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2.02 21:09
수정 : 2018.09.17 18:22
대입 발표 같은 공립유치원 추첨날
서울의 한 유치원 경쟁률 15대1
추첨 위해 모인 가족 발만 동동
“힘들어” “짜증나” 탈락자 한숨
정부는 되레 공립유치원 수용률
초등 정원의 1/8로 낮추기로 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말 힘들다, 힘들어. 유치원 들어가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서울 지역 공립유치원 추첨날인 2일 오후 3시께,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한 공립 단설유치원 4층 강당은 추첨 대기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대기자들 틈바구니 속에서는 “짜증 나”, “힘들어”라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이날 오후 2시 근처 병설유치원 추첨에서 탈락한 부모들이 정신없이 뛰어와 또다른 추첨을 위해 대기한 탓이다.
이날 만 3살 반일반 원아 28명을 뽑는 이 유치원에는 접수자가 314명이었다. 우선순위 대상자 8명을 제외하면 만 3살반 스무 자리를 놓고 300여명의 아이들이 추첨 경쟁을 해야 했다. 15:1이 넘는 경쟁률이다. 추첨은 30여분 만에 끝났는데, 이날 추첨장은 추첨된 사람의 환호성과 탈락자의 한숨이 뒤섞이면서 마치 대학 합격자 발표날과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손자의 유치원 입소 추첨을 위해 왔다는 전장현(69·서울 강서구)씨는 추첨장을 나가면서 “이건 말도 안 돼. 어이가 없어”라고 말하며 고개를 계속 저었다. 전씨는 “정부가 애 낳으라 말만 하고 이렇게 유치원조차 들어가기 힘들게 하면 누가 아이를 낳고 싶겠냐”고 화를 냈다. 추첨 탈락자인 윤아무개(40)씨도 “내년에 딸을 사립유치원에 보내야 하는데 비용 차이가 30만~50만원이나 된다”며 “공립유치원은 엄마들 사이에서 로또라 불린다”고 말했다. 집에서 차로 20~25분 걸리는 구립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송아무개(45)씨는 추첨에서 떨어졌지만 대기 9번이다. 송씨는 “교육의 질과 관리·감독 측면, 비용 모든 측면에서 구립어린이집 또는 공립유치원이 낫다”며 “아이만 낳으라고 하지 말고 공보육 체계를 잘 세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바늘구멍’인 공립유치원 입소 문제로 부모들이 이렇게 애를 태우는데, 정작 정부는 신도시 공립유치원의 수용률을 줄이는 정책을 내놔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9월16일 도시개발이나 택지개발사업으로 인구가 유입돼 초등학교를 신설할 때 공립유치원의 유아 수용 기준을 기존 초등학교 정원의 4분의 1에서 8분의 1로 낮추는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병설유치원이 늘어나고 유아교육 전공자가 원장을 맡고 유아에게 최적화된 시스템을 갖춘 단설유치원 설립은 어려워질 수 있다. 신상인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 회장은 “개정안은 공립유치원의 확대를 원하는 학부모들의 요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이라며 “정부는 개정안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공립유치원 설립 수용 기준이 낮아져도 교육감의 재량으로 수용 인원 기준을 늘릴 수 있어 반드시 공립유치원의 축소로는 볼 수 없다”며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최종적인 정책 결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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