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임진영·염상훈의 앙성집 짓기
⑤ ‘네 덩이 집’ 계획안
임대용 방을 만들고 싶다는
부모님 요구에 나온 ‘네 덩이 집’
거실·안방·게스트룸 2개로 나눠
독립돼 있으면서도 복도로 연결
벽체 늘어나면서 높아진 예산
쓸 돈 분명히 해야 집짓기 더 수월
계획 잠시 멈추고 원점에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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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덩이 집’의 모형. 네 덩이 집은 거실, 안방, 2개의 게스트룸을 각각 독립된 상자로 만들고 유리 복도로 연결했다. 작은 공간의 답답함을 줄이기 위해 층고를 높이고 천창을 두어 하늘을 볼 수 있다. 염상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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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본격적인 계획안이 나왔다. 햇빛이 잘 들고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집을 만들어달라는 부모님의 요구를 담은 계획안이다. ‘나의 건축가’인 남편은 창가에 앉아 비와 바람을 바라볼 수 있는 상자를 만들어달라는 내 바람도 놓치지 않았다. 여기에 부모님의 중요한 요구가 더해졌다. 상주하는 집이 아니니 평소 쓰지 않을 때는 방을 일부 임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가족과 친지들만 쓰는 게 아니라, 경우에 따라 가끔 와서 머무는 사람들을 위해 방 하나 혹은 2개를 임대해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거실, 안방, 2개의 게스트룸을 가진 집, 사적인 마당을 만드는 것과 주인과 손님이 독립적인 출입이 가능한 구조가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기댈 곳 없는 허허벌판에 어떻게 사적인 마당을 만들까? 담으로 쌓아 집을 구축할 수도 있고, 조금 느슨하게 열린 집을 만들 수도 있다. 벽으로 담을 치면 아늑한 마당을 만들 수 있다. 반면 멀리 외부의 풍경과 자연에 시선이 닿기 어렵다. 아늑하게 보호된 공간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담을 두르지 않아 시선이 막히지 않은 마당을 만들 것인가.
아늑하면서도 독립적인 공간
남편의 첫 번째 선택은 담벽을 두르지 않는 것이었다. 대신 필요한 4개의 방, 즉 거실, 안방, 2개의 게스트룸을 각각 독립된 상자로 만들어 분리한 뒤, 각 동의 배치만으로 사적인 마당을 만들었다. 일부라도 자연과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분리된 4개의 독립된 방은 복도로 이었다. 거실, 안방, 그리고 게스트룸 2개가 각각 독립된 집 모양의 상자이면서 마당을 중심으로 4개의 상자를 연결한 하나의 집이 되었다. 아늑함과 독립성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속성이 4개의 상자로 둘러싸인 집을 만든 것이다.
각 창의 방향을 달리해 시선을 분리하는 배려를 했다. 거실과 안방은 마당을 향해 전면창이 나 있고, 게스트룸은 마당이 아닌 바깥쪽을 보는 방식이다. 창문이 마주하지 않아 주인과 손님의 시선이 겹치지 않는다. “각 건물의 넓은 창으로 인해 내부 공간은 하나의 넓은 공간으로 시각적으로 연결된다. 덕분에 실제보다 2배 이상 넓은 공간감을 연출할 수 있다. 내부와 외부의 복합적인 관계를 만들어내고 싶었다.”(염상훈)
반전은 복도에 있었다. 거실 상자와 안방의 상자를 잇는 복도 양면을 유리로 마감해 유리 복도를 두었다. 그러니까 아늑한 거실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집의 안과 밖으로 열린 복도를 지나는 것이다. 담을 없애고 건물이 등을 돌린 대신, 외부와 마당에 완전하게 열려 있는 이 복도를 보는 순간 나는 흔들렸다. ‘아무리 복도라도 이렇게 완전히 노출해도 괜찮을까’ 하는 마음과 ‘너무나 스릴 있고 흥미롭겠다’ 싶은 마음이 다 있었다. 온전히 집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복도를 지날 때는 마당과 밖으로 다 열려 있는 유리 상자라니. 예상치 못한 공간의 경험이 감각을 깨우는 기분이었다.
또 개별 상자의 공간이 크지 않기 때문에 층고를 높여 좀 더 공간의 부피를 크게 했다. 2.3m의 실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높은 층고가 주는 해방감은 집의 로망이기도 하다. 높은 층고를 만들되 사선으로 꺾은 지붕 위로는 천창을 내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을 보기 위한 창이다. 제각기 다른 방향을 가진 사각뿔의 집, 모든 것이 완벽했고 설레는 계획안이었다.
필요에 따라 임대를 줄 수 있는 공간은 수요에 따른 아이디어였다. 앙성에 온천을 하러 오는 분들이 제법 있었다. 여관이나 관광호텔이 있었지만, 간혹 다른 공간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방 하나만 썼으면 하는 주변 분들이었다. 부모님이 머물 때나 머물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집을 나눠 쓸 수 있을까? 공간을 나눠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신중해야 하는 일이다. 독립성도 있어야 하고, 보안과 안전의 문제도 있다.
집을 네 덩이의 상자로 분리하는 순간, 독립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독립된 벽을 열고 닫는 경우에 따라 각 공간을 쓸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생겼다. 모두 다 열어 쓰거나, 거실과 안방, 게스트룸 한 개만 쓰거나, 혹은 거실과 안방만 쓰는 경우들이다. 게스트룸 하나는 출입구를 아예 외부에 두었고 게스트룸에는 모두 개별 화장실을 포함했다. “각 공간은 복도로 이어져 있지만 개별 동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독채로 인식될 수 있고 사용자 모두 독립성을 얻을 수 있다.”(염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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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덩이 집’의 평면도. 마당을 중심으로 4개의 방이 모여 있는 네 덩이 집은 경우에 따라 복도를 모두 열어 모든 공간을 다 쓰거나, 일부를 막아 독채로도 쓸 수 있다. 담 없이 건물만으로 마당을 만들어 유리복도를 지날 때마다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다. 염상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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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숫자와 마주하다
현실적인 수요를 반영하면서도 과감한 계획안을 만든 후 우리는 조영묵 씨앤오건설 대표님께 자문을 구했다. 조영묵 대표는 건축가 조병수 소장님의 동생분이자, 조병수 소장님의 과감한 아이디어가 담긴 건축을 완성도 있게 실현해온 분이다. 과연 이 집은 현실성이 있을까. 감당할 수 있는 시공비의 범위일까.
“3억 정도는 예상해야겠네요.”(2015년 기준) 우리는 처음으로 구체적인 숫자를 마주했다. “이 집을 짓는 데 3억 정도 든다면 나쁘지 않죠. 저라면 짓겠어요.” 그렇다. 만약 살 집이라면 나쁘지 않은 금액이다. 비싼 땅 대신 시골 땅을 선택해 땅값에 대한 부담은 적었으니, 공사비만으로 불가능한 금액은 아니다. 문제는 이 집이 세컨드 하우스라는 부분이었다. 과연 3억이라는 예산을 들여서 두 번째 집을 짓는 게 필요한 것인가? 완전히 귀향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판단 아래 부모님과 우리는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했다.
물론 일의 순서가 바뀌었다. 집을 지으려면 건축가를 만날 때 예산의 범위를 먼저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의 범위에 따라 집을 풀어내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쓸 수 있는 예산과 추가로 가용할 수 있는 예산을 명확히 했을 때, 집을 짓는 과정은 보다 명확하고 수월해질 수 있다.
너무나 맘에 드는 계획안이지만 과감한 안이기도 했다. 집을 동으로 분리하면 할수록 비싸다. 벽체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집을 경제적으로 지으려면 벽체의 면적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덩어리를 분리하면 할수록 벽체의 양은 늘어나고 단열에 대한 고려도 커진다. 그래서 집의 외곽은 단일하게 구축하고 겹집(방이 한 줄로만 배치된 것이 아니라 앞뒤로 겹쳐 배치된 집)을 만들수록 시공비가 낮아지고 열효율도 높아진다. 그 합리성이 극대화된 것이 아파트의 평면이다. 거실창을 통해 하나의 풍경을 바라보고, 거실을 중심으로 모든 방이 둘러싸인 평면.
아마도 우리가 부모님과 함께 경험하고 싶었던 공간감은 그와 달랐던 것 같다. 한옥이 우리에게 주는 평온함은 보이는 형태보다 공간의 중첩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부에서 바깥을 바라볼 수 있고, 마루가 있고, 마당을 내다볼 수 있는 공간이 켜켜이 포개지면서, 우리는 공간이 깊이를 갖는 걸 느낄 수 있다.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도 있다. 공간의 풍부함과 경제적 합리성을 두고 무엇을 정답이라고 하긴 어렵다. 적어도 앙성집에서는 비 오는 마당을 바라볼 수 있고, 마당에 앉아 하늘을 바라볼 수 있고, 방 안에서 별을 볼 수 있는 공간을 꿈꾸고 싶은 것이다.
집짓기 계획은 잠시 멈췄다. 본격적으로 부모님에게 필요한 집은 무엇인지 원점에서 묻기로 했다. 두 번째 집에 어느 정도 예산을 쓸 것인지, 어떤 공간에 살고 싶은지, 다른 공간을 경험하는 것이 왜 좋은지, 그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낼지 상세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가족에게 종신고용된 건축가 남편은 다시 새로운 설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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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영은 건축저널리스트이자 기획자다. 건축전문지 <공간> 편집팀장을 지냈고, 현재는 <마크> <도무스> 등에 글을 쓰며 건축물 개방 축제인 ‘오픈하우스서울’을 기획하고 있다. 남편인
염상훈은 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이자 건축가다. 움직이는 파빌리온 ‘댄싱 포레스트’ 등을 설계했다. 부모님과 함께 쓸 ‘앙성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과 좋은 공간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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