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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21 17:39 수정 : 2007.08.21 17:39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조정래칼럼

일찍이 인간들의 이성은 자유·평등·평화를 인류가 실현시켜야 할 3대 이상으로 삼았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유를 누리고, 어느 나라나 겨레든 평등을 이루며, 이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도 불화와 다툼이 없이 평화롭게 사는 것. 그 얼마나 고결하고도 아름다운 이상인가!

그런데 그 세 가지가 현실이 되지 못하고 영원히 이상으로 표류하게 하는 인간의 ‘세 가지 악’이 있다. 인종주의·혈통주의·종파주의가 그것이다. 국제화 시대, 지구촌 시대, 세계화 시대라는 구호가 요란해진 지 오랜데 그 셋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어쩌면 인간들은 그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편협함과 이기주의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겨낼 수 없는 본능이기에.

군대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일본의 행위를 비인간적 범죄로 규정했던 유엔에서 이번에는 우리의 ‘단일민족’ 의식을 지적하고 나섰다. 단일민족 의식은 ‘혼혈’이라는 말과 함께 혈통의 순수성을 강조함으로써 다인종 국가로 변해가는 세계화의 시대에 역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인간 차별이란 잘못을 범할 수 있으니 시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미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고치려고 나서지 않았던 문제에 대한 지적이다. 국제기구 유엔으로서 그런 지적을 하는 것은 타당하고, 그런 지적을 받을 때까지 태만했던 우리는 늦게나마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 단일민족 의식은 다른 말로 혈통주의고 순혈주의다. 피의 순수성을 강조하다 보면 당연히 나오는 것이 배타성이고 폐쇄성이며, 인간 차별이고 비인간적 행위다. 그것은 마땅히 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으로서의 악덕이다.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는 우리의 단일민족 의식은 과연 우리의 고유 전통이고, 자랑스러운 가치인가? 그 의식의 대중화 과정을 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다. 우리가 단일민족 의식에 사로잡힌 것은 해방 이후 교과서의 위력에 의해서였다. 그러니 그 역사가 겨우 얼마인가. 갑자기 해방이 되자 여러 가지 혼란과 불안상태에서 시급한 것이 무엇이었던가. 일제에 굴하지 않았던 정인보·이희승 같은 지성인들이 보기에 민족의 정체성을 세워 긍지감을 갖게 하고, 그 의식을 토대로 단결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단일민족임을 강조하고, 역사 이래 딴나라를 침략한 일이 없음을 미화하고, ‘은근과 끈기’를 미덕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암기했고, 시험을 쳤으며, 세대를 넘겨가며 대중 최면이 되었고, 마침내 절대가치처럼 착각하게 되었다.

지금 한국 사회는 혈통 문제에서 두번째 혁명기를 맞고 있다. 첫번째가 6·25와 함께 온 ‘혼혈아 시대’였다. 그리고 산업화에 따른 도시생활의 편리함 때문에 이 나라 처녀들은 농촌 총각들을 외면했다. 처녀들에게 버림받은 농촌 총각들은 ‘한국농촌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평생 독신으로 살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찾아나선 것이 우리보다 가난하게 사는 동남아 나라들 처녀들과 결혼하기였다. 그 두번째 혁명기 속에서 농촌에는 외국 며느리들이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현실이 되었다. 거기다가 코리안 드림을 안고 외국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단일민족이며 순혈주의는 얼마나 녹슬고 낡은 가치인가.

영어 배우기에 해마다 10조원 넘게 사교육비를 쏟아붓는 데 정신팔기 전에 올바른 의식부터 갖추는 것이 급하다.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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