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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25 11:20 수정 : 2018.10.15 18:53

양선아 기자의 베이비트리
한국형 마더센터 곳곳 실험중

서울 관악구에 있는 행복마을 마더센터에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언제든 방문해 차도 마시고 동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은 이 센터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다. 행복마을 마더센터 제공

“돈이 없으면 아이 데리고 갈 만한 곳이 별로 없어요. 돈을 쓰더라도 ‘노키즈존 논쟁’에서 보듯 아이 데리고 외출하면 여러 사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요. 엄마들이 아이 키우면서도 취미 생활도 하고, 마음 편하게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고 싶었어요.”

서울시 관악구 난곡우체국 사거리 근처에서 ‘행복마을 마더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한영 센터장의 말이다. 이곳은 비영리 여성단체가 운영하는 곳으로, 김씨와 비슷한 생각을 한 회원 30~40명이 모여 만들었다. 올해 2월 문을 연 이곳에서는 단돈 1천~2천원으로 차를 마실 수 있다. 김밥과 라면도 판다. 마더센터라는 이름을 내건 만큼 이 공간은 아이와 부모에게 활짝 열려 있다. 부모가 차를 마시는 동안 아이는 한쪽에 설치된 트램펄린에서 팡팡 뛰면서 놀 수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간다면 센터에서 운영하는 취미 수업도 싼값으로 들을 수 있다. 주말엔 초등생들을 위한 보드게임과 전래놀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김 센터장은 “아이와 부모가 동네에서 마음 편하게 들르는 사랑방 구실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단순한 육아공동체도 아니고
키즈맘 카페와 같은 곳도 아니다

관 주도 아닌 독일 모델에서 따와
‘부모에 의한, 부모를 위한’ 공간으로

“아이·부모 맘 편하게 들르는 사랑방
독박육아에 지친 여성의 울타리”

저출산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이를 해결할 방안이 논의되는 가운데, 독일 등지에서 풀뿌리 지역 여성운동으로 전개된 ‘마더센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독일 마더센터를 벤치마킹한 ‘한국형 마더센터’가 곳곳에서 실험중이다. 위에서 소개한 행복마을 마더센터도 그중 하나다.

독일도 저출산과 고령화, 여성의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영유아 보육시설 부족 등 한국과 비슷한 사회 문제를 갖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1980년대 초반 독일의 여러 여성단체에서 부모교육을 하던 중 마더센터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후 풀뿌리 지역운동을 펼치는 이들이 중심이 돼 마더센터를 만들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400여개의 마더센터가 설립됐다. 행정기관에서도 이를 본받아 500개의 비슷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후 독일 마더센터 모델은 세계적으로 확산돼 22개국에서 1000개 이상의 센터가 생기는 등 국제네트워크 활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아이와 부모를 위한 공간이 있고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마더센터일까? 정부가 육아지원을 위해 설립한 육아종합지원센터나 건강가정지원센터가 그런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서울 관악구 행복마을 마더센터에서 토요일에 운영하는 전래 놀이 교실. 행복마을 마더센터 제공

독일 마더센터를 꾸준히 연구해온 최정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원은 “독일 마더센터는 관 주도로 판을 짠 뒤 부모가 소비자로서 일방적으로 공간과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별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 마더센터는 지역에 기반하고 지역 사람들의 필요에 맞춰 그 지역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조직화한다는 점에서, 육아종합지원센터나 건강가정지원센터와는 다르다고 짚었다. 마더센터 하면 또 공공형 키즈카페 같은 공간을 연상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것과도 결이 다르다는 것이 최 연구원의 설명이다. 따라서 쉽게 모델링을 할 수도 없고, 구축하는 데 적절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 마더센터의 핵심 운영 철학은 자조(self-help)와 역량강화(empowerment)이다. 이들은 ‘누구나 능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으로 센터에서 누구나 자신의 장점으로 지역 사회에 기여하도록 한다. 육아를 하면서 부모가 사회적 관계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서로 돌보고, 각자의 재능을 발견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운영한다. 마더센터는 또 철저하게 공익을 추구해 이주여성, 한부모, 미혼모 등을 차별하지 않는다. 최 연구원은 이런 관점에서 독일 마더센터와 가장 근접한 한국형 마더센터 모델로 춘천여성협동조합 마더센터와 서울 마포 소금꽃마을 마더센터를 꼽았다.

춘천여성협동조합 가족북카페와
서울 마포 소금꽃마을이 대표적
서울 난곡행복마을도 올 초 문열어

성평등 교육, 여성 자조모임도 하고
마을파티·벼룩시장 열고 숲놀이도

대전 대덕구는 곧 첫 관 지원 센터
경기도도 지역민 수요 조사 나서

여성단체 춘천여성회는 2013년 국내 최초로 춘천여성협동조합 마더센터를 설립했다. 10여년 동안 지역운동(꾸러기어린이도서관, 저소득층 공부방 사업, 품앗이육아 등)을 펼쳐온 이들은 가족북카페를 만들어 마더센터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마더센터에서는 성평등 교육이나 비폭력 대화와 같은 부모교육도 하고, 육아공동체, 여성자조 모임 등을 운영한다. 이선미 춘천여성협동조합 마더센터 상임이사는 마더센터를 찾은 이들이 “힘든 일이 있으면 이야기 들어줄 언니들이 있어 좋다”, “비빌 언덕이 있어 좋다”라는 얘기를 나눌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독박 육아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성들에게 마더센터가 안전한 울타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소금꽃마을 마더센터는 공동육아 모임에서 발전했다. 서울 염리동과 대흥동 지역의 10가족이 모여서 공동육아를 펼쳐온 이들은 자신들이 낸 회비와 후원 회원들의 지원 등으로 마더센터를 만들었다. 올해 이들은 사회적협동조합 인가도 받았다. 이 센터의 경우 별도의 공간은 없고, 활동 중심으로 그때그때 뭉친다. 다만 마을 안의 대안 카페인 나무그늘이 장소를 지원한다. 이들은 일주일에 두번 정도 카페에서 만나고, 한달에 한번 정도 마을 파티를 연다. 주말에는 가족끼리 만나 숲놀이를 가고, 부정기적으로 벼룩시장도 연다.

두 마더센터의 모임은 모두 비영리 활동으로 이뤄지는데, 시에서 지원하는 마을공동체 사업이나 공동육아지원 사업 등에 자체적으로 지원해 프로젝트 비용을 따서 힘겹게 운영하고 있다. 김소연 소금꽃마을 마더센터 대표는 “마더센터 때문에 아이를 덜 힘들게 키웠고 이런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센터가 지속가능하려면 공간이나 인건비 지원 등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선미 춘천 마더센터 이사도 “마을공동체 사업 등에서 나오는 지원금은 3년 단위인데다 일시적이라는 점에서 아쉽다”며 “이런 부분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풀뿌리 지역운동과 공동육아 모임에서 시작된 마더센터 외에도 자치구의 지원으로 마더센터를 여는 곳도 있다. 대전 대덕구는 다음달 2일 동춘당 공원에 관에서 지원하는 최초의 마더센터가 선보인다. 대덕구청 여성가족과 관계자는 “육아돌봄방이 있어 24개월 이상 미취학 아동을 1~3시간 맡길 수도 있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센터에 와서 소통도 하고 커뮤니티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에서는 마더센터를 설치하고 운영에 필요한 일부 물품을 지원하는데, 협동조합에 위탁해 센터를 운영하기로 했다. 대덕구는 지난 2015년 여성친화도시로 지정이 됐는데, 2년차 사업 중 하나로 마더센터를 조성한 것이다.

이외에도 경기도에서도 지역민의 요구에 맞는 마더센터를 만들기 위해 수요 조사를 할 계획이다. 경기도 따복공동체지원센터 관계자는 “무조건 공간을 만들어놓고 이용하라는 식의 마더센터는 성공 가능성이 낮다”며 “지역민의 수요 파악과 지역사회 네트워크와 같은 사회적 자본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런 부분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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