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10 09:21
수정 : 2019.10.1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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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쌀국수’의 분리우. 사진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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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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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쌀국수’의 분리우. 사진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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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강북구 수유동. 자주 갈 일 없는 동네를 친한 친구 여럿이 거주하는 탓에 방문했다. “수유동에 왔으면 당연히 도장 찍고 가야 한다”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삼양시장으로 향했다. 아직도 그 옛날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삼양시장은 생소했다. 시장 낡은 상가에는 유명한 ‘삼양시장 떡볶이’가 있다. 20여년 넘는 세월 동안 ‘존버’(견디고 견딘다는 뜻의 신조어) 정신으로 버텨 온 굴지의 떡볶이 가게다. 메뉴는 ‘떡볶이 정식’ 그리고 튀김이 전부다. 대접 한가득 나오는 국물 떡볶이, 튀김, 꼬마김밥과 삶은 달걀, 튀김만두인 ‘못난이’가 주문과 동시에 나왔다. 후추와 마늘 향이 물씬 나는 매콤한 국물을 떠먹고 삶은 달걀을 부숴 떡과 함께 먹었다. ‘별로 맵지 않네’ 싶다가 갑자기 휘몰아치는 매콤하고 칼칼한 기운에 연신 땀을 훔쳐냈다. 떡볶이 국물에 순대를 찍어 한 입, 못난이도 한 입 베어 물면 “나 떡볶이 별로 안 좋아해”라는 말이 쏙 들어간다. 3000원의 행복이다. 정식 한 상을 먹어 치우자 친구들은 “2차 가자”고 했다. 도대체 음식이 들어갈 배가 있나?
2차로 방문한 곳은 수유시장 인근 골목의 ‘맘 쌀국수’다. 허름하고 낡은 상가와 살풍경한 건물들이 이어지는 골목에서 갑자기 마주친 베트남 쌀국수집은 영화 세트장에 들어선 듯 낯설었다. 베트남식 부침개 ‘반세오’, 월남쌈, 고기덮밥의 일종인 ‘베트남 덮밥’과 베트남 쌀국수와 같은 익숙한 메뉴 사이에 ‘분리우’가 눈에 띄었다. 새로운 것은 도전해 봐야 그 맛을 안다. 이윽고 나온 분리우의 모양새는 그저 신기했다. 커다란 새우, 향신료 얹은 주먹만 한 우족, 토마토, 돼지고기, 튀긴 두부와 선지 등이 들어간 모양새는 그야말로 굉장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베트남 언어, 그리고 선지가 둥둥 떠 있는 쌀국수까지 베트남 노상 식당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국물 맛도 굉장했다. 돼지고기 국물은 깔끔하고 군내 없고, 새우 향은 고소했다. 약간은 노릿한 우족 냄새까지 느껴졌다. 지금까지 먹어온 베트남 쌀국수는 도대체 뭐였지? 홀린 듯이 국물을 떠먹다 베트남식 생선 액젓을 살짝 풀어 넣었다. 고릿하고 짭조름한, 명치까지 치고 올라오는 감칠맛! 그래, 이 맛이었구나. 이것은 베트남식 선지 해장국, 도가니탕, 새우탕면, 그리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술국의 맛이었다. “소주 한 병 더 주세요”라고 외친 것이 나였던가, 아니면 친구들이었던가?
늘 보던 친구들을 생경한 동네에서 보는 경험은 특별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맛집을 발견하는 것은 늘 짜릿하고 반갑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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