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9.12 18:20
수정 : 2018.09.12 19:35
<한겨레>에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뜯어보니 ‘한겨레신문 주식소유현황’이라며 ‘410402’라는 주주번호와 함께 한겨레신문 대표이사의 직인이 찍힌 서류였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다. 내가 한겨레신문의 ‘주주’가 된 것이다.
지난봄 촛불시민들이 직접 나서 준비한 3·1혁명 99주년 행사를 돕게 되었다. 오랫동안 진보운동 단체에서 활동했던 나로서는 이른바 ‘촛불시민’들과의 사업이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내가 속한 한국진보연대는 북녘 동포가 참여하는 평창올림픽 응원과 지방선거 준비로, 민주노총이나 기존 시민단체들 역시 이 행사에 참여하지 못해 불안감이 컸다. 사실 ‘촛불시민’들의 힘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 행사기획이었다. 그러나 행사는 기대이상의 성과를 내며 성황리에 잘 치러졌다. 성공적인 행사 뒤에는 한겨레신문이 있었다. 행사내용을 기사화하고 광고 후원을 하면서부터 막힌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되었다. 한겨레의 힘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사실 그동안 한겨레신문에 거리감을 갖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한겨레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통합진보당 내부의 갈등과 정당 해산을 둘러싼 한겨레 보도에 많이 실망했다. 국가보안법 체제에서 진보정치에 대한 마녀사냥에 한겨레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한겨레와 멀어졌다.
한겨레와의 첫 인연은 대학 3학년이었던 1988년이었다. 당시 내용과 형식 모두 새로웠다. 이런 신문을 사람들이 구독하는 게 신기했다. 87년 ‘6월 항쟁’ 승리 뒤 통일운동의 열기가 가득했던 1988년의 한겨레는 나 같은 운동권들에게는 일종의 기관지 같은, 그래서 한겨레는 내게 없어서는 안 될 ‘동지’였다.
한겨레와 두 번째 인연은 신문사와 독자의 인연을 넘어, 동업자(?) 관계로 발전했다. 신문배달을 하게 된 것이다. 청년운동을 하면서 새벽마다 오토바이를 끌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한겨레를 배달했다. 지국장 역시 청년운동 선배였고 우리는 새벽마다 오토바이 부대를 이루며 꼭두새벽 배송된 신문에 광고 삽지 작업과 배달일로 하루를 열었다.
위에서 밝혔지만 나의 세 번째 인연은 최근 한겨레 주주가 된 것이다. 서울 종로의 ‘문화공간 온’에서 한겨레 주주들과 막걸리 한잔하며 이야기 나누던 중 우연히 한겨레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한겨레의 주인은 민주주의를 일궈오고 노동의 주체인 일반 국민, 시민 민중들이라는 사실, ‘87년 6월 항쟁’을 만들어낸 국민들의 참여로 만들어진 ‘역사의 산물’이라는 사실 말이다.
기사에 대한 불만으로 한겨레의 주인이 누군가 하는 것을 간과했었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자 한겨레에 가졌던 나의 ‘옹졸한’(?) 태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운동의 주체라고 한다면 외면해서 될 일만은 아니었다. 역사발전에 대한 믿음으로 노동의 땀과 눈물이 밴 성금을 기꺼이 낸 이들을 외면하고 무슨 운동을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이게 계기가 되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매일 아침 사무실에 배달되는 한겨레를 편안한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미웠던 친구와 화해를 한 것 같이 내가 그러고 있다. 그리고 내친김에 ‘한겨레’ 주주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실망도 생겼을 것 같다. 한겨레, 앞으로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윤용배 한국진보연대 공동집행위원장
jinbojo@gmail.com
※ 세계 유일의 국민주 언론 <한겨레>에는 7만명의 주주가 있습니다. 누구나 한겨레 주주가 될 수 있고, 주주로서 <한겨레:온>(www.hanion.co.kr)에 가입하시면 주주통신원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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