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07 18:11
수정 : 2007.11.07 18:11
|
조정래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
조정래칼럼
‘이 나라의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는 1만여명이고, 그중 절반이 보행자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왜냐하면 교통사고란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죽는 것으로 머리에 박혀 있었던 탓이다. 그 말을 다시 곱씹어 보니, 이 나라에서 길을 가다가 차에 치여 죽는 사람이 한 해에 5천여명이다, 하는 뜻이었다. 허, 이걸 믿을 수 있으신가. 다시 또 어리둥절해졌다. 둔한 머리로 다시 생각하며 글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우리나라 도로들에 보도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다시금 어리둥절해졌다. 도로에 보도가 없다니? 도시생활에 물들어버린 내 의식에는 보도가 있는 도시의 길만 들어와 있었지 시골길은 들어올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도시를 벗어난 모든 시골길에는 자동차들이 달리는 차도만 있었지 사람들이 편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보도는 아예 없었다. 2차선 차도 양쪽으로 너비 50㎝ 정도의 방치된 땅이 ‘한국적 보도’인 셈이었다. 잡초들과 돌이 뒤엉키고 더러 파이고 허물어지기도 한 그 보도를 시골 사람들은 위태롭게 아슬아슬 걸어다니다가 차에 치여 한 해에 5천여명씩 죽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당신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당신은 이 사실을 믿을 수 있는가?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믿을 수도 없었다. 내가 가진 첫 감정은 ‘이런 야만의 나라가 어디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침울한 마음으로 하나의 꿈을 접어야 했다. 나는 평생을 책상에 앉아서 살다 보니 예순서넛의 나이에 오른쪽 무릎이 시큰거리고 쑤시는 퇴행성 관절염이 왔다. 등산을 하지 말고, 평지를 걸으며 길벗 삼아 살아가라는 것이 의사의 처방이었다. 날마다 평지를 꾸준하게 걸어라. 그래서 산보 말고 또 하나의 계획을 세웠다. 걸어서 전국을 여행하자! 한 손에는 무늬 고운 오죽 지팡이를 짚고 다른 손으로는 아내의 손을 잡고 우리의 아름다운 강산을 두루두루 구경하면서 아내와 이런저런 인생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오늘은 이 절에서 내일은 저 산장에서 머물며 한정 없이 걷는 그 걸음걸음은 얼마나 멋들어진 노년의 낭만인가. 건강도 챙기고 낭만도 즐기려고 했던 나의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보도 없는 시골길들을 걸어가다가 언제 흉한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어찌 그 계획을 밀고 나갈 수 있겠는가.
모든 도로란 차도+보도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나라의 도로는 도로=차도인가. 그런 현상을 문화적 야만이라고 매도하고 싶진 않다. 우리의 현재는 식민지시대의 착취와 6·25의 초토화 속에서 지난 40년 동안 경제발전을 이룩해 오늘에 이르렀다. 국민소득 2만달러에 육박하는 그 초고속 발전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인간적인 조건들을 경시했고 유예했고 이해했다. 그중의 하나가 보도 없는 도로 만들기가 아니었던가 한다.
이제 우리는 앞만 보고 치달아온 ‘경제동물’의 상태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 이르렀는데도 국민들 50% 이상이 자신은 하층민이라고 여론조사에 응답하고 있다. 이런 사회심리가 형성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가 모두 더 잘살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혀 오늘에 만족하지 못하고 허기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제동물 상태에 국가마저 휩쓸려서는 안 된다. 나라는 이 시점에서 국민의 ‘인간화’ 작업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 전 국토의 도로를 차도+보도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인간화 작업의 하나다. 그리하여 내 노년의 꿈을 하루빨리 되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조정래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