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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해석의 질은 곧 정치의 질이기도 하다. 지난 8월17일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 도중 문재인 대통령이 취재진의 질문 공세를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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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영민의 논어 에세이
⑤ 삼가 말하기(understatement)
공자가 희망하였던 것은
소리 없는 작은 행위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였다고 할 수 있다
정치공동체란 일종의 해석공동체다
커뮤니케이션이 거칠어진 나머지
구호와 폭력만이 만연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이라 부를 수 없으며
곧 정치적 타락의 지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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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해석의 질은 곧 정치의 질이기도 하다. 지난 8월17일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 도중 문재인 대통령이 취재진의 질문 공세를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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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대한 특별한 고려 없이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는 상상은 비현실적일망정 늘 즐겁다. 조직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인재인 “내”가 어느 날 직장을 떠나기로 마음먹는 거다. 뚜벅뚜벅 보스의 방으로 걸어가 똑똑 노크를 한 뒤 느릿느릿 들어가서는 태연하게 사표를 제출하고 돌아 나온다. 당황한 보스는 허겁지겁 나를 붙잡으며 묻는다, “아니 지금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직장을 그만두면 어떡합니까?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뭐지, 이 갑작스런 존댓말은?) 이 애처로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상상하는 일은, 떡볶이를 먹는 일만큼이나 즐겁다. 이때 월급이 너무 적어서 직장을 그만둔다고 하거나, 숨 막히는 위계질서가 싫어서 직장을 그만둔다고, 진지하게 말해서는 아니 된다. 그저 심드렁하게 이렇게 말하는 거다. “직장 관두는 데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그냥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는 거지.” 혹은 이건 어떤가. “오늘 하늘이 청명하더군요. 직장 그만두기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어요.” 울상이 된 보스는 애걸하듯이 매달린다. “내가 뭘 잘못 했나? 뭐든 내가 고치지, 고치고말고.” 이때 선심 쓰듯이 한마디 툭 던지는 거다. “지난 주 회식 때 저만 고기 안 주셨잖아요.” 그때서야 보스는 부하직원들을 빼고 간부들만 고기를 시켜 먹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낸다. 그때서야 자신의 치명적인 잘못을 깨닫고 황망한 표정을 하며, 저 인재를 붙들래야 붙들 수 없다는 강렬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왜냐? 성인(聖人)이라는 공자마저도 고기를 주지 않았다고 직장을 떠난 적이 있으므로.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맹자> ‘고자장’(告子章)에 따르면, 공자는 노(魯)나라 사구(司寇: 형벌이나 도난 등의 사안을 맡은 벼슬) 직책을 맡고 있다가 느닷없이 직장을 관두고 떠나버린 일이 있다. 제사가 끝났는데도 자신에게 제사 고기가 이르지 않자 쓰고 있던 면류관도 벗지 않은 채 노나라를 떠나 버린 것이다. 공자가 자신이 떠나는 진짜 이유에 대해서 침묵했으므로,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공자가 고기 때문에 떠났다고 생각했다.(不知者以爲爲肉也) 이를테면, 공자가 내심 너무너무 고기가 먹고 싶었는데 자신에게 고기를 주지 않자 그만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탓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공자가 고기에 대해 중독에 가까운 무조건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런 추론도 합리적이리라. 그러나 공자는 고기에 관하여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논어> ‘향당’(鄕黨) 편을 보라. “고기가 아무리 많아도 밥 기운을 넘치게는 들지 않으셨다.”(肉雖多不使勝食氣) 즉, 정육식당에 가서 배가 부르도록 고기를 먹은 뒤 입가심으로 공깃밥이나 냉면을 먹는 현대 한국인들과는 달랐던 것이다. 고기와 밥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놀라운 자제력을 지녔던 것이다. 그뿐이랴. “썰어놓은 모양이 바르지 않으면 먹지 않으셨고, 간이 맞지 않는 것은(제대로 된 간이 아니면) 먹지 않으셨다.”(割不正不食, 不得其醬不食) 즉, 똑같은 고기라고 할지라도 썬 모양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되면 젓가락을 들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썰어야 제대로 썬 것인가? 남북조(南北朝)시대 양(梁)나라 황간(皇侃)의 <논어의소>(論語義疏)에서는 각(方)이 제대로 지도록 썰어야 고기를 제대로 썬 것이라고 해석했다.(古人割肉 必方正. 若不方正割之, 故不食也) 음, 이건 제대로 된 깍뚝썰기가 아니군. 각도가 안 맞잖아. 안 먹어. 동진(東晉)의 강희(江熙)는, 여기서 제대로 고기를 썬다는 말은 도살할 때 합당하게 도축했는가의 문제라고 해석한다.(殺不爲道, 爲不正也) 음,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결말에서 소를 잡듯이, 난폭하게 소를 도살했구먼. 이런 고기는 안 먹어. 그뿐이랴, 공자는 “제사 고기는 삼일을 넘기지 않으셨다. 삼일이 넘으면 드시지 않았다.”(祭肉不出三日 出三日不食之矣) 공자는 고기라면 무조건 먹으려고 드는 그런 탐욕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단순히 양질의 단백질 덩어리로서의 고기를 주지 않는다고 공자가 삐져서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게다가 공자는 백수의 여유를 즐기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맹자> ‘등문공장’(?文公章)에 따르면, 공자는 정사에 종사할 만한 직책이 없는 기간이 3개월 정도 되면 초조해했다.(孔子三月無君, 則皇皇如也) 그렇다면 공자가 부랴부랴 떠난 데에는 뭔가 좀 더 심오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그래서 사태를 좀 안다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예(禮)가 없어서 공자가 떠났다고.(其知者以爲爲無禮也) 그러고 보면, 위에서 거론한 고기에 대한 공자의 태도 역시 다 예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다. 고기를 밥 기운보다 넘치게 먹지 않는 것도 예, 바르게 썰어 먹는 것도 예, 간을 맞추어 먹는 것도 예이다.
실로 <논어> ‘안연’(?淵) 편에서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고 말했다. 제사 지낼 때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를테면 <논어> ‘위정’(爲政) 편에서 공자는 “살아서는 예로써 모시고, 죽어서는 예로써 장사지내고, 또 예로써 제사지내라.”(子曰 生 事之以禮 死 葬之以禮 祭之以禮)라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공자가 그토록 중시한 제사의 자리에서 고기가 제대로 분배되지 않는 상황을 본 공자는, 고기를 못 먹어서 아쉬움을 느꼈다기보다는 제사의 예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개탄했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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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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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사랑하되 비판해야 하는 딜레마
그러나 불만을 느꼈다고 해서 “면류관도 벗지 않고 가버리는” 행위야말로 고기를 제대로 분배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예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가. 면류관은 제사 시에만 쓰고, 평상시에는 쓰지 않게 되어 있는 법. 그런데도 불구하고 공자는 그저 빨리 떠나고자 면류관을 벗을 틈도 없이 떠나 버린 것이다. 예를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를 지키지 않으면서 떠나버린 셈이 된다. 따라서 이 해석은 부자연스럽다. 남들이 예를 어긴 것을 비판하려면 그 자신은 예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타당하다. 게다가 면류관을 벗지 않은 행위란 지나칠 정도로 공공연하게 예를 어기는 것이다. 왜 평소에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도 말라던 사람이, 그토록 공공연하게 다른 사람들이 다 알아볼 수 있도록 예를 어겼을까? 왜 그토록 보란 듯이 예를 어기며 직장을, 조국 노나라를 떠나 버렸을까? 거기에는 어떤 숨은 의도가 있지 않을까?
이에 맹자는 공자가 작은 죄를 구실삼아 떠나고자 한 것이다(欲以微罪行)라고 해석한다. 이를 부연하여, 아무 이유 없이 구차하게 떠나고 싶지도 않았고, 또 크나큰 문제를 걸고서 떠나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라고 남송(南宋)의 주석가 주희(朱熹)는 해석한다. 당시 조국 노나라는 날로 수렁에 빠지고 있었고, 개혁에 대한 전망은 도대체 존재하지 않았다. 절망한 나머지 공자는 자신의 조국을 혹독히 비판하고 떠나고 싶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차마 못할 일이었던 것이다. 혹독하게 비판하기에는 조국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계기도 없이 그냥 떠나버리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에, 자신의 조국에 누를 끼치지 않고 떠날 만한 정도의 계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떠난 것이다. “고기가 이르지 않는” 일이 발생하자 그것을 계기로 떠난 것이다. 이 마음을 모르는 주변 사람은 자신들의 깜냥대로 추측하여 구설수를 삼았고, 이에 맹자는 군자가 하는 바를 일반 사람들은 진정 알지 못한다(君子之所爲 衆人固不識也)라고 논평을 한다.
위의 해석이 타당하다면, 고기가 이르지 않은 상황을 계기로 공자가 떠나버린 일은 조국을 사랑하되, 그 조국을 비판해야 하는 딜레마 속에서, 섬세하게 선택한 사려 깊은 행위이다. 만약 공자가 특정한 도덕률에 고집스럽게 매달리는 협애한 도덕가였다면, 그는 그저 특정 도덕 기준을 들어 자신의 조국을 가차 없이 매도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기에는 공자는 노나라라는 정치공동체에 무관한 인물이 아니었다. 만약 공자가 자신의 출신 지역이나 집단에 대해 무비판적인 충성을 일삼는 사람이었다면, 무조건적으로 조국의 편을 들어 어떤 흠이라도 눈감아 주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조국을 사랑하되, 그 조국을 비판해야 하는 딜레마에 마주하여 그 나름의 해결책을 자신의 행동에 담고자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행동은 무척이나 사려 깊은 것이어서, 그 깊은 차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행동을 오해하였던 것이다.
정치과정의 핵심은 커뮤니케이션
혹자는 왜 공자가 자신이 떠나는 이유를 명명백백히 천명하지 않고 침묵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지 모른다. 그러나 공자가 희망하였던 것은, 소리 없는 작은 행위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였다고 할 수 있다. 정치과정에서 공동체 구성원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불가피하며 핵심적이다. 그런 점에서 결국 정치공동체란 일종의 해석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성원들을 이어주는 유대가 약하면 약할수록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동원되는 언성은 높아지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하여 폭력과 과장에 의존하게 된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소통과 해석을 가능케 하는 바탕을 공유하고 유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소통과 해석의 질은 곧 정치의 질이기도 하다. 커뮤니케이션이 거칠어진 나머지, 구호와 폭력만이 만연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부를 수 없으며, 곧 정치적 타락의 지표가 된다. 그것은 공자가 개탄했던 당대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논어> 속의 공자는 불필요한 과장(overstatement)을 비판하고, 침묵 및 삼가 말하기(understatement)를 옹호한다.
이러한 해석이 일리가 있다면, 결혼을 위한 양가 상견례에서 고기를 나누어주지 않았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 파혼을 선언하는 약혼자를 너무 미워해서는 안 된다. 상견례에서 마주한 시부모의 가부장적인 행위에서 자신의 불행한 미래를 보았기에, 그러나 오랫동안 사귀어온 연인의 부모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에, 고기를 명분으로 상견례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래도 한때 사랑했던 상대를 배려하는 일이라고 믿으면서.
그러나 삶의 여러 국면에서 침묵이 늘 배려의 소산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열네 살>에서 중년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어느 날 가족을 홀연히 떠나버린다. 남겨진 열네 살 소년은 그로 인해 그 자신 아버지의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도대체 치유할 길이 없는, 어떤 상처를 입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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