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9.17 17:44
수정 : 2007.09.1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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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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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칼럼
이 지구상에는 200곳이 넘는 나라가 있다. 그 많은 나라들 중에서 대한민국은 ‘세계 12대 경제대국’이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고, 누구나 자랑스러워하거나 거침없이 으스대기도 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1960년대 초반에 국민소득 80달러의 최빈국에서 이제 2만달러에 다다르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런 자랑스러운 나라에서 ‘고아 수출 세계 4위’라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나 하나 잘 살기가 숨가쁜 세상에서 그런 것 알아 뭘 하느냐는 사회 풍조 때문이다. 그래서 고아 수출 세계 4위가 발가벗고 서 있는 것보다 더한 부끄러움인 것을 모른다. 그 냉혹한 무관심에 대해 외국의 언론들이 비판하고 나섰다. “이제는 한국도 경제대국이 된 만큼 더는 입양아들을 국외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
그런 비판에 앞서 이번 여름 서울에서는 국제한국입양아협회(IKAA)가 주최한 컨퍼런스에 600여명의 입양아 출신들이 참석했다. 그런데 그들 중 일부가 한국 입양아의 국외 수출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여러 나라의 말로 한 가지 말을 했다. “부끄러운 줄 알라!”
2년 전에 겪었던 일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국제도서전에 우리나라는 2005년의 주빈국이었다. 그래서 여러 작가들과 함께 나도 그 행사에 참석했다. 작품 낭독회와 신문사 인터뷰가 일주일간의 일과였다. 어느 날 나는 스웨덴 문학평론가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한참 인터뷰가 이어지다가 어느 대목에선가 입양아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의 입양아 국외 수출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순간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나는 수치스럽고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추려고 애쓰며 솔직하게 대답하려고 했다. 평소에 늘 생각해오던 문제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다시 물었다. “당신은 작가로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가?” 그 사람은 내 답변에 대한 불만스러움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참담하기 그지없는 심정이었다. 작가로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음을 시인했고, 앞으로 무슨 일이든 해보겠노라고 얼버무렸다. 그리고 2년이 되도록 고아 수출을 막기 위한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고아 수출은 6·25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단 3년의 전쟁에 300만명 이상이 죽고 전 국토는 초토화되도록 폭탄을 퍼부어댔으니 고아들이 얼마나 많이 생겼을 것인가. 가엾고 아까운 목숨 굶겨 죽이느니 외국으로 보내야 했다. 그 눈물겨운 선택은 옳았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온 것은 틀렸다. 전후의 가난에서 벗어나 어느 만큼 먹고 살게 되었을 때, 국민소득 5천달러를 넘어서는 그 어름에서 고아 수출은 중단되었어야 했다. 아니면 1만달러를 넘으면서부터는 틀림없이 그 문제를 해결했어야 한다. 그런데 2만달러를 자랑하는 오늘에도 고아들은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인구가 8억에 국민소득이 1천달러도 채 안되는 인도는 한 해에 320명의 고아를 외국으로 내보내고 있다. 그런데 인구가 고작 5천만이고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 이르는 대한민국은 한 해에 1376명의 고아를 국외로 내보내고 있다. 우리나라 역대 정부는 마음 편한 직무유기로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고, 우리 모두는 나 하나만을 위해 급급하며 얼마나 마음들을 굳게 닫고 살고 있는가. 30여년 전에 일본이 세계에서 얻은 별명이 ‘경제동물’이었다. 우리는 무슨 별명을 얻게 될까.
조정래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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