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부의 예타 면제 사업들은 공간적 정의의 실현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지역 주민들의 자립과 협력을 통해 발전을 촉진하기보다 토건기업과 지역 지주들에게 투자·투기의 기회를 제공할 것처럼 보일 뿐이다.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 며칠 전 야당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중에 고성이 오가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문제의 발단 가운데 하나는 현 정부를 ‘촛불 청구서에 휘둘리는 심부름센터’라고 비아냥거렸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품위 없는 막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촛불 시민혁명의 계승자임을 자임하는 현 정부로서는 오히려 자랑스러울 수도 있다. 2년 전 촛불을 들고 광장과 거리를 가득 메웠던 시민들은 부정의하고 무능한 정권의 퇴진과 정의로운 새 정부의 건설을 외쳤다. 시민들의 외침은 마침내 그 뜻을 이루었다. 새 정부의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의를 구현할 것임을 천명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평등, 공정, 정의,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고 맥박이 뛰어오르는 단어들이 아닌가?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현 정부가 촛불 시민혁명의 정부가 아니라는 소리가 들린다. 무엇 때문에 2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이런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는가? 정의를 구현하려는 정책들이 구체제의 난관에 부딪치면서 생긴 갈등 때문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정책들이 정의를 포기하거나 이에 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일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정부의 힘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용과 노동조건은 개선되질 않고 있다. 임금과 소득 격차는 계속 확대되고 빈곤층을 위한 주거복지비는 삭감되었다. 하늘을 뒤덮은 미세먼지가 현 정부의 탓은 아닐지라도 실효성 있는 단기 처방을 찾기 어려울뿐더러 그 원인을 찾아 대처하려는 장기 계획도 없어 답답한 실정이다. 과연 현 정부가 과거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를 실현하려는 정부인가에 대한 의문은 또 다른 정책에서도 묻어 나온다. 정부는 얼마 전 국가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면제하는 지역개발 사업들을 확정·발표했다. 대부분 고속도로, 철도, 국제공항, 항만 등으로 구성된 토건 사업을 아무런 사전 타당성 조사 없이 시행할 수 있게끔 했다. 물론 지역균형발전 정책들은 사회 정의를 공간적 측면에서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심각한 지역 격차는 기회의 공간적 불평등을 초래했고, 중앙정부의 하향식 지역개발 정책 과정들은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무시한 불공정한 것이었으며, 그 결과 국토 공간의 불균형과 부정의는 점점 더 심화되어왔다. 그동안 지역 문제를 간과해온 정부가 공간적 부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지역균형발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정말 반가운 일이다. 지역균형발전 정책들은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과 기회를 증대시킬 것이다. 또한 국가 경제발전이 수도권 집중 투자만으로는 한계에 달한 상황에서 발전의 새로운 추동력을 지역에서 찾으려는 정책은 분명 바람직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예타 면제 사업들은 공간적 정의의 실현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지역 주민들의 자립과 협력을 통해 발전을 촉진하기보다 토건기업과 지역 지주들에게 투자·투기의 기회를 제공할 것처럼 보일 뿐이다. 또한 이 사업들이 지역 유권자들을 의식한 중앙 정치권력의 표몰이 수단처럼 보인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지역에 무작정 투자를 한다고 해서 지역균형발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저명한 지리학자 닐 스미스에 의하면, 지역불균등발전은 자본 축적 과정에 내재된 균등화와 차등화 경향의 변증법으로 이해된다. 자본은 투자 기회의 확보와 상품시장의 확대를 위해 세계를 휘젓고 다니면서 지구 공간을 평평하고 균등하게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얻어진 이윤이나 경제적 부는 차별적으로 소수 집단과 중심 지역에 집중된다. 정부가 예타 면제 사업들을 시행하면서 지역이 골고루 혜택을 누릴 것이고, 이를 통해 지역균형발전과 공간적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분명 착각이다. 물론 정의에 대한 여러 주장이 서로 다투면 더 큰 힘을 가진 주장이 이길 것이다. 그러나 지역균형발전과 공간적 정의를 강변한다고 해서 정책의 효과가 그렇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진정성을 잃어버린 정의는 정의라고 할 수 없다. 언젠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번역서가 100만부 이상 팔리면서 돌풍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심지어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만든 정당의 이름이 민주정의당이었다. 그러나 정의는 유행어가 될 수 없고, 권력을 위한 헛된 명분이 되어서도 안 된다. 현 정부가 정말 촛불 시민혁명을 계승하고자 한다면 이 땅에 참된 의미의 정의가 맥박 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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