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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23 20:07 수정 : 2017.08.24 15:54

[ESC] 백문영의 먹고 마시기 사랑하기

모로코코의 ‘양고기타진’. 백문영 제공
바람이 거짓말처럼 선선해졌다. 팔다리에 지긋지긋하게 달라붙던 습기도 싹 사라졌다. 오랜만에 쉬는 평일 낮. 요즘처럼 걷고 싶은 계절에는 ‘힙스터의 성지’ 해방촌 언덕을 오른다. 가을엔 집 밖 어디든 좋으니까. 들머리에 위치한 식당 ‘모로코코’로 우선 들어갔다. 발음조차 귀여운 이 가게는 국내에서 쉽게 맛보기 힘든 모로코 음식이 전문이다. 우선 양고기를 다져 미트볼 형태로 만든 뒤 토마토, 레몬 등으로 만든 소스에 졸인 ‘양고기 타진’을 주문했다. 미트볼을 반으로 가른 뒤 흥건한 반숙 달걀노른자에 찍어 먹으면 ‘여기 맥주 한 병 주세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모로코코의 백미는 감춰져 있다. 그릴에서 구워 껍질이 바삭한 닭다리를 얹은 ‘치킨 오버 라이스’는 매콤한 밥과 사워크림, 촉촉한 닭다리 살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훌륭한 메뉴다. 메뉴판에는 없기에 단골들만 아는 음식이다. 눈치껏 주문하는 이에게만 판다. 그러니 ‘아는 척’에도 일품.

해방촌 여행의 가벼운 워밍업이 끝났으니 소화도 시킬 겸 언덕을 조금 더 올랐다. 어차피 술을 마셨으니 본격적으로 달려 볼 생각이었다. 언덕 중턱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알마또’에 도착했다.

알마또는 프로슈토를 잔뜩 얹은 ‘이탈리아나 피자’와 ‘고르곤졸라 뇨키’가 일품이다. 이탈리아 음식에는 역시 와인이다. 질 높은 하우스 와인을 아예 병째 고르는 호기를 부렸다. 해도 지고 기분이 좋으니 물이 와인 같고, 와인이 물 같았다. 두 병을 다 마시니 콧노래만 나왔다. 두 병씩이나 마시냐고 타박하지 마시라. 해 지는 해방촌의 낭만을 제대로 즐기려면, 우아한 와인 두 병도 부족하다.

적당히 오른 취기를 유지하기 위해 ‘딱 한 잔만 더’ 할 곳을 찾아 조금 더 언덕을 올랐다. 이어폰에서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이 딱 끝날 즈음, 간판 대신 로마자로 적은 숫자 I부터 XⅡ가 눈에 들어왔다. 딱 12석만 마련돼 있는 바 ‘트웰브’다. 이 바는 남아 있는 자리의 수만큼 간판의 로마자의 조명을 밝혀 놓는다. 불이 다 꺼졌다면 입장조차 할 수 없는 셈이다. 착석과 동시에 달콤한 버번위스키 한 잔을 주문하고, 버번이 속절없이 줄어들 때쯤엔 역사와 전통의 해장 칵테일인 ‘블러디 메리’를 주문한다. 아무리 취했어도 집에는 맨정신으로 들어가야 하니까.

이 모든 것을 한껏 즐기고 담담히 내려가는 해방촌 언덕에서 말해본다. 오늘 하루도 먹고 마시느라 고생 많았다고, 내일은 조금 더 사랑하자고.

백문영(<럭셔리> 라이프스타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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