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에서 개최한‘2012 통합의학 헬스케어 엑스포’에 참가해 미술치료에 대해 소개한 김선현 분당차병원 임상미술치료클리닉 교수가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는 학생들을 불러모아 그림을 그리게 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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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좋은 자기표현 수단
어른 눈으로 지레짐작 말고
아이 마음 어떤지 먼저 대화
불안하다면 미술치료 도움
“자, 봐봐. 애가 온통 스케치북에 검은색으로만 칠했잖아. 내가 어디선가 봤는데 애가 검은색만 사용하면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고립감을 느끼는 거래. 당신이 일한다고 애한테 도통 신경을 안 써서 애가 정서적으로 문제 있는 것 아냐? ”
직장맘 송규리(가명·서울 마포구)씨는 최근 남편에게서 이런 핀잔을 들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 사랑(가명·6살)이가 요즘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말을 자주 하고 떼도 많이 써 걱정이 되던 차였다. 송씨는 남편 얘기를 듣고 ‘혹시 아이 정서가 불안한가’ ‘내가 일하면서 아이한테 너무 소홀했나’라는 생각에 밤잠까지 설쳤다. 송씨는 주말에 시간을 내어 딸이 좋아하는 빵을 사주고 집에 들어와 딸에게 슬쩍 물었다. “사랑아~ 이 그림 뭐 그린 거야? 까만색인데 엄마는 뭔지 모르겠어~”라고 말하자, 딸은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아~ 이거~ 김이야. 김. 먹는 김.” 알고보니 딸은 최근 아침마다 즐겨 먹는 김을 검은색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송씨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계속 뭔가 찜찜했다.
최근 미술을 통해 각종 신체적·정신적 증상을 치료하고 완화시키는 ‘미술 치료’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부모들이 어설프게 알고 있는 지식을 토대로 아이의 그림을 보고 아이의 정서 상태를 파악하려 해 주의가 요구된다. 김선현 차의과학대 분당차병원 임상미술치료클리닉 교수는 “그림을 통해 아이 상태를 파악하려면, 아이의 발달단계,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그 그림을 그렸는지, 별도의 미술교육을 받았는지, 신체적·정신적 질병은 없는지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은데, 부모들이 그런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나친 노파심에 병원을 찾는 경우도 있다. 한 아이가 가족화를 그렸는데 엄마가 빠져 있었다. 그런데 부모는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엄마에 대한 미움’‘엄마의 존재감 부재’ 등으로 기계적으로 해석해 애정 결핍은 아닌지 걱정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정서적으로 큰 문제가 없고, 단지 엄마가 밖에서 일하면서 매우 바쁜 상태여서 생략하고 그린 것이었다. 김 교수는 “부모들이 그림을 아이 마음을 읽는 단초로만 보고 아이와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단순하게 그림만 보고 아이를 파악하려 하지 말고, △최근 아이에게 이상한 행동이나 특정 증상은 없었는지 △그림을 그릴 때 형제·자매의 그림을 모방한 것은 아닌지 △평소 아이 그림과 다른 점은 없는지 △부모나 주양육자가 아이가 그림 그릴 때 관여하지는 않았는지 △왜 아이가 그렇게 표현했고, 그림을 그린 뒤 아이 느낌이나 생각은 무엇인지 등을 고려하라고 덧붙였다.
그림은 말로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그림에는 아이들의 소망, 감정적 반응, 정서적 문제 상황 등이 잘 나타난다. 성폭력을 당한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그림에서 성기 부분을 강조해서 그리기도 하고, 아빠가 호통을 많이 치거나 거의 함께 하지 못한 경우 아빠가 그림 속에 없거나 한쪽 구석에 표현된다. 독일의 쾰른 대학에서 미술치료를 가르치고 있는 마틴 슈스터 교수는 그의 저서 <아이들은 그림으로 말한다>(고려원북스 펴냄)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은 하나의 현실이기 때문에 어른과는 다른 감정적인 반응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악어를 무서워하는 어떤 아이는 악어 그림 위에 색연필로 덧칠함으로서 안정감을 찾고 자신감을 형성해가기도 한단다. 그는 또 분노에 찬 아이는 공격을 시도할 수 있도록 힘이 센 괴물이나 위험한 무기 등을 그리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이처럼 아이들은 그림을 통해 마음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부정적 감정도 해소하고 다양한 근육 활동을 하면서 신체적·정서적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 상태에 있던 아이가 미술치료를 통해 자유로운 색채 표현을 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기도 하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앓는 아이의 산만한 증상이 완화되기도 한다. 최근엔 어린이뿐만 아니라 치매 환자, 임신부, 우울증 환자, 틱 장애 청소년, 게임중독증 환자 등 다양한 환자를 상대로 미술치료가 이뤄지고 있다.
그림을 통한 마음 읽기는 적어도 자의식이 생기는 3살 이후에나 가능하다. 따라서 그 이전 아이들의 그림을 가지고 정서 상태를 파악하려 하는 것은 무리다. 물론 3살 이전의 아이라도 크레파스를 쥐어주고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여러 면에서 좋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아이의 마음을 읽는 수단으로 ‘우리 가족 그리기’나 ‘학교 생활 그리기’를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단, 부모가 어떻게 그려야 한다고 개입하지 말고 자유롭게 그리게 한 뒤 아이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 좀 더 자세한 내용은 <한겨레> 육아사이트 ‘베이비트리’ 누리집(babytree.hani.co.kr) 참조
색깔치료의 심리학
스트레스엔 보라색 색채는 직관적인 의미나 느낌을 전달하는 아주 강렬한 메시지이며 사람의 감정 체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김선현 분당차병원 임상미술치료클리닉 교수는 “일상생활에서 색채를 잘 활용하면 스트레스도 완화되고 자존감도 높일 수 있다”며 “벽지나 침구, 의류, 소품 등을 선택할 때 활용해도 좋고, 직접 그림을 그릴 때 활용해도 좋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도움을 받아 각 색깔이 가지고 있는 효능에 대해 알아본다.
엘지하우시스 직원들이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있는 홀트 아동복지타운에서 새로 벽지를 바르고 그 위에 벽화를 그려넣는 등 실내를 새롭게 꾸미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엘지하우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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