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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18 20:05 수정 : 2018.04.18 20:11

’마르셀 비스트로’의 어란을 듬뿍 갈아 올린 ‘올리브오일 & 보타르가’. 백문영 제공

[ESC]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마르셀 비스트로’의 어란을 듬뿍 갈아 올린 ‘올리브오일 & 보타르가’. 백문영 제공

매일 즐겁게 먹던 밥도, 국도, 반찬도 지겨울 때가 있다. 깔끔한 일식도, 지글지글한 기름이 먹음직스러운 중식도 좋지만 역시 기분 전환에는 서양식이 최고다. ‘각 잡고’ 고기 썰어야 하는 프렌치 스타일의 정찬은 부담스럽지만 ‘어린이’들이 넘쳐나는 패밀리 레스토랑도 어쩐지 좀 꺼리게 된다. 주머니 가벼운 프리랜서는 오늘도 ‘분위기는 좋지만 가격은 합리적인’ 레스토랑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 일대는 일식부터 프렌치, 이탈리아 음식점과 브런치 전문점까지 다양한 종류의 레스토랑이 모여 있는 외식의 격전지다. 각종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모여 있는데다 걷기 좋은 공원까지 가까워 ‘패션 피플’은 물론 미식가의 발길까지 사로잡는다.

도산공원을 등지고 쭉 걷다 보면 왼쪽에 작은 골목이 하나 나온다. ‘이런 곳에 설마 레스토랑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 만큼 좁은 골목길 끝에 ‘마르셀 비스트로’가 있다. 캐주얼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이라는 뜻의 ‘비스트로’를 상호 끝에 붙여 가벼운 분위기를 내세운 모양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셰프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오픈 키친이 보인다. 활기 넘치는 분위기, 테이블 간격을 넓혀 호방하게 공간을 사용한 주인의 용기까지 모든 것이 마음에 닿는다. 통유리창의 한쪽 면은 나무로 문창살을 만들어 담담하고 차분하게 장식했다. 대리석으로 만든 넓은 테이블로 안내를 받자마자 20종이 넘는 ‘잔술’ 리스트와 메뉴판이 눈앞에 펼쳐진다. ‘스페인산 돼지 볼살과 레자노 치즈로 맛을 낸 생면 타얄린’, ‘트러플 버섯크림 생면 파파르델레’, ‘올리브오일 & 보타르가 스파게티니’ 등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흔치 않은 메뉴 덕에 입맛이 저절로 돈다.

반주가 꼭 필요한 음식이라는 믿음 아래 시원하게 칠링한 화이트와인 한 잔을 받아들고 신이 나서 이 메뉴 저 메뉴 고른다. 숙성한 스페인산 돼지 볼살을 넣은 생면 타얄린은 꼬들꼬들한 고기와 툭툭 끊기는 생면이 매력적이다. 어란을 듬뿍 갈아 올린 ‘올리브오일 & 보타르가’란 스파게티는 짭조름하고 고소한 감칠맛 덕에 계속해서 포크질을 하게 된다. 기름으로 살짝 느끼해진 입을 달래고 싶어 피클을 요청했더니 깍두기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오이피클이 등장한다. 커다란 오이를 손가락 반 마디 두께로 숭덩숭덩 썬 호쾌한 모양새가 즐겁다. 시고 단 공장형 피클과는 달리 은은한 고추 향과 맛이 나 휘파람 불듯 상쾌하다.

실컷 먹고 마시고 계산서를 받아드는 손길이 유난히 가볍다. 파스타 한 접시에 3만원을 호가하는 ‘강남 물가’에 익숙해진 덕이다. 대략 30%가 싼 편이다. “양 많고 비싸지 않은 요즘 핫한 레스토랑이니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친구의 호언장담이 이토록 든든했던 적, 또 있던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매일 같은 종류의 음식을 먹어야 할 이유도 없고 이렇게 좋은 레스토랑도 있다.

백문영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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