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어느 주간지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20대들의 반(反)다문화 성향이 제일 강하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노무현 정부 이래로 가장 다문화주의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에게서 가장 반다문화적인 정서가 관찰되다니. 이제는 그 누구도 우리가 단일민족이라 상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순혈주의가 물러났음에도 인종주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난민 혐오, 이슬람 혐오, 중국동포 혐오, 심지어 다문화주의 자체에 대한 혐오. 실제로 이들의 말을 경청해보자. “그래도 우리 민족, 우리 국민이 우선이어야 하지 않나요?” 난민 혐오 현상 등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다문화주의라고 말들은 하지만 실상 우리 사이에서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더 강하다는 증거다. 가령 우리가 ‘숨겨진 교과 과정’이라 부르는 비공식적 교육 과정들이 대표적이다. 수업시간 중 교사가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라든가, 티브이(TV)는 물론 유튜브 등 각종 미디어에서 유포되는 민족주의적 담론들 같은 것 말이다. 그 어느 곳을 보더라도 다문화주의가 민족주의를 대체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 사회의 다문화 교육은 여전히 실패하고 있는 셈이다. “근데 걔네 진짜로 이상하지 않나요?”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오늘날 20대들은 이전까지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타자’들과 조우해오고 있다. 이주배경 청소년부터 외국인 유학생과 교환학생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우리가 확인하는 바에 따르면, 그들과 접촉하면 접촉할수록(몇몇 예외적 경우를 제외한다면) 인종주의가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해진다. ‘일본 애들은 뭔가 음험해’ ‘중국 애들은 책임감이 없어’ 등등. 그들 개인의 사정이라든가 커뮤니케이션 코드라든가 하는 것들에 대한 숙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특정한 낙인과 결론을 위해 타인의 생생한 경험들을 짜맞추면서 인종주의를 살찌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우리가 낸 세금을 왜 다문화들이 다 받나요?” 인종적 소수자들을 세금 축내는 존재로 이해하는 역차별 논리에 와서는 토론이 더 어려워진다. 심지어 이들은 자신이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단지 다문화 정책이나 난민 운동에 반대하고, ‘저들’을 위한 혜택 때문에 자기 자신 및 우리 민족이 피해를 보는 문제를 호소할 따름이라는 이야기이다.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인종주의! 이런 식으로 이들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아픈 ‘더 적은 민주주의’의 신봉자로 전락한다. ‘나에게도 비슷한 혜택을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저들의 혜택을 없애라’는 요구가 제출되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우리 사회의 다문화주의와 그 실천들이 결국 어떤 끝자락에 서게 된 것이 아닐까. 과거의 인종주의가 다문화주의 윤리 덕분에 생물학적 인종주의 상태를 벗어난 것 같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문화적 특성’으로 상대를 낙인찍는 신인종주의라는 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어느 누구도 자신이 인종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국가인권위원회는 한국의 인종차별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고하는 기현상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지난 십수년간의 교훈은 다문화주의가 제 발로 혼자 설 수 있는 윤리나 이념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듯하다. 정치경제적 몫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그리고 다문화적 문화 논리에 상응하는 사회정치적 윤리를 동반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러니들만 만나게 될 것이다.
칼럼 |
[김성윤의 아포리아] 다문화주의의 끝자락 |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어느 주간지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20대들의 반(反)다문화 성향이 제일 강하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노무현 정부 이래로 가장 다문화주의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에게서 가장 반다문화적인 정서가 관찰되다니. 이제는 그 누구도 우리가 단일민족이라 상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순혈주의가 물러났음에도 인종주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난민 혐오, 이슬람 혐오, 중국동포 혐오, 심지어 다문화주의 자체에 대한 혐오. 실제로 이들의 말을 경청해보자. “그래도 우리 민족, 우리 국민이 우선이어야 하지 않나요?” 난민 혐오 현상 등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다문화주의라고 말들은 하지만 실상 우리 사이에서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더 강하다는 증거다. 가령 우리가 ‘숨겨진 교과 과정’이라 부르는 비공식적 교육 과정들이 대표적이다. 수업시간 중 교사가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라든가, 티브이(TV)는 물론 유튜브 등 각종 미디어에서 유포되는 민족주의적 담론들 같은 것 말이다. 그 어느 곳을 보더라도 다문화주의가 민족주의를 대체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 사회의 다문화 교육은 여전히 실패하고 있는 셈이다. “근데 걔네 진짜로 이상하지 않나요?”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오늘날 20대들은 이전까지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타자’들과 조우해오고 있다. 이주배경 청소년부터 외국인 유학생과 교환학생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우리가 확인하는 바에 따르면, 그들과 접촉하면 접촉할수록(몇몇 예외적 경우를 제외한다면) 인종주의가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해진다. ‘일본 애들은 뭔가 음험해’ ‘중국 애들은 책임감이 없어’ 등등. 그들 개인의 사정이라든가 커뮤니케이션 코드라든가 하는 것들에 대한 숙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특정한 낙인과 결론을 위해 타인의 생생한 경험들을 짜맞추면서 인종주의를 살찌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우리가 낸 세금을 왜 다문화들이 다 받나요?” 인종적 소수자들을 세금 축내는 존재로 이해하는 역차별 논리에 와서는 토론이 더 어려워진다. 심지어 이들은 자신이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단지 다문화 정책이나 난민 운동에 반대하고, ‘저들’을 위한 혜택 때문에 자기 자신 및 우리 민족이 피해를 보는 문제를 호소할 따름이라는 이야기이다.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인종주의! 이런 식으로 이들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아픈 ‘더 적은 민주주의’의 신봉자로 전락한다. ‘나에게도 비슷한 혜택을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저들의 혜택을 없애라’는 요구가 제출되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우리 사회의 다문화주의와 그 실천들이 결국 어떤 끝자락에 서게 된 것이 아닐까. 과거의 인종주의가 다문화주의 윤리 덕분에 생물학적 인종주의 상태를 벗어난 것 같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문화적 특성’으로 상대를 낙인찍는 신인종주의라는 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어느 누구도 자신이 인종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국가인권위원회는 한국의 인종차별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고하는 기현상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지난 십수년간의 교훈은 다문화주의가 제 발로 혼자 설 수 있는 윤리나 이념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듯하다. 정치경제적 몫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그리고 다문화적 문화 논리에 상응하는 사회정치적 윤리를 동반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러니들만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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