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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06 18:41 수정 : 2019.01.06 19:08

김성윤의 아포리아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어느 토론회 자리였는데 정년퇴임하신 은사께서 본인을 ‘독립연구자’라고 하시길래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드물기는 하지만 내 주변에서는 자신을 독립연구자라고 알리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재미난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은 ‘무소속’을 대체하는 꽤나 그럴듯한 말인 동시에, 어떤 점에서는 한국의 지식 생태계가 특정한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징후가 아닐까.

나는 내가 제1소속으로 밝히는 연구소 외에도, 학회와 학술단체협의회라는 곳에도 발을 걸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곳처럼 이곳에서도 위기라는 말은 일상적인 수준을 넘어 아예 진부한 말처럼 돼버렸다.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그 위기는. 별다른 해법 없이 걱정과 진단만으로 이어져온 게 지금 상황이다. 지금 상황? 학술운동에 젊은 세대는 줄다 못해 만나기조차 힘들어졌고, 강사법 등등으로 가장 첨예한 담론은 지식인이 어떻게 먹고살 것인지에 관한 문제가 되었다. 인적으로든 물적으로든 학술운동의 생태계가 고갈돼가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는 무수히 많은 두가지 세계들로 구성돼 있는 것 같다. 남성과 여성, 건물주와 임차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기성세대와 청년 등등이 그런 세계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보통 하나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른 세계의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자연히 이 비대칭적 세계들에서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자기 세계의 삶에 대해 잘 모른다는 확신을 갖곤 한다.

작년에 주변 사람들과 함께 꾸린 ‘독립연구자 네트워크’ 역시 그런 문제의식의 소산이었겠지 싶다. 젊은 연구자들에게 기존의 진보 지식인 운동의 플랫폼은 꽤 낡아 보였다. 중장년층 남성 문화의 성향 체계도 맞지 않았고, 학회 기반으로 연구재단 같은 제도권에 매여 있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으며, 어떤 때에는 대학 내 일자리를 도구화하기보다는 거기에 얽매여 있는 느낌도 강했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의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가 찾은 말이 바로 ‘독립연구자’였다. 물론 이 말은 여전히 불명확하다. 과거의 젊은 연구자들이 2000년대 어떤 잡지 이름처럼 새로운 ‘모색’을 하는 차원이었다면, 우리는 학문적 이치와 경제적 생계까지도 동시에 ‘궁리’하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소속 없음, 제도권 바깥, 진보적 대안 추구, 연구안전망 등 다양하고 이질적인 지표들이 우리들을 가로지르고 있다.

독립연구자 지향성. 생각해보면 인문사회과학계에만 있는 현상만은 아니기에 나는 이 흐름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2000년대 ‘대안공간’과 다른 결을 생산하는 ‘신생공간’의 청년예술가들, 기존 시민사회운동의 조직문화와 체계를 거부하는 독립활동가들, 그리고 우리 독립연구자들까지.

우리같이 기성 체계에 적응하지 못하/않거나 떨어져나간 이들을 두고 잔여적 현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언어로는 상징화될 수 없는 이 목소리들이 도처에 깔려 있고, 심지어 이들 없이는 진보적 감각과 개념을 유지하거나 생산해낼 수 없다면? 차라리 독립연구자를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기 위한 하나의 ‘문턱’으로 보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지식, 과학, 연구자, 관행과 습속 등등 우리가 분명하다고 믿었던 거의 모든 것들을 다시 써내려가야 할 시점이지 싶다. 어디 학술운동만 그렇겠는가. 우리 주변을 바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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