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법인 벽성 대표 “엄마가 알고 있는 옛날의 <한겨레>가 아니에요.” 나는 청년기에 <한겨레> 창간 주주가 되었다. 지금은 아들이 청년기를 보내고 있다. 그 아들이 종종 <한겨레>를 비판하며 나와 논쟁을 한다. 칼 같은 비판에 요즘 나는 많이 밀리는 중이다. 좀 우스운 얘기지만 <한겨레>를 향한 무한 사랑이 나의 논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 아들과 논쟁이 잦아진 건 최근 몇 년 사이다. 아들은 2016년 7월 서울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으로 촉발된 메갈리아 논쟁에서 <한겨레>가 남성 혐오를 부추겼다거나, 2017년 대선 때 여론조사 결과 보도에서 특정 후보에 편향적이었다고 주장한다. 20~30대 젊은이들의 관심이 높았던 기간제 교사 등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과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논란에서도 <한겨레>가 원론적 관점에만 머물며 현실을 반영한 깊이 있는 생각거리를 제공하지 못했다고 본다. 논란이 될 만한 사건이 터지면 어김없이 <한겨레>를 성토하는 글과 그림들이 인터넷 공간을 떠돌곤 한다. 과거 <한겨레>가 잘못한 기사나 사진, 그림이 모아지고 다시 편집되어 올라온다. 이전의 맥락을 모른 채 그것만 보면 누구라도 ‘한겨레가 진짜 이랬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주주통신원 활동을 하면서 어느 정도 회사의 상황과 보도의 전후 맥락을 알기에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거나 “있을 수 있는 실수”, 또는 “옥에 티를 본 것”이라고 항변해 보지만, 아들은 “엄마가 알고 있는 옛날의 <한겨레>가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한겨레>에도 꼰대 문화가 있는 것 같다고도 한다. 심지어는 엄마가 순진한 것이라고 훈수까지 두곤 한다. <한겨레>를 사이에 둔 나와 아들의 거리는 생각보다 먼 것 같다. 동시에 그렇게 논리만으로 논쟁이 끝날 수 없을 정도의 세월이 흘렀고 주류 세대가 교체되고 있음을 느낀다. <한겨레>가 각고의 노력으로 30년의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세상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 않고 멀리 간 느낌이랄까. 아들이 젊은 세대를 대변할 순 없지만, 우리 세대와는 다른, 또 하나의 거대한 물결임을 직감하며 이 물결이 <한겨레>를 향해서도 새로운 차원의 비판과 요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겨레>가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의 행동을 일일이 따져가며 판단하지 않는다. 이미 그들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을 마친 상태이므로 돌출 행동이 아닌 한 이해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이런 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가족이나 지인들의 그것과 많이 다를 수 있다. 누리꾼들의 말을 빌리자면 ‘빅파이를 노리는 매의 눈’을 가진 이들도 많다. 그들은 ‘옥에 티’를 찾는 것에 익숙하다. 때론 가혹하기도 하지만 이런 이들의 시각을 적대시하거나 외면해선 안 된다. 때로는 <한겨레>가 놓친 것을 찾아주고 균형점을 찾도록 돕기도 한다. 그래서 <한겨레>가 마음을 열어야 할 대상은 이제 이 매의 시선들이다. 내 의도가 그게 아닌데 왜 왜곡하냐며 떼쓰는 듯한 태도는 곤란하다. 신문이 반대파들과 싸우는 선전도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논리적 근거가 빈약한 채 논조가 왔다 갔다 해서도 안 된다. 내 자식은 언제나 옳게 보이거나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 <한겨레>를 응원하고 때로는 대변해 왔지만, 아들과 논쟁을 하며 요즘 많은 생각을 한다. 서른 살 <한겨레>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다. kimjh119@hanmail.net ※ 세계 유일의 국민주 언론 <한겨레>에는 7만명의 주주가 있습니다. 누구나 한겨레 주주가 될 수 있고, 주주로서 <한겨레:온>(www.hanion.co.kr)에 가입하시면 주주통신원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칼럼 |
[주주통신원의 눈] ‘옥에 티’ 찾는 ‘매의 눈’도 살피길/김진희 |
노무법인 벽성 대표 “엄마가 알고 있는 옛날의 <한겨레>가 아니에요.” 나는 청년기에 <한겨레> 창간 주주가 되었다. 지금은 아들이 청년기를 보내고 있다. 그 아들이 종종 <한겨레>를 비판하며 나와 논쟁을 한다. 칼 같은 비판에 요즘 나는 많이 밀리는 중이다. 좀 우스운 얘기지만 <한겨레>를 향한 무한 사랑이 나의 논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 아들과 논쟁이 잦아진 건 최근 몇 년 사이다. 아들은 2016년 7월 서울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으로 촉발된 메갈리아 논쟁에서 <한겨레>가 남성 혐오를 부추겼다거나, 2017년 대선 때 여론조사 결과 보도에서 특정 후보에 편향적이었다고 주장한다. 20~30대 젊은이들의 관심이 높았던 기간제 교사 등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과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논란에서도 <한겨레>가 원론적 관점에만 머물며 현실을 반영한 깊이 있는 생각거리를 제공하지 못했다고 본다. 논란이 될 만한 사건이 터지면 어김없이 <한겨레>를 성토하는 글과 그림들이 인터넷 공간을 떠돌곤 한다. 과거 <한겨레>가 잘못한 기사나 사진, 그림이 모아지고 다시 편집되어 올라온다. 이전의 맥락을 모른 채 그것만 보면 누구라도 ‘한겨레가 진짜 이랬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주주통신원 활동을 하면서 어느 정도 회사의 상황과 보도의 전후 맥락을 알기에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거나 “있을 수 있는 실수”, 또는 “옥에 티를 본 것”이라고 항변해 보지만, 아들은 “엄마가 알고 있는 옛날의 <한겨레>가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한겨레>에도 꼰대 문화가 있는 것 같다고도 한다. 심지어는 엄마가 순진한 것이라고 훈수까지 두곤 한다. <한겨레>를 사이에 둔 나와 아들의 거리는 생각보다 먼 것 같다. 동시에 그렇게 논리만으로 논쟁이 끝날 수 없을 정도의 세월이 흘렀고 주류 세대가 교체되고 있음을 느낀다. <한겨레>가 각고의 노력으로 30년의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세상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 않고 멀리 간 느낌이랄까. 아들이 젊은 세대를 대변할 순 없지만, 우리 세대와는 다른, 또 하나의 거대한 물결임을 직감하며 이 물결이 <한겨레>를 향해서도 새로운 차원의 비판과 요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겨레>가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의 행동을 일일이 따져가며 판단하지 않는다. 이미 그들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을 마친 상태이므로 돌출 행동이 아닌 한 이해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이런 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가족이나 지인들의 그것과 많이 다를 수 있다. 누리꾼들의 말을 빌리자면 ‘빅파이를 노리는 매의 눈’을 가진 이들도 많다. 그들은 ‘옥에 티’를 찾는 것에 익숙하다. 때론 가혹하기도 하지만 이런 이들의 시각을 적대시하거나 외면해선 안 된다. 때로는 <한겨레>가 놓친 것을 찾아주고 균형점을 찾도록 돕기도 한다. 그래서 <한겨레>가 마음을 열어야 할 대상은 이제 이 매의 시선들이다. 내 의도가 그게 아닌데 왜 왜곡하냐며 떼쓰는 듯한 태도는 곤란하다. 신문이 반대파들과 싸우는 선전도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논리적 근거가 빈약한 채 논조가 왔다 갔다 해서도 안 된다. 내 자식은 언제나 옳게 보이거나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 <한겨레>를 응원하고 때로는 대변해 왔지만, 아들과 논쟁을 하며 요즘 많은 생각을 한다. 서른 살 <한겨레>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다. kimjh119@hanmail.net ※ 세계 유일의 국민주 언론 <한겨레>에는 7만명의 주주가 있습니다. 누구나 한겨레 주주가 될 수 있고, 주주로서 <한겨레:온>(www.hanion.co.kr)에 가입하시면 주주통신원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