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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02 17:59 수정 : 2019.01.02 19:44

파리는 물론 프랑스 전역으로 퍼진 ‘노란 조끼’ 시위 사태를 직접 본 나의 마음은 착잡하다. 30년 파리 생활을 하면서 개별 이슈가 아니라 범정부정책 반대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장기간의 대규모 집회는 낯설다. 격해진 시위로 내가 파리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문을 한동안 닫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음식점을 경영하며 사람을 고용하기도 해본 이방인인 내가 프랑스를 이해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처음에는 너무 많은 세금을 거둬가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정말 프랑스는 버는 만큼 세금을 가져갔다. 2017년 기준 프랑스의 국민부담률(세금과 사회보험을 합한 금액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가 넘어 북유럽 국가보다 세부담이 크다.

하지만 이 세금 덕에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 사회’를 일찌감치 실현해왔다. 집을 마련하기 어려운 소외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은 외국인들까지도 혜택을 받는다. 또한 저소득자와 취약 계층, 학생은 물론 외국인까지 월세의 30~40%를 정부에서 보조해준다. 프랑스 거주자는 의무적으로 의료보험제도에 가입해 대부분의 진료비를 공제 받는다. 학비 또한 무료거나 적은 비용이 든다. 프랑스에 유학 온 한국 대학생들이 외국인임에도 이런 혜택을 받는 것을 보면서 세금과 복지에 대한 내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2017년 5월 대선에서 프랑스 국민들은 그동안 정계를 양분한 기득권 사회당(좌파)과 공화당(우파) 후보 대신 제3당 후보인 30대 정치 엘리트인 에마뉘엘 마크롱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오랜 경제 침체와 기득권 정치에 대한 염증을 반영한 결과다. 예견된 일이지만 마크롱 정부의 많은 정책들이 우클릭 하고 있다. 당선 이후 유류세와 담뱃값 등 간접세와 등록금 인상 등 자유주의적 정책을 잇따라 내놓아 시민들은 “부자들을 위한 대통령”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노란 조끼 시위로 마크롱 대통령이 일단 한발 물러섰지만 갈등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자본 앞에서 ‘박애’ ‘평등’ ‘자유’가 시험받고 있다.

이번 ‘노란 조끼’ 시위 사태로 ‘68혁명’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1968년 3월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 대한 항의로 시작한 시위는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권위주의와 보수체제, 남녀차별과 불평등, 반전평화 문제 해결까지 요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도처의 시민혁명은 소수 자본가와 정치 엘리트에게 정치·경제 권력을 선물했지만 정작 시민들의 삶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민들은 기득권이 된 정치경제 권력과 더 치열하고 어려운 싸움을 해야 했다. 오늘의 프랑스인들은 바로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2016년 겨울, 서울에 갈 일이 있었다. 마침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다. 나도 거기에 있었다. 다행히 촛불시민의 힘으로 부패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정부를 세웠다. 그런데 시민들은 여전히 불안하다고 한다. 부익부 빈익빈 경제는 해소되지 않고 재벌개혁은 더디다. 사법개혁도 진척이 없으며 정치제도마저 기득권 정당들의 이해관계에 묻혀 개혁이 불투명하다. 국회의원들은 여전히 국민 혈세로 해외 나들이에 나서고 ‘아무말 대잔치’로 연일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권위주의 시대는 막을 내렸는지 모르겠지만 ‘시민이 주인인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촛불을 들었던 나의 소망과 의지는 변치 않았다. 더디지만 기다려야 하는가, 촛불을 다시 들어야 하는가. 2019년, 국민이 주인인 언론 <한겨레>가 할 일이 더 많아졌다.

파리/임남희 전 프랑스 한인회장 namhi.operasal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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