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공원국의 유목일기
⑦ 순록치기
올가미가 휙 날아가 뿔이 걸리면
올가미를 잡아당기며 다가가
뿔을 잡아 넘어뜨린다
그 발버둥과 겁먹은 검은 눈동자를
바로 쳐다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혼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으나
사슴은 죽어서도 인간의 목숨을
보살피는 물건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에벤키 썰매의 유연성과 견고함을
완성시키는 것이 사슴가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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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록치기 바실리의 이웃 사람들. 타이가의 방목은 한둘이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어서 언제나 여러 집이 힘을 합쳐야 한다. 맨 오른쪽이 바실리.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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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찌는 내 발이 다 나아야 순록이 있는 곳으로 데려간다고 했다. 쉬지 않고 주무른 덕인지 다행히 통증은 차츰 줄어들었다. 저녁에 발 상태를 확인한 후 이론찌가 허락했다. “내일 같이 가자. 아침에 통증이 있으면 하루 더 쉬어.”
가만히 있는다고 낫는 게 아니라면 움직여야지. 순록은 말이나 양처럼 완전히 길들여질 수 없는 동물이라서 여전히 다루기 조심스럽다. 사슴가죽으로 된 멍에를 씌우는 순간 녀석들은 반항한다. 다른 순록들이 자유롭게 산을 오갈 때 자기만 어렵게 썰매를 끌어야 한다는 것을 아니까. 일단 멍에를 차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 순록은 사나흘 굶어도 문제없이 살 수 있는 특이한 사슴이다. 사나흘 굶고 타이가로 들어가면 한시도 쉬지 않고 눈을 파고 이끼를 찾아낸다. 멍에를 씌우면 짝끼리 또 신경전을 벌인다. ‘너 열심히 뛰어. 나 고생시키지 말고.’ 두 놈이 심하게 다투면 마구와 뿔이 서로 얽혀 크게 다칠 수 있다. 그래서 성질이 더 급한 녀석의 뿔은 다듬어 다치지 않게 한다.
내 썰매에 가장 순하고 믿음직한 녀석 둘이 배정됐다. 이론찌는 녀석들의 고비를 자기 썰매 뒤에 묶었다. “호이!” 선두 바실리의 썰매가 출발하자 소리도 없이 썰매 다섯 대가 타이가로 들어간다. 순록은 괴력의 동물이다. 사흘을 먹지 않은 놈들이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썰매를 끌고 20㎞를 달릴 수 있다. 달리면서 가끔 눈을 씹을 뿐이다. 갈라진 널찍한 앞굽에 더해 뒤로도 발가락 같은 굽이 한 쌍 있어서 온몸이 눈에 빠져도 돌고래처럼 다시 튀어오른다. 앞발을 디딘 곳에 정확히 뒷발을 디디고 나뭇가지가 나타나면 작은 동작으로 뿔이 걸리지 않게 조정하며 달린다. 눈이 너무 깊으면 가슴으로 밀면서 가고 가파른 오르막도 썰매를 들어 올리듯 끈다. 순록 썰매는 눈 바다의 서핑보드다. 이 짐승의 인내와 힘 덕택에 에벤키는 타이가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3~4㎞ 밖에서도 인간의 냄새 맡는 늑대
가는 도중에 드미트리가 놓은 덫에 흑담비 한 마리가 걸렸다. ‘손님’이 숲으로 들어가는데 ‘손님’이 왔으니 좋은 징조다. 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로 들어온 후 흑담비는 한때 씨가 말랐다. 모피 동물 중 털이 가장 부드러워 돈 많은 여성들이 선호했기 때문이다. 잡힌 녀석은 안타깝지만 이 숲이 이렇게 건강하다는 증거였다. 언덕을 넘고 강을 건너 이미 10㎞ 이상 달렸다. 순록은 어디 있는 것일까? 나무둥치들이 아주 큰 곳, 사람이 손을 댄 적이 없는 숲으로 들어섰다. 목동들은 언덕 중턱에 오르자 모두 썰매에서 내리더니 소리를 질렀다. 부우우워그, 모오오그, 부우우워그…. 최대한 길게 소리를 빼라고 했다. 한참을 불러도 숲에서는 아무 소식이 없는데 파벨이 말없이 웃으며 멀찍이 숲을 가리켰다. 가문비나무 둥치 아래로 허연 짐승 하나가 나타났다. 향도 순록이다. 놈은 가까이 와서 우리들을 확인하더니 다시 숲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열을 지은 순록 무리가 나타났다.
타이가에서 갑자기 200마리가 넘는 사슴 떼가 달려 나오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순록치기들은 바삐 썰매 방향을 바꿨다. 녀석들은 한곳에 많이 모이면 소용돌이처럼 빙글빙글 돌거나 뛴다. 순한 놈들이지만 달리는 녀석들의 뿔에 썰매의 복잡한 끈이 얽히면 위험하다. 놈들은 너무나 빠르므로 우두머리 썰매가 녀석들의 길을 잡아주어야 한다. 바실리의 썰매가 화살처럼 설사면을 미끄러져 달리고 그 뒤로 순록 떼가 따르자 나머지 썰매들도 따른다. 후미를 맡은 우리 팀은 속도가 가장 느렸다. 무리를 따라잡기 위해 이론찌는 채찍질을 하고 나는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질렀다. 이론찌는 계속 재촉했다. “더 쎄게, 쎄게, 워워!”
끊임없이 방향을 바꿔야 하는 타이가의 소로에서 속도를 높이고자 이론찌는 숫제 썰매 위에서 일어섰다.
“해 봐, 원국. 이렇게.”
나는 일어서자마자 쓰러졌다. 두 번 실패한 후에는 썰매에서 떨어질까 봐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것이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구나.’ 혹독한 조건에서 위험한 일을 하고 있지만 사슴을 몰고 가며 그들은 질주를 마음껏 즐겼다. 그렇게 사슴들은 또 십리 이상 달려 새 방목지를 찾아갔다.
타이가의 방목은 한둘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여러 집의 무리를 모아 함께 몰아간다. 사슴이 뛰고 방향을 잃으면 누구도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실리처럼 가장 뛰어난 목동이 앞에 서고, 파벨처럼 경험 많은 노인들이 조언을 한다. 어쩌다 실수로 타이가에 혼자 남겨지면 아무리 뛰어난 목동도 손쓸 도리가 없다. 인간끼리 돕고 사슴과 인간도 돕는다. 인간이 늑대를 막아주고, 사슴은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몸 전체를 준다. 늑대는 3~4㎞ 밖에서도 인간의 냄새를 맡기 때문에 인간이 사슴 가까이에 있을 때 공격하지 않는다. 또 인간은 늑대가 없는 곳으로 사슴을 몰아갈 의무가 있다. 날은 여전히 추웠지만 이번에는 면 버선과 털버선, 순록 펠트 장화 위에 순록 가죽 덧신까지 신었으니 걱정이 없었다. 이론찌는 신나는 순록치기의 노래를 부르다가 내게 소리쳤다.
“노래 불러. 원국, 크게!”
아는 노래 몇 곡을 모아 돌려가며 불렀다. 노래를 부르거나 입을 움직이지 않으면 볼이 언다. 콧수염이 무겁도록 고드름이 달린다. 힘이 들 때 영리한 왼쪽 놈이 살짝 뒤처져 힘을 아낀다. 이 미묘한 차이를 어찌 감지하는지 녀석이 꾀를 부리면 여지없이 이론찌가 돌아보며 무서운 얼굴로 겁을 줬다. 무서운 눈빛을 보면 고개를 돌리는 녀석이 애처로웠다. 어두워질 무렵 오두막으로 돌아오니 온몸이 다 쑤셨다. 오늘 충분히 밥값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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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가 놓은 덫에 걸린 흑담비 한 마리. 모피 동물 중 털이 가장 부드러운 흑담비는 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에 들어온 뒤 한때 씨가 마를 정도였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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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 단 몇초 만에 끝났다
에벤키식 순록치기를 타이가식 유목이라고도 한다. 네 계절을 돌아가며 목장을 바꾸고, 겨울에는 순록은 숲에 두고 목동만 오두막으로 돌아와 잠을 자지만 나머지 계절에는 순록 곁에서 천막을 치고 지낸다. 순록 먹이인 이끼는 회복 속도가 매우 느리고 희소한 자원이므로 순록치기들은 초원 사람들보다 광대한 지역을 이동해야 한다. 순록은 빨리 번식하는 종족도 아니고 타이가의 조건도 대규모 무리를 허용하지 않으므로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사냥은 필수적이다. 눈과 타이가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눈은 사물을 덮어 성장을 멎게 하지만 이동 수단을 제공하고, 그 아래 생명들이 얼어 죽지 않도록 한다. 타이가는 자원이 희박하지만, 가없이 넓어서 이동할 수 있으면 살 수 있다. 또 타이가는 이끼를 기르고 짐승을 기르지만 인간과 짐승의 시야를 가려 무리의 규모가 커지지 못하도록 한다. 눈과 숲의 두 얼굴 덕에 타이가의 항상성은 유지된다.
12월, 도축의 계절이 시작됐다. 미슈킨 마을에서도 집집마다 두어 마리를 잡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니 파벨이 올가미를 들고 순록 우리로 들어간다. 올가미를 보면 이 영민한 짐승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 소용돌이치듯 돌면서 필사적으로 달아난다. 그러나 목동의 올가미가 빗나간 것을 본 적이 없다. 올가미가 휙 날아가 뿔이 걸리면 올가미를 잡아당기며 다가가 뿔을 잡아 넘어뜨린다. 예순이 넘은 파벨이 사슴을 뿔을 잡아 넘어뜨리고 목에 줄을 걸었다. 잡힌 녀석은 영락없이 끌려 나와야 한다. 대개 중간 크기의 수컷 중 약한 녀석을 잡는다. 그 발버둥과 겁먹은 검은 눈동자를 바로 쳐다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겨울에 먹을 식량을 준비하고 일부는 팔아 설탕과 밀가루 따위 식료품으로 바꿔야 한다.
이틀 동안 다섯 마리가 타이가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녀석을 눕히면 신속하게 목을 자른다.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도록 받아낸다. 그다음 정강이뼈 넷을 분리해낸다. 정강이 가죽으로 운티라는 털신을 만든다. 이어서 재빨리 몸통의 가죽을 벗겨내고, 인후와 소화기 이외의 내장을 먼저 꺼낸다. 그다음으로 소화기를 다 꺼내고 마지막으로 흉강에 고인 피를 그릇에 받는다. 피는 순대를 만드는 재료로 쓴다. 고기는 밖에 두어 그대로 얼리고 내장만 조리용으로 집으로 들인다. 삶과 죽음이 단 몇초 만에 끝났다. 위장이 갈라질 때 향긋한 이끼 냄새가 났다.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 둘이 재빨리 놀리지 못하면 사체가 얼어붙는다. 소화 중인 음식물 외에는 털 한 올 버리지 않았다. 발굽은 단추와 공예품, 뿔은 장식품과 마구, 힘줄은 올가미 재료로 쓴다. 한 집이 순록을 잡으면 공동체 모두가 와서 마음대로 먹고, 얼린 살코기 일부는 팔고 일부는(대개 다리 하나) 톱으로 잘라 나눈다.
죽기 직전의 두려움에 잠긴 그 검은 눈동자는 어둠 속의 타이가처럼 한없이 깊었다. 순록은 말보다 오히려 먼저 길들여졌다고 한다. 시베리아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던, 아니 인간의 삶 전체를 부양하던 위대한 존재의 가는 길을 지켜보는 것은 행복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다면 모르되, 기어이 먹겠다면 도축에서 손질까지 한 번쯤 목격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으리라. 살고 싶어하는 모두의 본성을 외면한 채 뒤에 숨어서 닭 가슴살의 열량과 암송아지 스테이크 맛을 논하는 이중적인 삶, 앎과 감정과 행동이 갈라진 삶을 치료하고자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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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매에 실려 이웃에 팔려가는 순록. 순록은 사흘을 먹지 않고도 단 한 번도 쉬지 않은 채 썰매를 끌고 20㎞를 달릴 수 있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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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전령으로, 존재의 근원으로
그 영혼이 있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으나, 사슴은 죽어서도 인간의 목숨을 보살피는 물건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유연한 버드나무와 강인한 자작나무로 만든 에벤키 썰매의 유연성과 견고함을 완성시키는 것이 사슴가죽이다. 썰매가 지형에 따라 삐걱댈 때 사슴가죽 끈이 질긴 용수철처럼 썰매를 보호한다. 스키 바닥을 감싼 사슴가죽이 없으면 사냥꾼들은 소리없이 짐승에게 접근할 수 없다. 타이가에 들어올 때 사슴가죽 덧신이 없으면 인간의 발은 한 시간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사슴가죽으로 바람을 막고 바닥에 깔고 천막을 만든다. 생명과 관련된 것들에 사슴의 몸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므로 알래스카에서 유럽까지 순록이 사는 지역 모든 사람들이 이 사슴을 ‘어머니 동물’로 숭배했다. 순록은 기다란 뿔에 태양을 싣고 숲속에 빛을 가져다주는 빛의 전령으로, 머리에 ‘생명의 나무’(生命樹, 世界樹)를 이고 다니는 존재의 근원으로, 여성의 인격을 지닌 사냥꾼의 보호자로 등장했다. 어떤 이는 시베리아의 사슴돌(鹿石)과 선사시대 사슴 예술 모티브 전체를 ‘사슴 여신’ 혹은 ‘어머니 사슴’으로 읽어낸다.(Esther Jacobson,
) 나는 우랄산맥 일대 북극권의 코미 이야기꾼들한테서 사냥꾼의 배필이 되고 싶었던 아름다운 순록의 슬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순록의 검은 눈은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의 자궁을 닮아서 그토록 깊은가 보다.
숲을 나오는 날 바실리의 썰매에 팔려가는 순록 한 마리와 같이 탔다. 설상차가 일으키는 눈보라가 덮치면 그 깊고 검은 눈동자를 눈꺼풀 아래 숨겼다. 대로변 마을에 도착하니 러시아인 셋과 에벤키 안내인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도축한 것을 보고 가져가겠다는 사람들이다. 바실리가 칼질을 시작한다. 나는 그 일이 이 추위 속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기에 뛰어들어 함께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꺼냈다. 그들은 이 장면을 비디오에 담았다. 작업이 끝나자 그들이 내게 말했다. “차에 실어.”
자기들이 먹을 고기건만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고 내게 실으라는 그 무례함이 가소로웠지만, 한편으론 나를 에벤키처럼 대하는 것이 오히려 고마웠다. 그들은 소화기를 먹지 않기에 버렸다.(나중에 바실리가 챙겨 갔으리라.) 차에 몸통을 실을 때 흉강에 고인 피를 땅에 쏟아부었다. 새하얀 눈 위로 아직도 더운 붉은 피가 스며들었다. 그들은 모르리라, 타이가에서 이 피 한 잔의 의미를.
“바샤(바실리), 장갑 고마웠어요, 아주 많이.”
피가 꾸덕꾸덕 얼어붙는 장갑을 벗고 바실리는 내가 준 새 장갑을 꼈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그를 뒤로하고 우리는 먼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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