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25 07:34
수정 : 2018.04.25 10:57
언로가 제한적이던 과거, 일간지는 제법 신속한 뉴스전달자였겠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환경. 때문에 분석, 기획, 탐사보도의 비중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때문에 날마다 닥치는 마감에서 한 걸음 물러나 찬찬히 살펴보라고 한겨레 사진부에도 기획팀이 있습니다.
기획팀은 2주에 한 번 마감하는 사진기획면 ‘이 순간’을 중심으로 송신년호, 창간 기념일, OO의 날 등 다양한 기획을 수행합니다.
사진부 창가 구석이 기획팀 자리인데, 사진에디터가 쓰윽 다가오는 것은 버튼을 누르겠다는 신호죠^^ 그렇게 달려온 2년 중 기억에 남는 기사들을 쓱 돌아봅니다.
1. 후보 얼굴 안 나오는 대선 사진 기획
2017년 대선 당시 후보들의 애장품을 통해 당사자의 가치관과 신념을 옅보자는 생각에 시작한 기획입니다.
이런 형태의 기사는 일단 주요후보들을 모두 섭외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처음엔, 후보 본인이 아니라 애장품이니 그래도 좀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다른 돌발변수도 많았습니다. 한 캠프가 마지막까지 결정을 미루다 포기를 선언했을 때에는 ‘중대결심’ 때문인가 깜짝 놀라기도 했고, 아이템 선정은 일찌감치 끝냈으나 아이템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운 경우도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묵주반지는 당시 후보 일정에 맞춰 오송산업단지로 따라가 당시 후보자가 업체 방문하는 동안 보좌진에게 건네 받은 반지를 취재차량에 마련한 간이 스튜디오에서 10여 분 급히 취재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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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숨으려는 ‘몰카’ 소문내기
불법촬영장비로 인한 피해가 연이어 보도되던 때였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일상에서 다양한 생활용품의 탈을 쓰고 도처에 자리잡은 ‘몰래카메라’에 대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어 기획했습니다. 하지만 그냥 공간만 보여주기엔 임팩트가 덜하고, 모델을 세워 범죄를 재현하기엔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고민한 것이 마네킨. 몰카 범죄의 경우 피해자를 인격으로 대하지 않고 본인의 성적 욕구를 위해 대상화한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장치라고 생각했지만 저보다 큰 마네킨을 뒤뚱거리며 들고다녔던 촬영 과정은 퍽 우스꽝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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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크린도어 노동자의 청춘연가
보도 뒤 가장 논쟁적인 반응을 일으켰던 기사입니다. 비정규직을 ‘어떻게’ 정규직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당시 정말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기사 주인공의 진보정당 활동 이력 때문에 엄청난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그의 정치적 신념과 직장 문제는 별개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 청춘남녀의 고민 한 장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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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 겨털!
‘여성 사진기자’라는 타이틀은 부담스럽습니다. 제 개인의 부족함이 자칫 잘못하면 ‘여성’ 사진기자의 모자람으로 연결되기 쉬운 탓입니다. 그런데 이 기획만큼은 여성이라서 가능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치열하게 진행 중입니다. 여성의 신체에 가해진 불합리한 차별이 있다면 거꾸로 드러내 함께 “왜 안돼?”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데스킹에서 걸러질까봐 대안으로 다른 기획과 함께 진행했던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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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랑스러운 ‘겨털’입니다
5. 경원 군의 해피엔딩을 위하여
처음 김경원 군의 소식은 2016년 여름 학급 친구들이 김 군의 시집을 만들어주기 위해 시작한 소셜펀딩 사이트에서 접했습니다. 해마다 성년의 날 즈음이면 아직 이른 나이에 홀로서기에 나서야하는 시설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기사화됩니다. 하지만 내용상 대부분 익명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사진, 통계로 기사가 쓰여지기 마련입니다. 그 문제를 풀어가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곁에서 함께 걸으며 긴 호흡으로 보도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담 단신으로 쓰는 대신 앞서 말한 취지로 취재하고자 연락했습니다. 하지만 김 군의 후견인들께서 ‘미디어에 계속 노출되는 건 걱정된다’며 우려를 표해 접었습니다. 그리고 겨울 ‘기쁜 소식이 있다’며 걸어온 김 군의 전화로 다시 취재할 수 있었던 기사입니다. 아주 예외적인 행운이지만, 아름다운 동화 같은 실제 삶의 한 토막을 독자와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던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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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경원이의 가장 따뜻한 겨울
6. 그리고 할머니...
공점엽 할머니를 처음 만난 때는 2014년이었습니다. ‘해남나비’를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은 물론, 친아들과 손주들의 사랑으로 돌봄을 받으시던 할머니. 당시 어머니의 아픈 삶을 보듬고 응원하는 아들의 이야기로 기사 준비를 마쳤는데 마감을 앞두고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결혼을 앞둔 손녀가 아직 시가 어른들께 말하지 못했는데, 아버지께 말씀드렸다가는 할머니가 부끄러우냐 불호령하실 터이니 기사를 내지 말아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사정을 전해 들은 사진에디터가 다행히 상황을 잘 정리해주어 애초 계획했던 기사는 급히 다른 건으로 대체했고, 그렇게 접었던 이야기는 2016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 가족들의 흔쾌한 동의로 지면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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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점엽 할머니 꽃상여 나가던 날
꽉 찬 2년 기획팀 생활을 마치고 며칠 전 디지털사진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후 기획팀은 지금 희망원정대로 아프리카를 누비고 있는 김명진 팀장과, 화려하게 7층 편집국으로 복귀한 김봉규 선임기자가 책임집니다.
저는 당분간 한겨레 사진기자들이 현장에서 가져온 사진들을 좀더 친절히 독자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도록 궁리하려 합니다. 그 다음에는 지면에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로도 인사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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