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31 20:33
수정 : 2019.07.31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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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마을 양조장 홍대점의 봄 막걸리. 사진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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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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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마을 양조장 홍대점의 봄 막걸리. 사진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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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술과 막걸리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냥 취하려고 마셨던 술에 민감해졌다. 특유의 향에는 더욱 예민해졌다. ‘대충 마시면 되지, 막걸리가 막걸리고 소주는 다 거기서 거기지’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술의 종류마다 각기 다른 풍미와 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기쁨은 커져만 갔다. 전국 방방곡곡의 양조장을 찾아다니며 느낀 점은 ‘우리 술은 신선할수록 맛있고, 정성이 들어갈수록 풍미는 좋아진다’는 명료하고도 직관적인 사실이었다.
예전 일이다. 식당에서 무턱대고 주문했다가 제대로 보관하지 않아서 맛이 상해버린 막걸리를 수없이 접했던 때였다. “오랜만에 막걸리 마시러 가자.” 친구의 권유가 달갑지 않았다.
지하철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서 홍익대 쪽으로 걸어가다 대로변에서 꺾어 들어간 작은 골목에 ‘느린마을 양조장 홍대점’이 있다. ‘체인점인데 이곳이라고 별반 다른 것이 있을까.’ 하지만 ‘매일 신선한 술을 빚는 도심 속 양조장’이라는 문구는 반가웠다. 배상면 주가에서 운영하지만, 단순히 술을 받아 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매장에서 막걸리를 직접 내린다는 설명에 마음이 갔다. ‘여기서 만들어 신선한 느린마을 막걸리’라고 문구가 적힌 유리문 뒤에는 실제 양조장을 축소해 놓은 듯한 공간이 보였다.
‘생각보다 괜찮겠는데.’ 기대감에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살폈다. 4계절로 나눈 계절 막걸리가 눈에 띄었다. 숙성 기간에 따라 계절을 구분한 재치가 돋보였다. 1~3일간 숙성해 질감이 가볍고 깨끗하다는 ‘봄’ 막걸리를 주문하고 김치전과 새콤한 가오리 회무침도 골랐다. 봄 막걸리는 눈으로 보기에도 맑고 깨끗했다. 요구르트를 마시는 듯 가볍고 상큼한 산미가 기분을 들뜨게 했다. 일행 중 한 명이 말했다. “배부르기 전에 증류주도 마셔 보자.” 매실로 만든 증류주 ‘오매락’을 토기에 넣은 ‘오매락퍽’을 주문하니 술과 토기를 깨는 데 쓰는 나무망치가 같이 등장했다.
사실 느린마을 양조장 홍대점의 정수는 이곳을 운영하는 홍재경 대표다. 한국소믈리에협회 회장, 조니워커스쿨 원장 등을 역임한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평생의 직업으로 삼았던 ‘와인 추천’ 대신 늘 마음에 품고 있던 막걸리를 판매하고 있다. 홍 대표가 열어 주는 오매락퍽의 느낌은 색달랐다. 기분이 좋으니 맛은 더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은은하게 올라오는 매실 향과 이어지는 진하고 농축된 알코올의 풍미가 특별했다.
기대하지 못했던 곳에서의 놀라운 경험은 늘 특별하다. 한껏 흐드러지게 취하고 흔들거리며 나서다 주인이 쓴 글귀가 자꾸 생각난다. ‘우리에게 먼 미래는 없어요. 지금 사랑하고 행복해야지요.’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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