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29 19:52
수정 : 2019.05.29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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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놀부네 포장마차의 육회 낙지. 사진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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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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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놀부네 포장마차의 육회 낙지. 사진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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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사건은 수시로 들락거리고 항시 연락을 주고받는 단골 술집 사장과 술을 마시다가 벌어진 일이다. “요즘 왜 갈 만한 술집이 없느냐”고 울분을 토하며 술잔을 주고받던 참이었다. 어느새 거나하게 술기운이 오른 일행 중 한 명이 “허름한 곳이어도 좋으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낡은 술집이 진짜 맛집 아니냐”고 당연하다는 듯 되받아쳤더니 “당장 일어나 가자”고 성화였다.
비틀거리며 택시를 잡아타고 향한 곳은 서울 중구 신당동, 지하철 5호선과 6호선이 교차하는 청구역 인근이었다. 신당동에 떡볶이 타운 말고 뭐 딱히 먹을 만한 곳이 있나? 찜닭으로 유명한 약수역과 족발로 명성 높은 장충동이 근처에 있는데 굳이 신당동까지 갈 이유가 있나? 의문을 안고 일행을 따라나섰다.
어둡고 좁은 주택가 인근에서 덩그러니 불을 밝히고 있는 ‘왕놀부네 포장마차’를 발견했다. 간판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실내 포장마차 특유의 조잡한 외관과 연유를 알 수 없는 의문스러운 상호가 호기심을 당겼다. 벽에는 메뉴가 가득 적혀 있고, 테이블마다 단골인 듯한 취객들이 안주를 앞에 놓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정겨웠다. 시골 읍내의 술집이 이런 분위기일까?
익숙한 듯 일행은 주인에게 “오늘은 뭐가 좋냐”고 물었다. 주인은 육회가 대표 메뉴지만, 오늘은 산낙지 선도가 좋다고 꽤 믿음직스럽게 답했다. 우리는 ‘육회 낙지’로 정했다. 주문하자마자 나오는 가지찜과 멸치 볶음은 실내 포장마차 밑반찬이라고 부르기엔 정말 시골 밥반찬 같았다. 포슬포슬 쪄낸 가지는 그 자체로 훌륭한 술안주였다. 짭조름한 멸치 볶음 역시 입맛을 돋웠다. 매일 바뀌는 밑반찬 덕에 이곳을 방문한다는 일행의 너스레가 과장이 아니었다.
10여분을 기다린 끝에 등장한 ‘육회 낙지’의 모양새는 그야말로 굉장했다. 달걀노른자 밑에는 고추장으로 간을 한 육회와 살아 움직이는 낙지가 있었다. 그리고 두껍게 썬 배와 양파도 뒤섞여 있었다. 노른자를 섞어 비비자 알싸한 후추와 맵고 달콤한 육회의 맛이 섞여 풍미가 근사했다. 낙지를 입안에 넣고 힘차게 씹다가 당차게 섞은 시원한 ‘소맥’을 들이켰다. “이 집 진짜 술집이네!” 감탄하면서 낙지 한 점과 가지찜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좀처럼 줄지 않는 넉넉한 양과 저렴한 가격에 감동했다. 그렇게 많이 먹고 마셔도 5만원짜리 한장이면 된다.
아무리 매일 술을 마신다지만, 늘 새로운 술집을 찾아다니는 일은 현실적으로 고되다. 새로운 곳을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생기면 부담스럽다. 동료 술꾼이 보장하는 술집을 알게 되는 일이야말로 술 마시는 즐거움이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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