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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11 22:13 수정 : 2017.10.17 18:08

[ESC]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일상다반사의 다식. 백문영 제공
“이틀만 버티면”, “하루만 더 버티면 드디어 연휴다”라고 읊조리며 아침마다 출근한 것이 엊그제 같다. 송편 빚고 전 부쳐 몰려드는 손님을 맞는 추석이 지나면 남은 것은 남산만큼 부푼 배와 피로뿐이다. 남은 명절 음식은 정말 쳐다보기도 싫다면? 답답한 집을 나와 시원한 바람도 쐬고 싶다면? 좋은 방법이 있다. 서촌(경복궁 서쪽의 통인동, 옥인동 등)행 버스를 잡아타는 것이다.

야트막한 옛 건물과 세련된 카페, 레스토랑이 뒤섞인 서촌은 독특하다. 아기자기한 카페에서 수다 떨기도, 야외 테라스에서 조용한 독서를 하기에도 좋은 동네다. 추석에 기름진 음식을 계속 집어 먹었다면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통인동부터 효자동까지 걷고 또 걸으면 좋다.

‘몸의 독소를 빼내는 데는 역시 차 한잔이 최고지’라는 생각이 들면 경복궁 옆길의 ‘일상다반사’로 발길을 향해보자. 통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정원은 단풍나무가 가득하다. 칵테일 바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일상다반사 곳곳엔 딱 맞게 짜인 ㄷ자 모양의 나무 테이블이 있다. 듬직하다. 칵테일 바에 바텐더가 있다면 이곳에는 ‘티 마스터’가 있다. 원하는 맛과 향을 얘기하면 눈앞에서 직접 찻잎을 골라 배합해 차를 내려준다.

오랜 시간 걸어 뜨거워진 몸을 식힐 요량이라면 차보다는 ‘오렌지 생강 맥주’를 고르는 게 좋다. 탄산수에 생강청을 넣고 오렌지 맛의 거품을 얹은 ‘무알코올 맥주’라서 ‘그렇게 술을 마시고 또 맥주를 마시느냐’는 친구의 비난을 받을 일이 없다.

독특한 맛의 수제 다식도 있다. 혀끝에서 꾸덕꾸덕하게 부서지는, 달콤하고 쌉쌀한 맛이 황홀하다. 쑥인절미를 와플 모양으로 구운 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은 ‘쑥떡 와플’도 눈길을 끈다. 입안에서 뜨겁고 차가운 것이 뒤섞이는 맛이다. 쑥 향과 바닐라의 감칠맛이 폭발한다. 디저트까지 먹었는데 위장이 더 많은 것을 바란다면? ‘한입 쌈밥’이 기다리고 있다. 주문하면 단정한 찬합이 등장하는데 안에는 쇠고기와 멸치, 잣가루 등으로 조미한 밥을 케일과 깻잎, 양배추로 돌돌 만 밥이 있다. 방만(?)했던 추석날의 식단을 속죄하고 싶다면 한입에 소담한 쌈밥을 먹고 일상다반사의 담백한 차를 마시면 된다.

2017년이 몇 달 안 남았지만 조급해하지도 서두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차 마시듯 차분하게 정리해야지.

백문영(<럭셔리> 라이프스타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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