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10 17:50
수정 : 2019.03.11 14:14
20년 전 공무원 군가산점 폐지 논란이 한창일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왜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투는 걸까.’ 핵심은 다른 데 있다고 생각했다. ‘군입대 문제를 어째서 개인과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의 문제로 간주하는 걸까.’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는 20대 남성 자체가 화제가 되고 있다. 진단들이 나온다. 페미니즘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른다, 자신을 약자·피해자로 착각한다, 보수화되고 있다, 공정성에 대한 감각이 약간 이상하다, 파시즘 같아 걱정스럽다 등등. 민심 이반에 수지타산을 맞추면서 누군가는 헛다리를 짚고 누군가는 어떻게든 한몫 챙기려 한다.
문제는 이대로 두다가는 사회적 갈등이 확대재생산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을까. 일단 넘쳐나는 오진부터 식별해야 할 것이다. 여당 일부에서는 20대 남성이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아서라고 진단했다. 틀렸다. 불행히도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은 거의 없다.
몇몇은 청년들이 보수화돼서 그렇다고 한다. 그렇지만 20대 남성의 보수정당 지지를 정치의식 보수화로 해석하는 것은 (기계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기계적이다. 첫째, 모든 20대 남성이 다 그런 게 아니다. 둘째,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전체적인 문제다. 셋째, 보수화라기보다는 ‘탈이념화’된다는 지적이 더 맞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통일을 원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소원’이어서가 아니라 내 삶에 긍정적 영향이 있어서가 아닌가. 그리고 진보-보수 따지는 정치 이전에 미세먼지 잡아줄 행정이 더 시급하지 않은가. 요컨대 ‘정치’라는 것에 대한 전에 없던 감각이 곳곳에서 움트고 있다는 점을 헤아려야 한다.
다만, 성별 대립의 문제. 이것은 실제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곤란한 문제다. 비평가나 정치인 탓만 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각종 적극적 조처가 역차별이라는 불평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흔히들 ‘백래시’라면서 허위의식에 의한 반동적 움직임이라고 폄훼하지만 정작 그들은 사회적 불평등 구조에서 자신이 이미 약자이자 피해자였다고 호소한다.
이것이 허위의식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문제라고 본다. 그러나 사람들은 참·거짓을 가지고 세상과 자신의 문제를 보지 않는다. 세상에 팩트는 넘쳐나고 심지어 ‘포스트-진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실과 진실을 직접적으로 다룰 줄 안다. 논쟁이 가열될수록 애초에 가지고 있던 세계관이 흔들리기보다 외려 더 확고해진다. 작은 불씨가 화염으로 치솟는 건 한순간이다.
우리는 과연 진보한 걸까. 지난 20년 동안 어떤 정치세력도 이 문제를 효과적으로 통할하지 못했고 합리적인 대표가 되지도 못했다. 그러는 사이 한국 사회는 많이도 변했다. 자본집약형 산업구조가 틀을 갖췄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늘어났으며 묵혀 있던 페미니즘의 목소리는 분출됐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우리는 달라지는 세계에 대해 여전히 과거의 문법을 적용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정치에 대한 통념과 더불어) 젠더 체계가 전환되고 있지만 정작 거기에 적응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엄한 곳에서 되찾아야 할 권리 이전에 새로운 세계에 걸맞은 언어, 문법, 규범, 윤리 같은 것일지 모른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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