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25 20:29
수정 : 2019.09.25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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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올드 패션드'의 칵테일 '올드 패션드'. 사진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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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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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올드 패션드'의 칵테일 '올드 패션드'. 사진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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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술 잘 마신다’는 말만큼 허망한 말이 없다. 어차피 취하려고 마시는 술, 한 잔 마시고 취하나 열 잔 마시고 취하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두세 잔에도 딱히 감흥이 오지 않는 주량이 때로는 부담될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술과 저 술을 넘나들며 주종마다 특징을 비교하고 그 맛을 음미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와인은 와인이라서, 소주는 소주라서, 맥주는 그 시원한 맛에, 독주는 알싸한 풍미 때문에 즐거우니까.
이어지는 술자리가 즐거웠던 어느 날이었다. 술꾼이라면 안다. 안주와 술을 곁들여 먹는 호사도 3차 정도면 끝난다는 것을. 하지만 진정한 술꾼은 3차라도 어떻게든 마실 방법을 강구한다. 그날은 떡 벌어지는 백반 한 상에 청요리와 백주, 맥주까지 실컷 마신 터였다. 친구가 3차로 “바에 가서 딱 한 잔만 더 하자”는 말을 했을 때 나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역시 내 친구다!” 그날 간 곳은 서울 마포구 연남동 동진시장 들머리에 있는 ‘올드 패션드’였다. 들어서자마자 바닥에서 밟히는 땅콩 껍데기와 여기저기 만취해서 엎드려 있는 취객들을 보는 순간 직감했다. 여기는 점잔 빼면서 마시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올드 패션드는 이상한 바다. 주인 이한별 바텐더도,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도 모두 제정신(?)은 아니다. “내가 술 마시고 싶어서 차린 바니 알아서 마시고 가라.” 주인의 태도는 묘하게 진정성 있어 보였다. 이씨는 술꾼 사이에서 ‘센 술’을 가장 잘 만드는 바텐더라고 소문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주 도수가 센 칵테일 ‘올드 패션드’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감당할 수 있겠나?”라는 대답을 듣고 묘한 경쟁심이 생겼다. 이미 취할 만큼 취한 상태에서 ‘어디 누가 이기는지 보자’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윽고 나온 칵테일 ‘올드 패션드’는, 기억을 더듬어 보면 굉장했다. 달콤하고 독한 버번위스키, 매캐한 시나몬 향, 오렌지 껍질의 향긋하고 새콤한 맛까지 잊을 수가 없다.
‘칵테일 맛이 다 거기에서 거기다’라고 생각하는 이에게 추천하는 바는 아니다. 다소 투박한 응대는 당황스럽다. 하지만 기존의 바 문화가 다소 부담스러웠던 이라면, 그리고 진짜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바를 거부할 수 없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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