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28 20:18
수정 : 2018.03.28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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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 앤 몰트’의 ‘맥 & 칠리’.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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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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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 앤 몰트’의 ‘맥 & 칠리’.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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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동안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에 고마움을 느낀 때도 있었다. 화보 촬영과 원고 마감 등으로 의자에 엉덩이 붙일 시간조차 없던 잡지 기자 시절에는 유난했다. 세 입이면 뚝딱 해치울 수 있는 패스트푸드 체인의 치즈버거, 서서 먹어도 ‘추접스러워’ 보이지 않는 샌드위치 정도가 시간이 허락한 음식 전부였다. ‘살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만큼 어리석으면서도 굴욕적인 행위는 없다. 먹는 즐거움은 요원했고, 분노와 알 수 없는 절망감은 눈썹 끝까지 차올랐다. 퇴사한 지 3개월, 마음과 정신에 안정이 찾아들었고 맹렬하게 씹어대던 패스트푸드도 끊었다. 대신 정성 들여 만든, 진짜 미국의 맛이 그리워졌다. 이태원에 널리고 깔린 번다하고 정신없는 가정식 레스토랑, 고급스럽고 새치름한 정통 미국식 스테이크하우스는 부담스러웠다.
“생각했던 그 미국의 맛을 볼 수 있다”는 제보를 받고 찾아간 지하철 혜화역 근방의 ‘믹스 앤 몰트’. 거리마다 청춘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는 시끌벅적한 대학로 중심지에서 한 블록 뒤로 물러선 조용한 골목에 있다. 담담히 서 있는 벽돌 건물은 외국에 사는 친구의 집에 방문한 것처럼 따뜻하다. 환하게 불을 밝힌 전구 조명, 입구에 앉혀둔 커다란 곰 인형, 아담하고 소박한 테라스 공간까지 작정한 듯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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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 앤 몰트’의 ‘오리지널 버펄로 윙’.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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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오리지널 버펄로 윙’과 ‘맥 & 칠리’를 신나게 골랐다. “이곳의 음식에는 무조건 칵테일을 곁들여야 한다”는 일행의 참견에 몸을 따뜻하게 녹일 ‘프렌치 커넥션’도 주문했다. 비닐장갑을 끼고 매혹적인 붉은빛의 버펄로 윙을 집어 드니 짜고 시고 매운, 그 오묘하고 복합적인 향에 눈까지 찌릿해진다. 곁들여 나온 랜치소스(샐러드 소스 중 하나로 버터밀크, 소금, 갈릭 파우더 등을 넣어 만든 것)에 셀러리를 찍어 아삭아삭 씹어 먹고 ‘맥 & 칠리’도 한 숟가락 푹 떠 올렸다. 커민을 비롯한 각종 향신료로 조리한 칠리소스를 곁들인 요리다. 이국적이면서도 고소한 감칠맛이 폭발하고, 쭉쭉 늘어나는 치즈에 정신이 아득하다. 위스키 향이 한껏 올라오는 ‘프렌치 커넥션’ 칵테일을 머금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편안한 맛,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넉넉한 인심, 부담 없는 분위기까지 레스토랑 전체가 온 마음을 다해 안아주는 듯 포근하다.
불안함과 조급함을 덜어내고 나니 먹는 즐거움이 다시 찾아들었다. 이럴 때 화려하고 값비싼 파인다이닝(고급 정찬), 비싼 와인 말고 편안하고 익숙한 가정식이 떠오르는 현상은 어쩌면 당연하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 지나간 자리에 마음을 담아 만든 ‘소울 푸드’가 다가왔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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