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2.08 10:07
수정 : 2018.02.08 10:38
|
‘코리아 식당’의 ‘모둠 초딩 안주’. 백문영 제공
|
[ESC]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
‘코리아 식당’의 ‘모둠 초딩 안주’. 백문영 제공
|
한창 ‘집밥’ 열풍이 거셀 때는 왜 ‘집에서 어머니가 만들어준 듯한 밥’에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지 알 수 없었다. 냉장고에는 각종 반찬이, 가스레인지 위에는 언제나 새로운 국이 당연하다는 듯 올라가 있었다.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음식들이었다.
15년 가까이 두 동생의 수험생활 뒷바라지와 아버지의 출퇴근 식사를 책임져야만 했던 어머니는 2018년을 맞아 ‘파업’을 선언했다. 따뜻한 엄마 밥을 자연스럽게 여기던 다 큰 딸은 패닉에 빠졌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외식을 자주 하게 됐는데, 공장에서 받아다 쓰는 조미료 범벅의 반찬과 중국산 김치, 밍밍하다 못해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무늬만 집밥’ 식당에 나는 지쳐갔다. 그러다 ‘그곳’을 알게 됐다.
연남동에 신접살림을 차린 친구와 ‘오랜만에 얼굴 한번 보자’는 안부 인사를 핑계 삼아 만났다. 서울 연희동과 연남동 동진시장 근방에는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집, 타이 레스토랑, 바, 카페까지 대거 포진하고 있다. 만두로 명성 높은 ‘편의방’ 앞에서 길을 건너자마자 왼쪽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면 ‘코리아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숨겨놓은 맛집’이라고 의기양양 길을 나서는 친구를 따라 크지 않은 매장으로 들어갔다. 일단은 ‘건강한 밥상 맛집’을 표방한다는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시금치나물, 잘 버무린 겉절이, 버섯볶음 등 매일 만드는 5가지의 반찬이 앉자마자 깔렸다. “반찬만으로도 막걸리 한 병이네.” 아저씨 같은 농을 던지며 이곳의 대표 메뉴인 ‘곱창전골’과 ‘감자채전’, ‘엘에이(LA) 갈비구이 정식’을 주문했다. “도대체 메뉴가 왜 이렇게 많아? 제대로 하는 집 맞아?” 나의 물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 상 가득 깔리는 화려한 음식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고기구이부터 무려 6종의 비빔밥, 10종이 넘는 찌개 메뉴까지. 그 누가 와도 원하는 음식이 없다고 투정 부릴 수 없다. 차림표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막걸리와 소주와 맥주까지, 속절없이 ‘먹고 마시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새콤하고 쨍한 금정산성 막걸리를 애피타이저 삼아 곱창전골을 한 숟가락 떠먹고 감자채전을 야성적으로 찢었다. 흰 쌀밥에 갈비를 얹어 꿀떡 삼키고 막걸리를 들이켰다. “배부르니 소주로 갈아타자”는 전형적인 알코올 마니아의 언행이 이어지고, 소주병이 쌓여갈 즈음이면 그 많던 음식도 모두 사라졌다. 배도 슬슬 부른데 ‘디저트’를 먹자는 일행의 주장에 메뉴판을 살피다 ‘모둠 초딩 안주’에 마음이 꽂혔다. 막 튀겨낸 돈가스와 잘 구운 스팸, 달걀 프라이와 두부김치까지.
허리케인처럼 집밥 열풍이 한 차례 외식업계를 쓸고 난 뒤에야 알았다. 집밥이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구나.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을 빌려야만 얻을 수 있는 편안함이었다는 것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초딩’ 같은 반성을 하며 쓴 소주와 달콤한 돈가스를 한입에 삼켰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