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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2.14 21:28 수정 : 2007.02.15 09:20

강금실 여성인권대사

우리 안에 들어오는 아시아 갑절로 풍성해지는 한국 문화

일전에 경상북도 어느 마을에 갔더니 마을에 계신 분께서 걱정을 털어놓으셨다. 그 마을에 이미 스무 명이 넘는 베트남 여성들이 결혼하여 들어와 사는데, 말도 안 통할 뿐 아니라 남편들이 외출을 꺼려 집안에 갇혀 있다시피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아이도 낳고 또 그 아이들이 학교도 가야 하는데, 한 마을의 식구이며 주민으로서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어울려 사는 일이 해결해야 할 절박한 숙제가 되었다며, 면장을 찾아가서 언어교육 문제를 의논하려 한다고 하셨다.

국제결혼 축복으로 받아들여야

이 말씀을 들을 때만 해도 ‘그래 문제가 심각해, 해결해야지’ 하는 추상적인 생각 이상을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내가 국제결혼에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에 대해 본격적이고 구체적인 인식의 변화를 갖게 된 것은 지난달 베트남을 찾으면서부터다. 나는 그때 베트남의 법무부 차관과 여성동맹 위원장을 만났고, 한국 남성과 이혼한 여성의 친정에 가서 친정어머니를 비롯한 식구들과 그 가운데서 귀염받으며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여성의 아들을 만났다. 또 여성동맹의 호찌민지부 국제결혼지원센터에서 한국요리를 배우는, 이제 막 결혼한 신부들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등의 간단한 한국말을 익히고, 불고기, 김밥, 김치, 오징어볶음을 만들어보는 그 베트남 아가씨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눈빛은 총명하게 반짝거렸다. 그들은 이제 곧 가게 될 한국과 한국의 신랑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생활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베트남 법무부 차관과 여성동맹 위원장은 베트남 아가씨들이 한국에 가서 행복하게 잘살기를, 그를 위해 한국이 언어와 문화교육을 지원해 주고, 또 남편 될 한국 남성들도 사전에 베트남을 이해할 기회를 갖도록 적극 지원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베트남에서는 오랜 전쟁과 힘든 역사적 체험을 겪다 보니 여성들이 매우 강인해져, 결혼하면 남편이 꼼짝 못할 정도라고 한다. 하노이나 호찌민의 새벽 출근길 행렬에서도 오토바이를 타고 대로를 당당하게 질주하는 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짧은 체류 기간에 나는 강인하고, 씩씩하고, 그러면서도 친절한 베트남 사람들을 사랑하게 됐고, 나아가 존경심마저 갖게 됐다. 이 아름답고 총명한 베트남 아가씨들이 우리와 한 식구가 돼 미래의 한국의 한부분을 책임질 여성들이 된다는 것이 기쁘게 여겨졌다.

그렇다! 문제는 가슴으로 느끼는 공감과 사랑이다. 서로 모르는 사이에 만나서 선뜻 사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빠지게 되는 오류가 고정관념들이다. 가난하면 사람도 나보다 못한 것처럼 멸시한다든지, 나와 다른 문화 또는 나와 다른 생김새를 거부하거나, 격리해 불이익을 주려 한다든지 하는 행동들이 바로 우리의 단단한 고정관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꽉 잡고 지켜내는 것인 양 행동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공감하려 노력하고, 나에게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또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줄 때 그 관계가 넓어지고 다양해지며 그만큼 나도 성숙하고 크게 된다. 개인은 물론 나라도 융성할 때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로이 찾아오고 교류할 때인 것이다.

현지서부터 공인기관 지원 필요


국제결혼을 통해 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가 우리 안에 들어온다. 우리의 역사, 문화는 물론 성격의 스케일까지 갑절로 커지고 견고해질 터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무궁한 잠재력을 지닌 베트남 여성들을 비롯한 아시아 여성들이 한국에 와서 결혼의 행복을 누리고 미래의 한국을 형성해 가는 주인공들이 될 다음 세대를 키워갈 수 있도록, 그들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요청하는 부족한 부분들을 우리는 기꺼운 마음으로 채워주어야 하겠다.

서로가 이해하고 느끼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일인가. 무엇보다 이들에게 미래의 조국인 한국과 한국의 남편들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사실들을 알려주고 정확한 판단을 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지금 정부는 국내에 들어온 국제결혼 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앞서 베트남 등 현지에서부터 국제결혼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공인된 기관의 지원이 필요하고, 비자를 받는 짧은 기간에라도 서로의 문화와 언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절차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강금실 여성인권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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