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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01 21:26 수정 : 2007.01.24 16:21

멀티컬쳐 프로젝트 그룹 ‘홀’이 서울 홍대 앞 전용공연장 블러섬 랜드에서 지난해 말 ‘최윤상의 행복한 어른되기 프로젝트’란 제목으로 국내 첫 단독콘서트를 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07 새해특집] 세계를 품어라 멀티컬쳐 한국

① 8인조 밴드 ‘훌’
구한말 개화기 이래 서구 문물에 문을 연 지 1세기가 지나도록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처럼 갇혀 있었다. 1989년 이른바 ‘국외여행 자유화’를 계기로 배낭 하나 짊어지고 외국으로 뛰쳐나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왕성하게 선진 문물을 체험하고 흡수했지만, 10년 만인 97년 외환위기에 좌초해 ‘국제표준’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하지만 기적처럼 ‘환란’을 이겨내고 2002년 한-일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면서 되살아난 한국인의 자존심과 한국문화에 대한 자신감은 ‘한류’, ‘아이티 강국’의 명성을 낳았다. 지금껏 서구화, 산업화, 세계화의 구호 아래 자본주의를 흉내내기나 따라하기에 급급했다면, 이제는 디지털을 도구삼아 우리 나름의 문화로 소화하고 새롭게 재창조해내는 ‘멀티컬처(복합융합문화)시대’가 열리고 있다. 음악을 비롯한 공연, 영화, 패션, 음식, 건축, 인테리어, 거리, 인종 등등 우리 문화와 생활 전반에 걸쳐 드러나고 있는 그 문화교배 현상과 흐름을 몇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달빛의 정기를 받아, 우리의 기운을 받아, 여기에 귀신이 있어, 악기에 귀신이 붙어… 니 옆에 귀신이 있어! 두둥둥둥!” 드라이 아이스의 연기가 자욱이 깔린 무대에서 신들린 듯 꽹과리가 운다. 전자기타와, 태평소, 북, 피리 등의 소리도 한데 뒤엉켰다. 맨발로 작두를 타는 무당은 없어도 충분히 흥겨운 굿판이다. 관객들은 생소한 광경에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가 이내 굿판에 빠져든다. 지난 연말 서울 홍대 앞 주차장거리 한구석에서 첫선을 보인 8인조 밴드 ‘훌’(wHOOL)은 한마디로 멀티컬처 프로젝트 그룹이다.

국악과 양악 경계 허물고 아날로그·디지털 한데 합쳐
재즈 록에서 트로트 랩까지 국경없는 음악세계로 ‘훌훌’
우리 것이 좋은 것이요?남의 것도 우리 것이요!

국악+양악 또는 아날로그+디지털의 융합=훌은 창작타악그룹 ‘공명’ 출신 최윤상(35)씨가 2003년 결성했지만 국내에서는 이번에 처음 단독 공연을 했다. 직접 창작한 국악기로 전통음악을 현대적 감성으로 표현해 이름났던 공명에서 2002년 나온 최씨는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다시 새로운 음악을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밴드에 ‘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8명의 단원들은 최씨처럼 국악에서 출발하거나 대학에서 서양 음악을 전공하기도 했지만 ‘그저 음악을 좋아해서’ 함께 하기도 한다. 이들은 거문고, 아쟁, 장구 등 우리 전통악기뿐 아니라 전자기타, 전자타악기, 전자오르간 등 서양 전자악기도 자유자재로 다룬다. 하와이 악기 우크렐레 등 세계 각국의 민속악기들도 이들 손에 요리된다. “악기의 국적은 의미없다. 우리가 원하는 소리를 낼 수만 있으면 만들어서라도 연주한다.”


장르 통합 또는 세대공감=결성 4년 만에 연 첫 단독콘서트인 연말의 ‘핑크블러섬 파티’에서 이들은 무악 비나리를 바탕으로 만든 ‘일월의 정기’로 막을 연 뒤 곧바로 트로트(뽕짝)로 넘어갔다. 두 시간 남짓 이어진 공연은 재즈, 록, 힙합, 랩, 아카펠라를 넘나들며 관객들의 혼을 빼놨다. 저마다 네댓 가지 악기를 연주하고 작곡도 하며 노래를 부르는 ‘멀티플레이어’들인 이들에게 기존의 장르나 형식은 별 의미가 없을뿐더러, 서로 얼마든지 조화하고 공존할 수 있는 세계다. “연주하는 우리나 듣는 관객이나 모두 즐겁고 행복해지면 그걸로 만족한다.”

지역 초월 또는 다문화 공유=이들은 결성 뒤 독일에서 먼저 활동했다.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당시 현지에서 응원을 주도하기도 했다. 재독 현대무용가 전인정씨와 함께 ‘황금투구’라는 음반을 내고 멕시코와 미국, 스위스 등지에서도 공연을 했다. 전통음악에 뿌리를 두고 온갖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에 대한 국외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독일 뒤셀도르프 지역신문인 〈뒤셀포스트〉는 “훌의 음악이 한국의 음악이라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고 싶다”고 평하기도 했다. “우리 음악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 어디를 가도 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무대와 객석 경계 허물기=이들의 음악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건 전용 공연장인 ‘블러섬 랜드’의 공간활용이다. 국립극장에서 무대감독으로 활동했던 서정민씨의 연출로 거듭난 70평 남짓한 공간은 무대와 객석이라는 이원화된 공식을 거부한다. 공간 구석구석이 그대로 무대가 된다. 이를테면 객석 오른쪽에 딸린 작은 공간의 불이 켜지면서 가야금 연주자가 등장하거나 무대 뒤편으로 난 작은 방의 불이 켜지면서 가수가 모습을 드러내며 또하나의 무대를 만드는 식이다. 객석 뒤편 구석에서 무용수가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은 카메라를 타고 왼쪽 벽을 가득 채운 스크린에 투영된다. 한뼘도 버리지 않고 활용해 공간은 한없이 확장되고 사방팔방이 무대가 된다. 이들의 공연은 웹을 타고 실시간 국외 팬들에게 전송돼 국경도 허문다. 공연 막간엔 단원들이 직접 음료수를 나르기도 한다. 5㎜ 이하로 짧게 삭발한 여성·모자 미착용 쌩얼·파티 복장 등은 입장료를 깎아주고, 생일·비키니·전통한복 차림이면 무료다. “공간은 좁아도 젊은이들이 모여서 건전하게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다채로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연예술공간을 만들고 싶다. 미국에 스톰프가 있고 캐나다에 태양의 서커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

김일주 김경애 기자 pearl@hani.co.kr


훌의 성민우씨(왼쪽)가 3세대 슈퍼장고를, 대표 최윤상씨가 4세대 슈퍼장고를 연주하고 있다.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디지털 귀신’ 장구에 붙이니 “드럼 저리가라”

슈퍼장구는 ‘훌’의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악기이자 ‘한국식 멀티컬처 음악’을 상징하는 도구다. 전통 아날로그 악기인 장구가 디지털 기술과 결합돼 최첨단 전자악기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훌의 대표 최윤상씨는 2002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매년 열리는 음악축제인 ‘빅데이아웃’에 참석해 테크노음악에 온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고 전통악기의 전자화를 고안했다. “일렉트로닉한 소리에 빠져 있는 세계 젊은이들을 보면서, 우리 음악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는 전자음에 묻히지 않고 스며들 수 있는 악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귀국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그는 인터넷을 검색해 전자음악 전문가로 꼽히는 이돈응 교수(서울대 작곡과)를 찾아냈고 곧바로 그를 찾아갔다. 그의 아이디어를 듣자마자 “같이 해보자”며 흔쾌히 동의한 이 교수는 슈퍼장구 연구·개발에 착수해 현재까지 4세대 슈퍼장구를 탄생시켰다.

슈퍼장구는 표현하고 싶은 소리를 장구에 미리 입력해 채로 쳤을 때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도록 고안됐다. 신시사이저와 같은 원리이지만 장구만의 독특한 타법을 살려 사물놀이의 여러가지 장단을 전자음색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또 공연 중에도 엔지니어의 조작에 따라 소리의 크기와 음색을 바꿀 수 있다.

“장구는 연주하면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타악기입니다. 슈퍼장구에 입력된 다양한 소리가 장구 특유의 활동성에서 나오는 장단과 결합하면 드럼을 이길 수 있는 뛰어난 악기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 개발 중인 5세대 슈퍼장구는 장구 특유의 활동성을 살리기 위해 블루투스 기술을 활용해 무선으로 조작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김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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