다락방의 존재가 우리를 설레게 하는 이유다. 2.3m 높이의 아파트와 사무실의 기능적인 층고에 익숙한 삶을 고려하면, 층고에 대한 고민은 다른 공간감을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집을 짓기로 했을 때 우리 역시 높은 층고에 동의했다. 우리를 감싸는 공간이 높으면 높을수록 개방감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앙성 원형집의 콘셉트가 담과 일체화된 건물이라는 것이다. 집의 일부가 담으로 뻗어나가며 마당을 구성하는 콘셉트로 인해 건물의 층고와 담의 높이가 함께 결정된다. 그것은 마당의 아늑함, 그 경계를 가를 요소였다. 3.5m와 2.7m의 경계에서 우리는 결정 장애의 첫번째 허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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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과 담이 하나로 이어지는 원형집의 모습. 층고를 높이면 담도 높아지기 때문에 층고를 최대한 높이지 않아도 전면의 비례감을 통해서 개방감을 유지했다. 염상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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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 남지만, 선택과 집중 필요
생각해보면,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공간’(空間)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말 그대로 비어 있는 사이, 벽과 지붕으로 이뤄진 빈 체적(부피)이다. 추상적이고 비물질의 대상을 설명하다 보니, “도대체 공간이 뭐야?”라는 타박도 심심치 않게 받는다. 건축가의 언어는 구조물이 둘러싼 내부의 빈 체적(부피)을 중심으로 설명하지만,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벽과 지붕이 만드는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집은 몇㎡(평)’라고 설명하는 게 익숙했지만, 사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3차원의 공간이다. 같은 면적도 실내 공간의 높이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는 의미다. 또 같은 부피도 창을 어떤 크기로, 어느 방향으로 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비어 있는 공간이 어떤 감각을 전해주느냐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와 경험이 결정된다.
공간으로 소통하는 건축가와 면적에 익숙한 의뢰인 사이의 소통을 위해, 모형과 투시도는 매우 효과적인 도구이다. 축소된 모형을 통해 실제 입체적인 공간을 짐작할 수 있는 도구다. 건축가에게는 설계 과정에서 미세한 조정을 통해 공간을 실험해볼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다양한 크기와 규모로 모형을 만들어 비례감을 살펴보고 실제 공간에 들어간 듯 상상해보며 의견을 나누는 경험은 공간의 성격을 정할 때 매우 유용하다.
앙성집의 층고를 높일 때, 거실에서 바라보는 담의 높이는 확실히 높게 다가왔다. 아늑함을 위해 두른 담이 답답함의 이유가 될 수도 있었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남편은 벽을 뚫는 방식에 따라서 집과 벽의 일체감을 유지하면서 개방감을 확보할 수도 있는 방법도 제시했다. 모형을 비교하며 우리는 미묘한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층고의 차이가 아니라 비례감의 차이였다. 첫 설계안이 주는 날렵한 느낌이, 납작하면서도 넓게 뚫린 거실 전면의 명쾌한 비례감에 있었다는 걸 말이다. 층고를 높이는 순간, 전면의 비례감도 달라졌다. 거실 내부에서 밖을 바라보는 프레임의 비율이 달라지는 걸 의미한다.
전면이 모두 열려 있는 방식이기 때문에 층고가 높지 않아도 개방감은 확보될 수 있었다. 꼭 층고가 높은 게 능사가 아니라, 바깥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어떤 비례감을 가질 것인가도 색다른 공간감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남편의 말에 공감했다. 무조건 열린다고 개방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며, 닫히는 게 있어야 열리는 게 보인다는 의견은 설득력이 있었다. 앙성집에서는 층고 2.7m를 유지하면서 내부 시선을 분산하고 조율한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층고와 다락방에 대한 미련은 남았지만, 선택과 집중은 필요했다. 점점 무언가가 덧붙여지기 전에 우리는 다시 우리가 세운 원칙을 돌아봐야 했다. 합리적인 구성, 그리고 비일상적인 공간감을 동시에 만족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포기하는 결단력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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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영은 건축저널리스트이자 기획자다. 건축전문지 <공간> 편집팀장을 지냈고, 현재는 <마크> <도무스> 등에 글을 쓰며 건축물 개방 축제인 ‘오픈하우스서울’을 기획하고 있다. 남편인
염상훈은 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이자 건축가다. 움직이는 파빌리온 ‘댄싱 포레스트’ 등을 설계했다. 부모님과 함께 쓸 ‘앙성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과 좋은 공간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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