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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04 19:58 수정 : 2018.04.04 20:08

상가 맛집 ‘향숙이’. 백문영 제공

[ESC]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상가 맛집 ‘향숙이’. 백문영 제공
꽃샘추위와 미세먼지, 황사가 사라진 자리에 들뜨는 봄이 들어섰다. 지금 한강시민공원은 긴 겨울을 버텨내고 봄기운을 맞이하려는 이들로 북적인다. 서울 잠원동에 있는 반포한강공원에서 대낮부터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산들산들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나무, 파란 하늘, 적당히 선선한 날씨 덕에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 턱이 없다.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고 적당히 올라온 취기에 알딸딸해지면 자리에서 털고 일어날 때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공원에서 나와 걸으면 잠원동 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시공한 지 20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아파트 단지인 만큼 단지 앞 상가에는 주민들이 자주 찾는 소박하고 푸근한 맛집으로 가득하다.

혈중 알코올 농도도 높일 겸 간단하게 요기도 할 겸 찾은 곳은 반원상가 안에 있는 ‘향숙이’다. 푸근한 상호, 단정한 한문으로 구성한 간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기자기한 소품, 은은한 간접 조명, 소탈한 나무 소재의 바 테이블까지 술맛을 돋운다. 일본 뒷골목의 선술집을 방문한 듯한 기분은 덤이다.

‘다른 이들은 어떤 것을 먹나’ 싶어 주변 테이블을 기웃거리던 찰나, “그날 가장 좋은 어종으로 구성한 사시미와 초밥이 인기 메뉴”라는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치와 연어, 참돔, 광어, 새우, 고등어 등 선도 좋은 생선으로 구성한 ‘모둠 사시미’와 은행구이, ‘토마토해산물나베’를 고르고 생맥주도 주문했다. 두런두런 주위를 살피고 있으면 직화로 노릇노릇하게 구운 은행구이와 모둠 사시미가 등장한다. 개나리 빛을 띤 매끈한 은행을 입안으로 털어 넣고 맥주 한 잔, 고추냉이 얹은 단새우 한입이면, 입안이 꽃놀이고 마음은 옥황상제다. 뜨끈한 국물이 생각날 무렵 타이밍 좋게 등장한 토마토해산물나베로 차가워진 속을 달랜다. 지금 막 제철을 맞은 상큼한 토마토 가득, 홍합과 오징어 등 각종 해산물을 넣고 뭉근하게 끓여 낸, 매콤하고 칼칼한 ‘향숙이’만의 시그너처 메뉴다. 달큰하고 고소한 양배추를 건져 먹고 접시에 덜어 놓은 국물을 마시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크어’ 소리가 무조건 튀어나온다.

더울 때는 더워서, 추울 때는 추워서 술이 당긴다지만 산들산들 바람 부는 봄이야말로 술 마시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봄꽃 한 다발 옆에 놓고 꽃잎을 세어가며 마시는 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산뜻하고 향긋하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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