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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01 10:38 수정 : 2018.02.01 10:47

[ESC]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살을 에는 듯한 추위’는 요즘 같을 때 쓰는 말이다. 슬슬 날이 풀리는가 싶다가 뒤통수를 치는 듯한 추위에 정수리까지 얼얼하다. 최근 가장 유행하는 곳을 탐방하기 위해서는 발품이 필수일진대, 추위에 문밖을 나설 엄두조차 생기지 않는다. 난감한 상황이다. 이럴 때 무심코 누른 에스엔에스(SNS)인 ‘인스타그램’이 빛을 발한다. 거창한 검색어를 넣지 않아도, 주변 지인들이 ‘좋아요’를 누른 사진만으로 확인할 수 있다. ‘라이브’ 기능도 제공한다. ‘포지티브 제로 라운지’라고 쓰여 있는 계정의 라이브를 눌렀다. ‘평범한 재즈 바가 아닌가’ 싶던 마음이 싹 가실 정도로 훌륭한 사운드 시스템에 귀가 한번 놀라고, 연주자가 관객들 앞에서 직접 공연을 한다는 사실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런 공연은 직접 들어야 한다”고 직감하고 지하철 성수역으로 달려갔다.

성수역 4번 출구에서 나오면 소규모 공장들이 가득하다. ‘아직 여기까지는 상권이 발달하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한다. 뺨을 후려치는 듯한 추위에 쫓기며 10여분가량 걷다 보면 스마트폰의 지도 애플리케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안내한다. 마땅한 간판도 없고, 재즈 바라고는 도저히 있을 곳이 아닌 낯선 골목에서 덜컥 겁이 나려는 찰나, ‘포지티브 제로 라운지’라 적힌 아주 작은 간판이 눈앞에 나타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대 반, 걱정 반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새로운 세계를 만난 듯한 놀라움은 이런 것일까? 낡고 후미진 건물 지하에 상상하지 못했던 세련된 공간이 펼쳐졌다. 한쪽 벽을 덮고 있는 어두운 장막, 피아노를 비롯한 각종 악기,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재즈 공연. 뉴욕의 재즈 바를 방문한 듯 몽롱한 기분에 휩쓸려 선 채로 칵테일을 주문했다. 놀란 토끼 눈으로 주변을 살피다 미처 저녁도 먹지 못했다는 생각이 문득 밀려온다. 양고기와 커민을 넣어 만든 ‘양 김밥’을 먹을까, 간단하게 와인 안주 삼을 만한 ‘치즈와 샤르퀴트리(샤큐테리) 보드’를 고를까 고민하는 사이 눈앞에서 재즈 공연이 끝났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재즈 연주자를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관객과 연주자의 거리가 이토록 짧은 공간이 또 있던가?

젊은이들이 찾는 핫한 공간이나 새로운 공간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트렌드에서 뒤처지는 듯한 헛헛한 기분을 가릴 수가 없다. 숨 가쁘게 유행만을 쫓아다니는 행위는 허망하다.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이어서, 애쓰지 않아도 좋은 공간은 결국 누구나 알아보게 돼 있다. 재즈 한 가락, 몸을 데워주는 술 한 잔으로 이 한파를 견뎌 본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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