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22 20:23
수정 : 2017.11.22 20:30
[ESC]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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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케이크 오리지널 스토리’의 팬케이크.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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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감이 끝났다. 잡지의 마감이라는 것은 한 달가량 취재한 기삿거리를 일주일 동안 ‘토해내는’ 수준에 가깝다. 밤새우는 것은 일상이고, 눈이 시릴 때까지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바깥으로 벚꽃이 피는지, 눈이 내리는지 알 길이 없다. 마감이 끝나는 매달 17일은 축제가 벌어지는 날이다. 부모님의 ‘오늘은 적당히 마시고 들어오라’는 말이 귀에 꽂히는 날이다. 마지막 기사를 송고하고 해가 지기 전부터 친구들을 만나 마시다 보면 어느새 밤이다. 취한 채 들어가면서도 내일은 주말 근무로 얻어 낸 대체휴무일이라는 사실에 신이 난다.
전기장판 속에서 뒹굴뒹굴 몸을 뒤집다 해장을 위해 집을 나선다. 마감 기간 내내 국밥도, 중국 음식도, 배달 음식도 실컷 먹었다.
조금 편안하게, ‘세련된 아가씨’처럼 아침을 시작하자는 마음에 한남동으로 갔다. 한남 오거리에 넉넉하고 편안한 브런치 가게가 있다. 오거리 언덕을 살짝 걸어 올라가면 보이는 ‘팬케이크 오리지널 스토리’는 비싸고 양 적은 브런치가 세상에서 제일 싫은 나에게 기적 같은 아침 가게다.
날 좋을 때는 3~4석 규모로 마련된 아담한 테라스에서 볕을 받으며 브런치를 즐긴다. 요즘같이 추운 날에는 따뜻한 실내에서 담요를 덮고 여유를 부린다. 조금 부지런하면 만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이 집의 아침’을 먹는다. 팬케이크, 허브 향이 물씬 나는 패티, 소시지와 스크램블드에그, 샐러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곳을 방문하면 늘 주문하는 메뉴는 따로 있다. 이름도 귀여운 ‘뚱땡이 모짜렐라 치즈 듬뿍 오믈렛’. 오믈렛에 버섯, 양파, 피망, 올리브, 체더치즈를 넣고 모차렐라 치즈도 듬뿍 들어가 있다. 무려 달걀 6개가 들어가는 이 오믈렛은 머랭을 만들듯 오랜 시간 달걀을 완전히 풀어 만든다. 수플레를 먹는 듯 폭신하고 부드러운 식감은 여기서 나온다. 화이트 소시지와 베이컨, 이곳만의 특제 버터밀크 팬케이크와 샐러드까지 곁들여 나오니 이것만으로도 풍성한 한 끼다.
지난밤의 취기를 달래줄 뜨거운 커피 한 잔, 얼음을 가득 넣은 자몽주스도 한 잔 주문했다. 함께 간 일행의 선택은 ‘안녕, 빠리’. ‘낙타의 하루’, ‘톰 아저씨’, ‘뚱땡이 오믈렛’ 등이었다. 익살스러운 메뉴 이름 탓인지, 간밤의 취기 탓인지 계속해서 웃음이 났다. ‘안녕, 빠리’에는 달걀을 입혀 노릇하게 구운 프렌치토스트와 핑크 소시지, 베이컨과 계란 등이 함께 나온다. 뚱뚱하게 부푼 오믈렛을 한입 먹고 뜨거운 커피 한 모금. 프렌치토스트에 버터를 발라 메이플 시럽을 잔뜩 뿌리고 또 한입. 뜨겁고 달고 쓴 맛이 몰아칠 때 새콤하고 시원한 자몽주스로 입안을 달래고 또다시 전투태세로 먹다 보면 어느새 취기는 저만치 물러나 있다. 평일 오전에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자 사치다.
전쟁터 같은 생업의 현장도, 혼이 나갈 듯한 마감 주도 이런 날이 있으면 견딜 수 있다. 이런 여유 때문에 버틴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여유도, 풍요로움도 적당한 결핍에서 온다. 매일 마시는 술, 매일 똑같은 해장국으로 해장하라는 법은 없다. 가끔은 여유롭게 ‘즐기는’ 해장도 필요하다.
백문영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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