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0.12 05:00
수정 : 2018.10.1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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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상류계층을 중심으로 자산의 상속·증여가 늘어나면서 날 때부터 이미 미래의 운명이 결정된 ‘세습사회’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사진은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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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② 자산, 세습사회의 문
지난해 상속·증여 67조8890억
종부세 내는 미성년자 167명
미성년자 증여 2016년 비해 50%↑
국민소득 대비 상속·증여 비중 증가
2010년대 4~5%…실제론 8~9% 추정
자산 이전이 불평등 확대 핵심열쇠
부동산가격 상승이 주요 요인 작용
“생산활동 대신 자산수익 유인 커지면
경제활력 떨어뜨리는 악순환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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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상류계층을 중심으로 자산의 상속·증여가 늘어나면서 날 때부터 이미 미래의 운명이 결정된 ‘세습사회’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사진은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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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9명.
2016년 말 현재 우리나라 ‘만 10살 이하 집주인’ 수다. 해당 연령대 인구수에 견주면 어림잡아 600명당 한명꼴이다. 이 중 350명이 서울 강남3구에 살고, 5채 이상을 가진 사람만 25명이다. 심기준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통계청에서 받은 자료에 담긴 숫자들은 재능이나 노력 대신 핏줄과 태생이 운명을 결정하는 ‘세습사회’의 문턱에 선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경고한 ‘중세로의 회귀’라 할 만하다.
■ 하루에 1860억원꼴로 상속·증여 국세청의 잠정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증여재산가액은 67조8890억원. 상속 32조1874억원과 증여 35조7016억원을 합친 금액이다. ‘가만히 앉아서’ 부모나 조부모 등의 재산을 넘겨받은 규모가 하루 1860억원꼴이라는 얘기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심기준 의원실을 통해 받은 국세청의 ‘2013~2017년간 미성년자 상속 및 증여’와 ‘미성년자 종합부동산세 결정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19살 미만 미성년자의 증여재산가액은 1조279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부동산이 3375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금융자산(3281억원)과 유가증권(2370억원)이 뒤를 이었다. 연령별로는 ‘만 0~10살’이 4811억원으로 46.8%를 차지했다. 지난해 미성년자 증여 규모는 2016년(6849억원)에 견줘 50%나 증가했다. 2016년 기준으로 미성년자 167명이 종합부동산세를 냈다. 종부세를 낸 미성년자는 2013년 136명, 2014년 154명, 2015년 159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상속·증여 규모도 덩달아 늘어나기 마련이다. 문제는 201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국민소득 대비 상속·증여 비중이 4~5% 수준으로 과거보다 높아졌다는 점이다. 그나마 이 숫자는 공시지가를 토대로 작성돼 있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는 연령별 사망률 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국민소득 대비 상속·증여 규모가 이미 8~9%대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역사상 상속·증여 비중이 가장 높았던 20세기 초 서유럽 나라들(20% 선)엔 미치지 못하지만 증가 속도는 빠른 편이다.
■ 자산이라는 이름의 ‘절대반지’ 이런 현실은 자산이 한국 사회의 불평등 확대에 핵심 열쇠를 쥐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새로 벌어들인 몫(소득)보다 이미 축적된 몫(자산)의 비중이 커지는 건 이른바 ‘피케티 비율’이라 불리는 민간자산(부)/소득 비율 추이에서 잘 나타난다. 한국은행 대차대조표상의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산을 국민순소득(NNI)으로 나눠보면, 2010년 5.48에서 지난해엔 5.76까지 높아졌다.
주된 원인은 부동산 가격 상승에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최근 자료를 보면,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서울의 ‘소득 대비 집값 비율’(PIR)은 11.2로, 단순 비교만으로도 우리나라 민간자산/소득 비율을 크게 앞질렀다. 가구의 연간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평균 11.2년을 꼬박 모아야 서울에 있는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런던(8.5), 도쿄(4.8)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정확한 자산 규모와 분포를 알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자산 불평등이 확대되는 추세라는 데 전문가들은 대부분 동의한다. 국세청 상속세 자료를 분석한 김낙년 교수는 2013년 현재 우리나라 자산 상위 0.1%, 1%, 10%가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각각 9.2%, 26%, 66.4%로 추정했다. 상위 10%만 놓고 봤을 때, 미국(77%)과 영국(70%)보다 낮고 프랑스(62%)보다 높은 수준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상위 10%에서 영국과 미국에 근접하는 속도로 집중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자산 소유의 불평등은 자산 보유에서 벌어들이는 소득 격차를 낳는 직접적 원인이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국세청 자료를 이용해 계산해보니, 2016년 기준으로 부동산임대소득과 이자소득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0.7%, 90.8%였다. 특히 배당소득(14조863억원)의 94.4%는 상위 10%에 집중됐다. 상위 1%가 같은 해 벌어들인 임대소득은 1인당 평균 3억5712만원이나 됐다. 올해 8월 현재 전국에 집 20채 이상을 소유한 임대사업자는 전체 임대사업자의 2.5%인 8691명이다.
■ 악순환의 고리…불평등 구조의 확대 재생산 앞으로도 자산은 더욱 빠르게 몸집을 불려갈 게 분명하다. 통계청의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2016년 소득 5분위(상위 20%)의 가구당 처분가능소득은 평균 9264만원으로 1분위(하위 20%) 809만원의 11.4배다. 고소득 계층의 여윳돈은 언제든지 자산으로 탈바꿈해 더 많은 소득을 낳는 황금거위가 된다.
자산이 지배하는 사회는 결국 현재보다는 과거가 미래를 좌우하는 세상이다. 김낙년 교수는 연간 상속(증여) 규모와 저축액을 장기에 걸쳐 누적해봤을 때, 우리나라 전체 부의 축적에서 상속 등의 이전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대 이후 과거보다 크게 높아져 42%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일을 해 번 돈을 저축하며 부를 늘려가던 사회가 더 이상 아니란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박복영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는 “고령화·저출산과 맞물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마당에 생산적인 활동 대신 자산을 굴려 수익을 올리려는 ‘지대추구’ 유인이 커지면 경제의 활력을 더욱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자산의 대물림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을 결정짓는 냉혹한 심판정에 가깝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상층 자산계급이 자산의 대부분을 독점하고 상속·증여를 통해 불평등 구조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흐름이 한국에도 이미 출현했다”고 평가했다.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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