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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22 10:14 수정 : 2018.03.22 10:58

‘김종용 누룽지 통닭’. 백문영 제공

‘김종용 누룽지 통닭’. 백문영 제공
기온이 슬슬 오르고 낮에는 햇볕이 제법 따갑다. 봄이면 입맛이 떨어진다는 건 먼 나라 얘기다. 몸이 따뜻해지니 위장 순환은 왕성해지고 먹고 싶은 음식도 많아진다. 간편해진 옷차림만큼이나 집 밖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사뭇 가볍다. 춥다는 이유로 걷지 않아 몸도 마음도 부대끼는 겨울에는 아무래도 차가운 술과 기름진 음식이 부담스럽다. 그 좋다는 ‘치맥’(치킨+맥주)을 겨우내 멀리한 이유다. 봄기운 물씬 나는 도다리쑥국도, 나물도 좋다. 하지만 나에게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맥주 한 잔과 뜨겁고 기름진 닭고기의 조합이야말로 겨울의 종언이자 여름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튀긴 닭도 좋지만 허한 속을 보양하고 술안주 삼기에는 탄수화물만 한 것이 없다. 직화로 구워 담백하고 부드러운 닭과 쫀득한 찹쌀밥을 동시에 섭취할 수 있는 한남동 ‘김종용 누룽지 통닭’에서 약속을 잡은 날은 온종일 봄처녀처럼 마음이 팔랑댄다. 한남 오거리에서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으로 향하는 골목, 당당히 건물의 2층 전체를 사용하고 있는 김종용 누룽지 통닭은 직관적인 이름만큼이나 외관도 독특하다. 들머리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나무 장작과 불이 활활 타오르는 화덕에서 쉴 새 없이 구워 나오는 닭을 목격하면 이 집으로 안 들어갈 방도가 없다.

맥주를 주문하고 가만히 기다리면 ‘기본 찬’이 깔린다. 양배추 샐러드, 치킨 무, 머스터드소스와 굵은소금까지. 평범하고 평범한 치킨집 반찬 뒤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탕과 풋내 없이 잘 익은 열무김치가 등장한다. ‘닭 먹는데 왜 열무김치가 필요하지’라는 생각은 접어두고 한입 집어 먹으면 서걱서걱한 식감과 새치름한 맛에 눈이 찡긋거리게 된다.

‘누룽지 통닭’은 중닭을 반으로 가른 뒤 달군 철판 위에 얹은 모양새다. 그 옛날 전기구이 통닭인 듯 바삭한 껍질, 수비드(저온 조리법)로 조리한 듯 보들보들한 속살이 유혹적이다.

열무김치와 어묵탕을 안주 삼아 맥주를 홀랑 다 마셔버리고는 본격적으로 발골 과정에 임했다. 불타오르는 화덕에서 직화 방식으로 구운 이 집 통닭의 백미는 껍질이다. 닭 껍데기를 못 먹는 이라도 이곳에서는 무조건 껍데기를 집어 먹게 된다. 기름기 쪽 빠진 ‘베이징덕’(중국의 오리구이 요리)을 먹듯 껍데기를 살살 벗긴 뒤 굵은 소금에 살짝 찍으면 단전까지 고소함이 치민다. 젓가락을 갖다 대기만 해도 살살 부서지는 부드러운 살점을 매콤달콤한 머스터드소스에 찍어 먹고 맥주를 들이켰다. 철판 바닥에는 쫀득한 찹쌀밥이 깔려 있다. 철판에 닿지 않은 닭의 위쪽은 쫀득한 식감이 매력적이고, 뜨거운 열을 받은 밑은 누룽지를 씹는 듯 바삭하다. 닭에서 흘러나온 육즙과 기름을 한껏 머금은 밥은 중국식 ‘하이난 치킨라이스’처럼 그 자체로 간간한 감칠맛이 그득하다. 밥 한 숟가락에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열무김치를 한 줄기 얹어 먹었다. 치킨에 치킨 무가 따라가듯 뜨겁게 눌어붙은 찹쌀밥에는 열무김치가 찰떡같이 붙는다.

꽃이 피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시원한 생맥주 한 잔에 고소한 닭을 뜯으면서 맞는 봄은 언제나 즐겁다. 벚꽃에는 ‘엔딩’이 있지만 통닭과 맥주, 봄날의 술자리는 끝이 없다. 2018년은 지금부터다. 목구멍 열고 맥주를 들이켜며 올해도 열심히 먹고 마시기로 다짐한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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