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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21 11:32 수정 : 2017.09.21 11:39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백문영 제공

[ESC]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백문영 제공
잡지사 기자는 늘 뛰어다닌다. 온갖 비싸고 귀한 물건을 협찬받아 사진 스튜디오로 옮기는 일을 한달에도 수십번씩 한다. 화려한 이미지는 잡지의 생명이다. 서울 청담동과 압구정동, 신사동과 도산공원을 운동화 신고 뛰어다니다 보면 ‘쉬고 싶다’는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하지만 이런 바쁜 일정에도 늘 목 빼고 쳐다보는 곳이 몇 군데 있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강남구 신사동)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는 에르메스 플래그십 스토어가 그중 하나다. 계절마다 바뀌는 화려한 디스플레이부터 반짝반짝한 구두, 물 흐르는 듯 우아한 스카프까지. 신데렐라의 마음이 이럴까? ‘마감 끝나고 대체휴가를 받으면 꼭 제대로 둘러보러 와야지’ 다짐하고 뒤돌아서서 뛰어가기를 몇번, 드디어 때가 왔다.

일주일간 다사다난한 마감을 마친 뒤 포상처럼 받은 평일 휴가. 한달에 단 하루, 한껏 호기로워지고 싶을 때 발바닥이 얼얼하도록 뛰어다녔던 신사동 그 전쟁터로 되돌아가는 건 어떤 심리일까? 하지만 에르메스가 아닌가! 하루에도 몇번씩 땀 흘리며 지나 다니던 에르메스 플래그십 스토어로 당당하게 들어간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가방, 달콤한 향수, 보기만 해도 포근한 코트까지 돌아보니 금세 허기가 진다. 결국 단 하루 평일 휴가의 끝은 역시 맛집이다.

에르메스 건물 지하에 있는 ‘카페 마당’으로 내려간다. 눈 호사 누린 김에 몸도 호강하자 싶어 ‘루이 로드레’ 샴페인을 한병 주문하니 ‘생루이’ 크리스털 잔이 등장한다. 에르메스는 1989년 크리스털 와인 잔이나 샹들리에 등을 만드는 생루이를 인수했다. ‘혹시 마시다가 깨뜨리는 것 아닐까’ 조마조마한 마음도 잠시. 취기인지 치기인지 모를 기분으로 메뉴판을 정독한 뒤 타이의 볶음 쌀국수 ‘팟타이’와 매운 입 달래줄 ‘비프 커리 라이스’를 주문한다.

에르메스가 제작하는 고급 접시 ‘랠리24’에 넘치도록 쌓인 팟타이는 훌륭하다. ‘값만 비싸고 음식 맛은 그저 그렇지 않을까’ 싶었던 예상을 제대로 빗나간다. 비프 커리 라이스도 그렇다. 파인 다이닝(고급 정찬) 레스토랑에서 경험한 듯한 고급스러움이다. 카페 마당의 음식은 신라호텔 출신 요리사가 만든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신성한 노동의 대가일지도 모른다. 땀 흘린 만큼, 눈물 쏟은 만큼 포상은 달콤하고, 휴식은 행복하다.

백문영(<럭셔리> 라이프스타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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