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28 18:31
수정 : 2018.05.16 10:35
“자, 빨리빨리, 이제 다 됐다.”
우리 동네 ‘삼총사’로 불리던 친구 둘과 나 이렇게 셋이서 뗏목을 만들었다. 말이 뗏목이지, 광에서 잘 들지도 않는 톱을 꺼내다가 뒷산에서 구불대는 생나무 10여개를 잘라서 어른들의 눈을 피해 백사장에 끌어다 놓았다. 노끈과 칡넝쿨을 끊어 와서 나름 야무지게 엮었다. 테두리에는 들물에 떠밀려온 스티로폼 대여섯 개를 주워다가 매달았다. 우리 셋은 비장했다. 삿대도 준비했다. 온 몸에 땀이 배어 쉰내가 나는 줄도 모르게 열심히 자르고 묶기를 두세 시간. 드넓은 서해바다 출항 준비를 마쳤다. 그날따라 파도는 높았고 바람도 거셌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바다에 뗏목을 밀어넣었다. 물이 가슴까지 차올랐을 때 셋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사처럼 용감하게 뗏목에 올라탔다. 아무런 먹을 것도 안전장치도 없이 멀리 지평선을 향해 나아갔다. 서해 ‘덕적도’라는 섬에 살았던 내가 세상에 무모한 도전장을 낸 첫 번째 사건이었다. 10살 때였다. 뗏목에 올라탄 지 1분도 안 되어 뒤집어지기를 여러 번. 결국 내 생애 야심찬 첫 도전은 실패했지만 지금도 그때의 가슴 두근거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대학에 들어가서 등록금 벌랴 용돈 벌랴 정신이 없던 때에도 세상은 나를 그냥 비켜가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세상을 그냥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땐 왜 그렇게 돈이 귀했는지 모르겠다. 하물며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에 용돈까지 벌어야 했던, 물 건너온 가난한 유학생에게는 더더욱 고단했던 것 같다. “벽에 못 하나 박지 말라우. 고향에 가만 이레갈이 밭이 여나무 개나 이서.” 그렇게 북녘 고향 그리워하다가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자주 하시던 말대로 집에 기댈 처지도 아니었다.
대학생이 되고 바로 1987년 6월 항쟁을 맞닥뜨렸다. 두 번째 도전이 내게 다가왔다. 어려운 집안에서 자라나 빨리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서 돈 버는 것 이외에 중요한 일이 없던 내가 세상에 다시 눈을 뜬 것이다. 당시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던 나는 새벽 신문배달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시민들의 입과 귀가 막혀 있음도 깨달았다. 국민이 주인인 신문을 만든다고 했다. 당시 신문배달 월급 두 달치 ‘거금’을 들고 서슴없이 찾아가 창간주주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어려운 시절에 빈털터리 가난한 대학생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참 기특하다.
<한겨레>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기자들이 한낱 언론사주의 충실한 월급쟁이로 전락한 우리 언론사에서 <한겨레>의 탄생은 그 자체로 ‘도전’이었다. 온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준 <한겨레>는 지금도 자랑스러운 세계 유일의 국민주 언론이다. 〈한겨레〉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독자의 반론권을 보장했고 촌지 거부를 명문화했다. 순우리말 신문으로 전면 가로쓰기를 앞서 시작했고 우리나라 최초로 CTS(컴퓨터조판시스템)을 도입했다. 사내 민주주의 확보를 위해 대표이사 직선제, 편집국장 임명동의제 등 다양한 도전과 실험을 이어갔다.
어렸을 적 뗏목을 띄우고, 대학 시절에 <한겨레> 창간에 참여한 나는 지금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대학 졸업 후 해외영업을 거쳐 지금은 세계를 상대로 하는 극저온용 실험장비 의료장비 제조·수출 회사의 해외마케팅이사로 일한다. 나의 삶 자체가 도전인 셈이다. 이런 나의 기질을 이어받으라고 세 딸 채연, 도연, 정연에게도 한겨레 주식을 선물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시민이 주체로 나선 ‘동학실천시민행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아쉬운 일이 생겼다. 종이신문 구독자가 줄어들고 수많은 신생 인터넷 언론이 생겨나면서 <한겨레>도 많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사실 요즘은 <한겨레>가 익숙한 환경과 과거의 명성에 의지한 채, 혁신과 변화의 동력이 약해진 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한겨레>는 창간부터 ‘더 나은’ 언론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언론이었다. 세상이 달라졌다. 이제 <한겨레>는 다시 ‘다른 언론’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생존은 물론 번영이 가능하다. 창간주주인 나와 <한겨레>는 닮았다. 올바른 가치를 위해 열정을 쏟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 도전은 늘 두근거림이다. 2018년 서른 살 한겨레는 어떤 도전을 할 것인가.
김진표 한겨레주주통신원회 전국운영위원장
operon.jpkim@gmail.com
※ 세계 유일의 국민주 언론 <한겨레>에는 7만명의 주주가 있습니다. 누구나 한겨레 주주가 될 수 있고, 주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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