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10 17:25
수정 : 2019.07.11 14:13
권도연
샌드박스네트워크 크리에이터 파트너십 매니저
생방송에 대해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릴 적 장면은 연말 가요대제전이다. 그날은 어린 눈에 보기에도 평소와는 다르게 특별해 보였다. 굵직한 가수들이 브라운관 너머 총출동해 한해의 히트곡을 쏟아냈고, 팬들은 너도나도 집결해 풍선으로 팬심을 뽐냈다. 거기에 당황하며 눈동자가 흔들리는 사회자와 일촉즉발로 보이는 음향 환경까지. 아무튼 생방송 너머의 현장이 범상치 않은 초긴장 상황이라는 걸 절로 느낄 수 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 생방송은 ‘라이브 스트리밍’이라는 단어로 완전히 이미지를 탈바꿈했다. 실시간으로 영상을 송출한다는 사전적 의미는 동일하다. 하지만 그 주체가 더이상 방송국에 머물러 있지도, 특별히 연예인이나 사회자가 등장해서 분위기를 이끌어가지도 않는다. 그저 친근한 모습의 1인이 등장해 컴퓨터 앞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청자들은 실시간 댓글을 통해 거의 보조 출연자 역할을 한다. 같은 시간, 같은 화면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 지금의 라이브 스트리밍은 ‘현장감’보다는 ‘참여성’의 의미를 지녔다.
지난달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는 방탄소년단(BTS)의 공연을 보기 위해 세계 12만명의 팬들이 모였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본 라이브에이드 콘서트가 열린 바로 그 장소다. 영화가 끝나고 퀸의 압도적인 공연 실황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보곤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그곳에 한국의 아이돌그룹이 이틀 연속 전석 매진 신화를 만들어냈다.
더 놀라운 점은 따로 있다. 방탄소년단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에 참여한 사람이 현장의 12만명으로 그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날 네이버는 스타 실시간 개인방송 앱 ‘브이 라이브’를 통해 공연을 독점으로 생중계했다. 라이브 스트리밍 당시 최다 동시 접속자 수는 14만명. 그것도 일반적인 인터넷 라이브 방송과는 다르게 1인당 무려 3만3천원의 유료 시청 비용을 지급하고도 참여한 시청자의 숫자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엄청난 매출이다.
이들이 단순히 방탄소년단 콘서트의 현장감을 느끼기 위해 이만한 비용을 치르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 음악 팬들에게 웸블리 스타디움의 의미, 그 의미있는 순간에 참여하고 싶은 팬심, 함께하고 있다는 마음이 결국 구매로 연결된 것이다. 이날 라이브 스트리밍에 참여한 방탄소년단 팬들은 실시간 댓글을 통해 현장의 벅찬 마음을 함께 나눴다. 아직 기술적인 한계는 분명 있었지만, 퀸의 콘서트 못지않게 역사적인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라이브 스트리밍은 1인 미디어 방송의 경계를 또 한 차원 넘어서서, 이제 우리 삶의 물리적 거리감을 완전히 허무는 기술로 자리 잡는 중이다. 일방적으로 현장을 전달받던 생방송 환경에서, 시청자가 원하는 환경 속에 실시간으로 존재하며 감정을 소통한다. 지난해에는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며 하루 10시간 공부하는 모습을 라이브로 켜놨던 채널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화면 속 크리에이터는 그저 자기가 할 공부만 묵묵히 할 뿐인데, 팬들은 그곳에서 수없이 많은 채팅을 나누며 새로운 유행어를 만들고 재미있게 방송에 참여했다.
‘실시간’은 앞으로의 미래 모습을 훨씬 더 급격하게 바꿔놓을 것이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최근 앞다퉈서 실시간성에 대한 기능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가상현실 속에 새롭게 소셜 네트워크 공간을 만들어, 언제든 육체에 제약 없이 가상의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친구와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을 제시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하고 가상 공간에서 친구들과 만나서 자유롭게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다. 영화 <아바타>가 머지않아 보일 만큼 놀라운 상상이다.
과연 우리는 미래에 어떤 것까지 실시간으로 하게 될까? 물론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흐리는 이 개념은 기존 커뮤니케이션 단절이라는 양면성을 내포하기도 한다. 하지만 점점 개인화, 맞춤화되어가는 인터넷 공간에서 커뮤니케이션은 훨씬 더 큰 세상을 견고하게 구축해 나갈 것이다. 고립이라기보단 밀착이다. 브라운관 너머 가요대제전을 바라보던 나의 밀착감보다 방탄소년단의 콘서트를 라이브로 본 팬들의 밀착감이 훨씬 높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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