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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26 17:49 수정 : 2007.03.26 17:49

조정래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조정래칼럼

독립투사로서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단재 신채호 선생은 극렬한 의열단의 투쟁을 논리화한 글 <조선혁명선언>에서 일본을 일컬어 ‘강도 일본’이라고 했다. 총칼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며 남의 땅을 빼앗고, 재산을 빼앗고, 목숨을 빼앗았으니 그보다 더 흉악무도한 강도가 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는가. 단재 선생의 그 일깨움은 오늘에도 새롭다.

그런데 일본 총리 아베는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한 증거가 없다”고 국제사회를 향해 큰소리를 쳤다. 뻔뻔하고 몰염치하다 못해 강도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언사가 아닐 수 없다.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미얀마까지, 피해자 장본인들이 군대위안부에 강제로 끌려갔음을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군들이 강제로 끌어가는 것을 본 목격자들이 수없이 많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자들을 강제로 끌어간 일본군 출신들이 계속 참회록을 쓰고, 사죄의 증언을 해 오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 총리는 강제로 동원한 증거가 없다고 한다. 그는 아마도 귀머거리에다가 문맹이기도 한 모양이다. 그런데 일본 각료들은 더 가상하게도 ‘정부가 발견한 자료들 가운데서는 강제연행을 직접 나타내는 기술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결정으로 총리를 받들었다. 자기들에게 불리한 자료는 찾아 없애기에 혈안이 되어 있을 분네들이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시는가.

지난 60년에 걸쳐서 일본 정부 각료들은 무수하게 망언을 일삼았다. 그동안 이 땅의 지식인들은 일본의 그 낯두꺼움과 비양심을 두고, 전후 독일을 닮으라고, 유대인과 세계를 향해 무릎꿇고 사죄한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를 본받으라고 수없이 일깨우고 충고했다. 그러나 이제 더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 방자함이 이미 도를 넘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은 북한에 일본인 납치문제를 해결하라고 몇 해 째 기승을 부린다. 이 얼마나 희한한 연극인가. 일본은 20만이 넘는 우리 여성들을 끌어다가 성노리개로 유린했으며, 200만이 넘는 사람들을 징병·징용으로 끌어갔으며, 400만이 넘는 목숨들을 36년 동안 죽였다. 그런 일본이 북한의 잘못을 끝없이 부각시키는 것은 자기들이 원자폭탄 피해국이라고 큰소리치고 나오는 것과 같은 적반하장의 행태를 다시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 정치인들의 그런 망언은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잖아도 흘러가는 세월의 무심함을 따라 젊은 세대들의 역사의식이 흐릿해지는 판에 일본 정치인들이 주기적으로 망언을 되풀이해 우리 젊은이들의 역사의식을 깨우치고 민족의식을 강화시키는 교육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앞으로도 주저하지 말고 계속 망언을 해 주기 바란다.

일본은 한반도의 ‘6·25 전쟁’ 덕을 보고 패전국의 가난에서 기적적으로 벗어났고, 그 바탕 위에서 ‘경제동물’이라는 오명을 앞세우며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이 20년 전의 한국과 중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본은 새롭게 보기 바란다. 일본은 20년 전에 유럽 선진국들을 상대하는 동양의 유일한 나라로 독주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의 국력 신장은 이미 일본의 위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구나 일본이 40만명 이상 학살한 ‘남경사건’을 ‘중국의 자작극’이라고 하니, 그런 대목에서만은 한국과 중국은 한 편이 될 수밖에 없다.

왜 세계인들은 독일 상품들을 무조건 신뢰하는가. 독일이 일본처럼 파렴치하게 굴었어도 그랬을까? 일본은 유엔의 상임이사국이 되고 싶어한다. 지금처럼 언행을 해서는 그 길은 멀다.


조정래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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