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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2.24 19:00 수정 : 2006.12.24 19:00

22일 사회복지기관 ‘나눔의 집’에서 주민들이 달동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김기태기자 달동네에서 한달] ⑧ 동네 주민들과 좌담


‘달동네에서 한달’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자리로, 지난 22일 저녁 서울 상계4동 양지마을에서 오랫동안 지역활동을 해온 신부님과 동네 주민들이 모여 ‘달동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권춘택 신부=우리 양지마을은 1960년대 중반 이후 서울 도심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정착하면서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다른 도시 지역에 비해 아직 공동체적인 문화를 많이 간직하고 있어요.

이득희씨=저는 우리 딸한테 이렇게 말해요. 잠만 따로 잤지, 다 가족이라고. 눈만 뜨면 이웃끼리 골목에서 마주치죠. 특히 여름엔 골목 밖으로 다 나와 지내요. 그런데 작년에 뉴타운 계획 발표가 난 뒤로 주민들이 많이 바뀌었어요.

김판옥씨=뉴타운 발표 즈음해서 집 주인이 70% 정도가 바뀌었어요. 살지도 않을 외지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 집 주인도 부산 사람인데, 우리 아들하고 동갑이더군요. 이 분들은 어차피 투기가 목적이니 집 수리도 잘 안해줘요. 저도 지붕이 내려앉으려고 해서 주인에게 연락을 몇 번이나 했는데, 답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제 돈으로 고쳤어요. 세입자 모르는 사이에 집 주인이 계속 바뀌니 세입자는 자기 집 주인이 누군인지도 모르죠.

=여기 집 전세가 보통 1천만원 정도인데, 이 돈으로는 여기 말고 살 곳이 없어요.

=오늘도 우리 마을의 한 분하고 얘기하다 왔는데, 이 분은 전세도 아니고 월세로 살아요. 이 분은 심지어 임대아파트 보증금 정도의 돈도 없어요. 개발이 주민을 몰아내고, 결국 노숙자로 만드는 거죠.

서말숙씨=제가 사는 임대아파트 쪽에는 아이들이 많은데, 애들 대부분은 한부모 가정에서 커요. 가정이나 학교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학교를 그만 두는 아이들도 종종 보여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건강한 꿈을 심어주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길을 보여줘야 하죠. 그런데 이곳 아이들은 아무래도 그런 기회를 많이 박탈당하죠.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배우잖아요. 의사를 보고 교사를 보면서 그런 꿈을 품죠. 그런데 우리 공부방의 한 아이는 꿈이 ‘노동일’이에요. 그 아이 아버지가 노동일을 하거든요. 어른들은 악으로라도 사는데, 아이들은 일어서기도 전에 주저앉는 법을 배워버리는 것 같아요. 제도가 빈곤을 털어버리지 못하게 만들기도 해요. 우리 집은 생계 지원을 받고 있는데, 아이가 고3이라서 대학 등록금에 쓰려고 목돈을 마련하고 있어요. 3천만원 정도 모았는데, 정부에서 그 이자에 해당하는 액수를 수익으로 간주해서, 생계지원비를 줄였어요. 그러니 사람들은 돈을 아예 현금으로 가지고 있거나, 다른 사람 계좌에 맡겨뒀다가 돈을 떼이기도 해요.

왼쪽부터 권춘택 신부, 이득희씨, 김판옥씨, 서말숙씨,

=수급권자들은 일을 해도 그 수입액 만큼 빼고 지원을 하니까 소득이 잡히지 않는 일용직 등을 선호하죠. 일을 해서 빈곤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들을 제도가 주저앉히는 허점이 있어요. 또 지금 수급자는 전국적으로 176만명 정도인데, 정작 절대빈곤선 이하의 수입을 가진 사람은 400만~500만명 정도로 추산해요. 정부에서 예산이 없다보니, 지원 대상을 ‘두드려’ 맞추는 거죠.

김=수습권자들은 그래도 최저생계비는 보장받지만, 문제는 그도 받지 못하는 차상위계층입니다. 특히 노인분들을 보면 호적에는 아들이 멀쩡히 있어서 10원 한장 못 받는데, 정작 아들은 신용불량자인 경우가 있어요.

=버림 받은 노인들이 의외로 많아요. 우리 마을에도 노인 한 분이 계신데, 지나가면서 연탄재가 나와 있으면 ‘살아 계시구나’ 하고 생각해요. 이 분이 아침 6시30분에 집에서 나가는데, 서대문으로 간대요. 그곳 성당에서 아침을 준다고 거기까지 가는 거죠. 그런데 이 분이 생계지원을 받지 못해 동사무소에 알아봤더니, 빵장사를 하는 며느리가 소득세 신고액이 아주 높다는 거예요.

=그럴 경우엔 지역의 사회복지사가 이 분에게 생계비를 주고, 법적으로 며느리에게 구상신청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정부에 대고 “일단 나를 도와주고, 돈은 우리 며느리한테 받아라”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죠. 적극적으로 손을 벌리면 지원이 몰리지만, 조용히 있으면 가난에 허덕이는 것도 문제입니다.

=맞아요. 어느 집은 절에서, 성당에서, 복지관에서 가져다 주는데, 그 옆집에서는 비슷한 사정인데 정작 아무 것도 못 받을 때가 있어요. 지난해 아버지가 집을 나가서 아이들 두 명만 남은 경우가 있었는데, 사정이 알려지자 온갖 쌀과 빵이 집에 쌓여서 빵은 결국 다 못 먹더군요.

=지원이 이중삼중으로 겹치는 곳이 있는 반면, 사각지대도 존재하죠. 그래서 지역 차원의 협력이 필요한 거죠. 지원을 전달하는 체계도 더 촘촘하게 만들어야 하구요.

=지역에서 빈곤층과 접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자질도 중요해요.

=아주 오랜 전에 사정이 딱한 할머니 한분이 있어서 동사무소에 모시고 간 적이 있는데, 사회복지사가 너무 무성의한 말을 해서 속이 상한 적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사회복지사들이 이해도 돼요. 여러 사람이 와서 요구하는 것도 많을 테니까요.

=기초생활수급권자를 선정하는데도 좀 객관성을 결여한 경우가 많아요. 임대 아파트에 좋은 차가 보일 때도 있구요. 임대아파트나 양지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수억원씩 뛴다는 아파트 값은 남의 나라 얘기예요. 그래서 저는 아예 “아파트 없는 2천만명은 다른 나라 가서 따로 살자”고 말해요. 우리는 살던대로 살지만, 우리 자식들은 집 때문에 걱정입니다.

=집이라는 것이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어차피 자기가 사는 곳이잖아요. 그걸 가지고 왜 그렇게 값을 터무니 없이 올리는지 이해도 안가고, 화가 나요.

=이 동네엔 건설 노동자가 많아요. 하루 건설 현장에 일 나가면 6만~10만원 받아요. 죽을 때까지 일해도 아파트 살 엄두가 안나죠. 그래서 우리끼리 그러죠. “어차피 아파트 사기도 글렀는데, 그냥 술이나 먹자”고요.

=옛날에는 집에 돈이 없어도 아이들 공부 잘 시켜서 대학 보내면 자식들은 잘 살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돈이 없으면 아이들 공부도 못 시키죠. 게다가 요즘에는 집에 아이들이 한둘이라 부모 집을 물려받기 십상일텐데, 아파트를 가진 집과 그렇지 않은 집 아이들 사이의 격차는 더 벌어지겠죠. 이런 요인들이 이제는 계층 이동을 점점 어렵게 합니다.

정리/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좌담 참석자들

■ 권춘택(46) 신부 대한성공회에서 운영하는 사회봉사기관인 ‘노원 나눔의 집’ 대표입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빈민을 지원하는 활동에 몸담았습니다.

■ 이득희(48)씨 서울 종암동에서 살다가 1991년에 양지마을로 이사왔습니다. 반장 10여년, 통장 3년을 거쳐 마을 사정에 밝습니다.

■ 김판옥(49)씨 양지마을 언저리에서 살면서 집수리 등 건축일을 주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역 인터넷신문인 <노원시민신문>의 편집장으로도 일합니다.

■ 서말숙(48)씨 1992년부터 서울 노원구 하계1동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4년 전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방 하나를 잡고 동네 아이들을 봐주는 ‘엄마사랑’ 공부방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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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김기태기자 달동네에서 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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