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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11 20:41 수정 : 2007.01.23 11:38

‘5대 불안’을 벗자

[‘5대 불안’을 벗자] 2부 : 일자리

‘9988’이란 은어가 있다. 국내 사업체 수의 99%, 고용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이르는 말이다. 국내 경제에서 큰 몫을 하고 있다는 말로 비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경쟁에 내쳐진 중소기업은 갈수록 영세화하면서 경쟁력이 뒤처지고 있다. 젊은이들은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고,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허덕인다.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대기업이 고용을 늘리지 않는 상황에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유력한 방법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여기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우천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부품소재산업을 비롯한 중소기업 육성은 산업의 기반을 튼튼히 할 뿐만 아니라 양질의 고용창출을 할 수 있는 핵심적인 고리”라고 말했다.

혁신형 중기 키우면 경쟁력-고용 동시만족
금 형업체 ‘재영’ 손끝기술-R&D 접목 성공

성공 사례와 한계=재영솔루텍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회사다.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이 회사는 1976년 설계도면 없이 만든 금형(막금형)으로 출발해 현재는 초정밀금형을 수출하는 첨단회사로 발전했다. 90년대 중후반 중국의 추격과 대기업의 단가인하 압력을 정보기술(IT) 접목을 통한 고부가가치화로 극복하고, 부품전문회사로 거듭나는 기회로 활용했다.

현재 제품의 40%는 일본의 미쓰비시, 미국의 지이(GE)메디컬 등에 수출한다. 매출액은 98년 308억원에서 지난해 1800억원으로, 임직원은 200명에서 469명으로 늘어났다. 김학권 회장은 “기존 숙련기능인력의 ‘손끝기술’과 첨단분야 연구개발을 접목하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 업체인 캐프는 90년대 말부터 세계시장 개척에 나섰다. 2000년에 기술연구소를 설립한 뒤 4년 만에 첨단 와이퍼 블레이드를 개발했다. 최근 미국 월마트 납품 경쟁에서 세계적 자동차 부품 업체인 보쉬를 물리쳤다. 임직원은 2004년 160명에서 지난해 270명으로 늘었다.

“파이팅, 중소기업” 개성공단 입주업체이기도 한 인천 남동공단의 금형업체 재영솔루텍 직원들이 지난 9일 회사에서 희망의 한 해를 다짐하며 손을 모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인천/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그러나 이런 성공 사례는 가물에 콩 나듯 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이 94년 중소제조업체(종업원 5~299명) 5만6472곳의 10년 뒤 현황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생존율은 25%였다. 300인 이상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업체는 0.1%(75개)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산업정책을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중심으로 전환해 세계적 중소기업을 만드는 데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최영섭 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세계의 주요 기업들은 부품·소재를 전세계에서 조달하는 ‘글로벌 소싱’ 전략을 취한다”며 “중소기업들이 여기에 적극 대응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호 유한대학장(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한국이 ‘중국 호랑이’에 올라타는 이른바 ‘타이거 라이딩 프로젝트’를 역설한다. 프로젝트의 요체는 “중국산 수출품에 한국산 소재·부품을 장착하는 것”이다. “호랑이를 못 타면 우리가 잡아먹히게 되며, 이미 시작됐다”고 그는 경고했다.

정부는 2010년까지 부품·소재 중핵기업 300곳 이상을 육성하고, 혁신형 중소기업도 2005년 1만3천곳에서 2008년 3만곳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정부가 숫자 채우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한국 중소기업 육성…전문가 의견
전문가들의 6대 제언=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중소기업을 만들기 위한 6가지 대책을 제언한다. 우선 중장기적 목표 아래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 내실 있는 기술기반 강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최영섭 연구위원은 “리스크가 커 기업들이 투자하기 어려운 신소재 등 첨단분야에 대해 정부가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 기술 유치와 외국 기업의 인수합병도 기술력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다. 우천식 연구위원은 부품·소재산업과 관련해 “독일은 기술력이 강하지만 전자기술에는 약한 반면 한국은 생산·전자기술에 강점이 있다”며 “독일의 중소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중국에 진출하는 방법을 국가적 프로젝트로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산·학·연 협력 수준을 높이는 것도 과제다. 김영호 학장은 “현재의 ‘연애’ 수준에서 ‘결혼’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며 “학생들의 현장학습과 공동연구개발 등 협력을 일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중소기업간 불공정 거래 개선과 금융지원시스템 개선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김태유 서울대 기술정책대학원 교수(전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는 “대·중소기업이 협력해 기술을 개발하면 이익을 공유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중소기업도 기술개발에 나설 것”이라며 “금융지원도 정부가 직접 하면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생기는 만큼 민간 벤처캐피털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창업보육센터와 지역혁신 클러스터의 내실화도 필수적이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창업보육센터의 운영인력을 전문가들로 충원해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 임주환 기자 hyun21@hani.co.kr


외국사례 살펴보니…
미, 혁신기업에 자본금 3배까지 지원
독일선 연구·인건비 보조

세계 각국의 중소기업 지원정책은 접근 방식이 다양하다. 창업 지원에서 산업 단위의 연구개발 활동 및 인적자원 고도화, 일정지역에서 산·학·연·관이 네트워크를 이루는 클러스터 조성에 이르기까지 나라별로 나름의 특장점을 갖고 있다.

미국은 신용보증 중심의 금융지원 및 인프라 구축 등 간접지원에 주력한다. 1982년 중소기업혁신연구개발(SBIR) 프로그램이 도입되며, 직접금융 지원은 대부분 폐지됐다. 혁신형 중소기업에는 중소기업투자공사(SBIC)에서 자본금의 3배까지를 보증하는데, 이 제도가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자금줄 구실을 한다. 연구개발에서는 1억달러 이상 연구개발 예산을 가진 연방기관들이 예산의 2.5%를 중소기업에 배분한다. 또 퇴역 경영자 등을 중소기업 경영지도와 연수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대기업 대비 중소 제조업체 임금수준 / 국내 중소 부품업체의 선진국 대비 기술경쟁력 수준
독일은 중소기업 정책을 지역, 환경, 기술정책과 동시에 추진한다. 또 실업자 감축도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다. 연방정부는 중기 연구개발 종사자의 인건비를 보조해주고, 공동연구·외부위탁연구 보조를 위한 기금을 조성한다. 주정부들은 인큐베이터(창업보육) 시설을 운영하며 지원한다. 또 연방경제기술부(BMWi)가 혁신형 중소기업의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예산은 2005년 4억5800만 유로에서 2009년 6억7300만 유로로 확충될 계획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의 이동주 연구위원은 “정보기술 쪽에 치중한 한국과 달리, 전통 손끝기술산업까지 혁신의 주체로 보는 게 독일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핀란드의 지원방식은 산학협동과 대-중소기업 협력체제 구축이다. ‘북유럽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오울루 테크노파크가 모범 사례다. 여기에 노키아를 비롯한 250개 기업이 들어와 있고, 1만2천여명의 연구인력이 활동한다. 핀란드는 이런 사이언스파크를 곳곳에 조성했으며,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절반 이상을 정보통신 클러스터 및 관련 중소기업 지원에 집중한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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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연중기획] 2007 희망 이정표 ‘5대 불안’을 벗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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