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2.22 10:07
수정 : 2018.02.2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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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킹 인사이드 더 박스’의 칵테일.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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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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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킹 인사이드 더 박스’의 칵테일.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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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는 사회생활, 계속되는 단조로운 생활 패턴에 지칠 때면 어김없이 서울 신촌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 시절의 전부를 바친 만큼 유난히 감정이 애틋한 동네다. ‘젊음의 거리’. 식상한 수식어지만 신촌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단어가 있을까? 서울 시내의 모든 대학생이 모이는 만큼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지 않아도 좋을 식당과 바가 많이 포진해 있다. 졸업 이후로 서먹했던 신촌 거리를 걸으며 ‘어느새 사회인이 됐구나’ 새삼스러운 감회에 빠져든다. “이곳이 아직도 있구나, 이곳도 참 자주 갔었는데” 하며 함께 간 친구와 대학 시절 추억을 조잘대며 걷다 “어린 시절(대학교 1~2학년) 자주 가던 곳으로 데려가 달라”는 부탁을 받고 주변을 살핀다. 고기구이 집은 식상하고, 간단하게 한잔할 수 있는 곳을 고민하다 생각난 곳이 ‘씽킹 인사이드 더 박스’다.
연세대학교 건너편에 있는 창천교회를 왼쪽에 두고 좁은 골목을 걸어 들어가면 이화여대 방면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이 길 중간에 있는 ‘씽킹 인사이드 더 박스’는 맥주, 칵테일, 간단한 와인과 스피릿, 커피까지 판매하는 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가게가 생겼다 사라지는 신촌에서 10년 동안 버텨온 저력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깃집과 카페의 중간, 찾기에 다소 애매한 위치에 있지만, 이마저도 이곳만의 매력이다.
지하로 향하는 조그만 덧문을 열고 내려가면 생각보다 넓은 크기와 높은 층고에 웃음이 터진다. 널찍한 1층과 아늑한 2층이 공존하는 복층 구조 덕에 시야가 탁 트인다.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부터 ‘블루 하와이’, ‘미도리 사워’, ‘테킬라 선라이즈’까지 이름만으로도 추억이 샘솟고 입안에 침이 고이는 달콤한 칵테일이 주종목이다. 가격도 합리적이다. 대부분의 칵테일은 9천원을 넘지 않고, 푸짐한 안주 역시 1만원대다. 50종이 넘는 클래식 칵테일의 이름을 되뇌며 깔깔대다 ‘롱아일랜드 아이스티’와 ‘모히토’를 주문한다. “이왕 신촌에 왔으니 오늘만큼은 대학생에 ‘빙의’하는 마음으로 마시자”고 결의하고 안주도 주문한다. ‘반건조 오징어와 믹스넛’, ‘칠리소스를 얹은 감자튀김’을 주문하고 앉아 있으면 이곳의 기본 안주인 구운 김과 조미 간장이 등장한다. “여기가 을지로인지, 신촌의 칵테일 바인지 헷갈린다”는 일행의 우스갯소리도 잠시, 구수한 파래김에 새콤하고 짭조름한 간장을 계속 찍어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콜라와 레몬 향이 물씬 나는 달콤한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를 마시고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하며 웃다 쫄깃한 반건조 오징어에 구운 김을 싸 먹는다. 새콤하고 시원한 모히토로 입가심을 하면 옆 테이블의 20대 커플도, 앳된 표정의 아르바이트생도 모두가 친구 같다.
‘한남동’과 ‘청담동’으로 대표되는 정통 믹솔로지 바가 있는 반면, 세상에는 이런 촌스럽지만 정겨운 바도 있다. 바텐더가 만들어 주는 격식 있는 칵테일도, 대학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 해 주는 이런 칵테일도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의미 없는 사회생활은 없고,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투덜거렸던 스스로 반성하며 달콤한 칵테일을 목 뒤로 넘긴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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