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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10 20:00 수정 : 2018.10.15 18:59

지난달 22일 순천기적의도서관에서 진행된 순천어린이문화포럼에 참석한 하리카에 게이코 도쿄어린이도서관 이사장이 어린이도서관에서 핵심적으로 운영되는 북토크 프로그램을 시연하고 있다. 북토크는 간략한 책의 줄거리와 작가 이야기를 다루고, 특정 주제 관련 책까지 함께 소개한다. 순천기적의도서관 제공




지난달 22일 순천기적의도서관에서 진행된 순천어린이문화포럼에 참석한 하리카에 게이코 도쿄어린이도서관 이사장이 어린이도서관에서 핵심적으로 운영되는 북토크 프로그램을 시연하고 있다. 북토크는 간략한 책의 줄거리와 작가 이야기를 다루고, 특정 주제 관련 책까지 함께 소개한다. 순천기적의도서관 제공

〔양선아 기자의 베이비트리〕

‘순천어린이문화포럼’에서

일본의 여러 사례 선봬

조명 끈 깜깜한 곳에서 ‘북토크’

줄거리·작가 이야기에 관련 책까지

감질나게 들려주고 궁금증 이끌어

우리 아이가 어떻게 하면 책과 친해질 수 있을까? 텔레비전이나 유튜브 동영상은 넋을 놓고 보면서 책만 꺼내면 딴청 부리는 아이를 지켜보며 부모는 답답함에 속을 끓인다. 부모만 그런 것이 아니다. 좋은 책을 구비해놓고 아이들이 방문하기를 기다리는 어린이도서관 사서들도 요즘 아이들의 독서 문화가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박소희 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 이사장은 “아이들이 도서관에 와서 책을 볼 때 학원과 학원 가는 중간에 잠시 시간을 때우러 오는 경향이 있다”며 “그마저도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도서관을 찾지만, 고학년 어린이들을 도서관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전남 순천기적의도서관에서 열린 ‘순천어린이문화포럼’에서는 영상 매체와 게임에 빠져드는 아이가 느는 상황에서 책을 매개로 북토크를 하고 그림연극을 보여주고 그림책 원화를 감상하도록 하는 일본의 사례가 공유돼 한국 부모와 도서관 관계자로부터 관심을 모았다. 그림책을 즐기는 특별한 방법, 일본 사례와 국내 사례를 정리했다.

“무대는 뉴욕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검은 고양이는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 고양이예요. 길거리에서 강아지에게 쫓기고 있었는데, 팅거 선장이라는 사람이 고양이를 데리고 가서 같이 살게 된 이야기인데요….”

하리카에 게이코 도쿄어린이도서관 이사장이 무대 위 의자에 앉아 조용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본 어린이도서관에서 매일 또는 한달에 한번 진행하는 ‘북토크’의 시연 모습이다. 이사장 뒤로 보이는 큰 화면에는 <검은 고양이 제니>의 표지와 함께 고양이 그림이 보인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조명을 꺼 깜깜한 곳에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운다. 옛날에 호롱불 하나 밝혀놓고 엄마나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다. 하리카에 이사장은 간략한 책 줄거리와 작가 이야기, 이 책을 정말 좋아했던 한 아이의 이야기까지 흥미롭게 이끌어갔다.

일본의 ‘북토크’는 이처럼 사서가 책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한 뒤 청중에게 줄거리와 작가 이야기, 관련 책까지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살아있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어린이를 독서로 안내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국내 어린이도서관에서도 많이 진행되는 ‘책 읽어주기’ 프로그램이나 ‘동화 구연’과는 어떻게 다를까?

세계 최초 지히로 그림책 미술관

‘그림은 보지 않아도 됩니다’ 슬로건

자연과 더불어 즐기다 들르게

딱딱한 종이에 연속으로 그린 그림

상자 모양 틀 속에 포개어 넣고

1장씩 내보이면서 극적으로 이야기

순천·판교·부산·광주 등

국내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 운영

금산 그림책 마을엔 북스테이도

정봉남 순천기적의도서관 관장은 “국내에서는 사서나 자원봉사자가 책을 골라 직접 읽어주지만 북토크에서는 이야기를 감질나게 들려주고 궁금하면 직접 아이가 찾아 책을 읽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또 동화 구연은 캐릭터를 살리거나 몸짓을 크게 살려 구연자의 해석이 중요하다면, 일본의 ‘북토크’에서는 과장된 목소리나 몸짓은 최소화하고 책을 방점에 둔다고 설명했다. 정 관장은 “일본 도서관 탐방을 가보니 어린이는 물론 어른조차도 북토크를 좋아해서 퇴근 후 부랴부랴 달려와 참여하는 걸 봤다”며 “책이나 도서관에 낯선 사람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어 (책이나 도서관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어린이도서관에서는 전국의 도서관 직원, 교사, 자원봉사자, 학생들 가운데 20여명의 연수생을 선발해 2년 동안 ‘스토리텔링 강습회’를 열어 ‘이야기 들려주기’ 훈련을 시킨다. 정 관장은 순천기적의도서관에서도 내년께부터 사회적 독서 형태의 하나인 ‘북토크’ 프로그램을 시도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 도서관에서도 북토크 프로그램을 운영해봐도 좋고, 부모가 집에서 자녀나 동네 아이들을 불러모아 북토크를 해보면 어떨까.

그림책을 특별하게 즐기는 두번째 방법으로는 그림책 미술관, 그림책 도서관, 그림책 마을 방문이 있다. 이날 포럼에서는 1977년 세워진 세계 최초의 그림책 미술관인 지히로 미술관(치히로 미술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과 1997년 개관한 아즈미노 지히로 미술관이 소개됐다. 지히로 미술관은 반전·반핵 인권운동가이자 세계 어린이들의 평화와 행복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던 이와사키 지히로를 기념해 만들어졌다. 지히로 미술관은 세계 24개국 2만7500여점에 이르는 그림책 원화를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에서는 원화 전시, 교육 보급, 그림책 문화 지원 활동, 조사연구 등을 한다. 지히로 미술관은 신기하게도 ‘그림은 보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운영된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아이와 부모가 충분히 자연을 즐기고 시간이 남으면 그림을 봐도 된다는 철학을 표방한다. 다케사코 유코 지히로 미술관 부관장은 “한때 그림책에 나오는 그림은 미술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했다”며 “그림책 미술관을 연 뒤 그림책의 그림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많은 사람이 인식하게 되고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림책을 크게 만드는 큰그림책은 아이들에게 더욱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사진은 광주 바람개비도서관에서 관계자들이 큰 그림책을 완성한 모습이다. 정봉남 관장 제공

국내에도 이러한 콘셉트와 비슷한 그림책 도서관이나 그림책 마을이 있다. 2014년 개관한 순천 시립 그림책도서관은 어린이 전문 도서관에 ‘그림책’이라는 주제를 특화한 국내 최초 공립 도서관이다. 그림책 원화 전시회, 그림책 인형극, 전시안내(도슨트)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현대어린이책미술관도 그림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획 전시와 연계 프로그램이 있고, 6천여권의 국내외 우수 그림책을 만날 수 있다. 작가와 함께하는 워크숍에도 참여할 수 있다. 충남 금산군 진산면에 위치한 금산 지구별 그림책 마을도 그림책 원화를 감상할 수 있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한옥 도서관인 서유당, 미국 스쿨버스를 개조해 숲속에 놓은 버스 도서관까지 있어 아이들에게 인기다. 3대가 함께 읽는 우리나라 최초의 그림책 마을로서 숙박까지 가능해 ‘북스테이’를 즐길 수 있다.

창의성 발휘해 ‘큰 그림책 만들기’

세번째 방법으로는 그림연극이 있다. 그림연극은 딱딱한 종이에 연속적으로 그린 그림을 상자 모양의 틀 속에 포개어 넣고 순서대로 한 장씩 어린이에게 내보이면서 극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인 그림연극이 최근에는 영국·프랑스·독일·베트남 등지로 확대되고 있다. 일본의 유치원이나 보육원, 도서관에서는 그림연극을 통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국내에서는 그림연극과 비슷한 ‘큰 그림책 만들기’ 작업이 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던 사서와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이 자꾸 앞으로 몰려와 커다란 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시작됐다. 원그림책을 커다란 종이에 옮기는데 창의성을 발휘해서 작업을 한다. 부산 맨발동무도서관에서 제일 먼저 시작했고, 광주에서는 바람개비도서관에 큰 그림책을 제작하는 동아리가 있다. 아이와 큰 그림책을 만들어본다거나 큰 그림책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을 찾아가보는 것도 책과 친해지는 방법이다.

양선아 기자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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