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04 17:03
수정 : 2019.09.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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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자치정부 청사 앞의 타마르 공원에서 3일 홍콩 시민들이 중국 정부에 항의하는 총파업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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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 람 장관, 송환조례 철회 공식 발표 예정
홍콩 시민, 반중시위로 첫 성과 따내
송환조례 철회가 시위 잠재울지는 불투명
주민직선제 등 요구로 넘어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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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자치정부 청사 앞의 타마르 공원에서 3일 홍콩 시민들이 중국 정부에 항의하는 총파업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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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당국이 최근 대규모 ‘반송중’(중국 송환 반대) 시위를 촉발한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를 공식 폐기한다고 발표한다. 석달 동안 격화돼온 홍콩의 대규모 반송중 시위가 중대한 갈림길에 들어섰다.
홍콩 자치정부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4일 오후 송환법의 공식적 철회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홍콩 현지 언론들과 정부 소식통들이 확인했다. 현재까지 주말마다 13차례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는데, 송환법 철폐는 반중시위의 주요 요구사항이었다.
홍콩 당국은 지난 4월3일 이 송환법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홍콩에서는 송환법이 입법회를 통과할 경우, 홍콩에서 반중 활동을 한 시민들이 중국 본토로 송환될 수 있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홍콩에서는 지난 6월9일 시내 전역에서 100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홍콩 입법회는 지난 6월12일 심의를 거쳐 범죄 혐의자를 중국을 포함한 제3국으로 송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송환법을 통과시킬 예정이었지만, 시위대가 입법회 건물을 포위하면서 회의 자체를 열지 못했다. 이어진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 속에 갈등이 커지자, 람 장관은 송환법 추진 중단을 전격 선언했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은 송환법의 공식 폐기를 요구하며 최근까지 시위를 벌여왔다. 람 장관은 그동안 송환법이 사실상 사문화됐다고만 반응하며, 공식적 철회를 거부해왔다.
홍콩 당국의 송환법 폐기로 홍콩 시위는 ‘첫 성과’를 거두게 됐다. 홍콩 시민들은 지난 2014년 우산혁명 시위에서도 중국 정부로부터 하나의 양보도 받아내지 못했다.
이번 조처가 시위를 잠재울지, 아니면 더 격화시킬지는 불투명하다. 시위에 참여해온 세력들은 송환법의 폐기 외에도 캐리 람 장관 사임, 홍콩 입법회와 행정장관의 주민직선제 등을 더 내걸며, 요구 수준을 높여왔다.
더 나아가, 일부 시위대는 중국의 오성홍기 훼손 등으로 중국의 홍콩 통치를 거부하는 한편 홍콩을 식민지배한 영국의 국기를 흔들기도 했다.
그동안 홍콩 시민들의 주요 요구사항이던 송환법 폐기에 대해 중국 정부는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분석된다. 람 장관은 지난주 재계 인사들과의 회동에서 자신이 송환법을 발의해 ‘용서받을 수 없는 큰 혼란’을 야기했다며, 선택할 수 있었다면 사과하고 사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 발언은 현장에서 녹음돼, <로이터> 통신에 의해 2일 보도되면서 큰 파문을 야기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베이징 당국이 홍콩 자치정부를 완전히 장악해 조종하면서, 반송중 시위에 강경 대처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 통신은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람 장관이 위기 해소를 위해 송환법 철회 등을 포함한 방안 등을 제안했으나, 중국 정부가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홍콩 당국의 이번 송환법 철회가 베이징 당국의 승인 없이 발표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홍콩 자치정부 안팎의 저항과 최근 반중 시위로 바뀌고 있는 양상이 압력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발표 전날인 3일은 주말도 아닌 평일인데도 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또, 지난 주말을 계기로 각급 학교의 학생과 병원 등지에서 동맹휴학과 파업이 일어나는 등 시위 활동에서 반중 양상이 더 높은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친중국 입장인 홍콩 재계에서도 베이징 당국이 홍콩 시민들의 요구를 하나도 수용하지 않아 시위가 격화되면서, 홍콩 경제에 주름이 잡히고 있다는 여론이 최근 급속히 번져왔다.
중국 정부로서는 이미 사문화된 송환법의 철회를 홍콩 자치정부의 결정으로 포장하는 한편 홍콩 시민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확산되는 반중 여론을 차단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위대는 그동안 람 장관 사임 등 ‘5대 요구사항 중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된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시위를 지속해와, 이번 송환법 철회 선에서 만족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자신들의 요구가 일부라도 수용되는 것이 승리의 경험으로 작용해, 시위를 더 지속할 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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