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척얀 홍콩직공회연맹 비서장 인터뷰
“정부, 요구조건 중 단 하나도 귀 기울이지 않아
‘시위 지도부’ 체포해도 시위는 계속될 것
홍콩이 중국 정치 발전에 영감 줄 수 있기를 희망”
13주차로 접어든 홍콩 ‘반송중’(중국 송환 반대) 시위 열기가 여전히 뜨겁다. 경찰의 강경진압과 중국 당국의 무력개입 경고에도 홍콩 시민들은 쉽게 ‘싸움’을 멈출 기세가 아니다.
<한겨레>는 홍콩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명인 리척얀(62) 홍콩직공회연맹 비서장을 만나 홍콩 반송중 정국의 현 상황과 전망을 들어봤다. 리척얀 비서장은 인터뷰에서 반송중 시위의 “종착역이 있을 수 없다”며 “중국 경제 발전에 영감을 줬던 홍콩이 중국 정치 발전의 영감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리 비서장은 학생운동을 거쳐 노동운동에 투신한 ‘홍콩 운동권’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는 1989년 천안문(톈안먼) 민주화 운동 당시 홍콩에서 지지활동을 벌였고, 지원금 전달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다가 유혈진압 직후 구금되기도 했다. 진보 정치인으로 입법회 의원(1995~2016)을 지낸 그는 노동당 부주석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는 8월31일 오전 11시께부터 홍콩 완차이 지역의 한 카페에서 1시간30분 남짓 진행됐다.
―‘8·31 집회’를 불허한 당국이 조슈아 웡 등 명망가들까지 전격 체포했다. 시민들의 반발을 예상했을 텐데.
“지난 석달간 시위에서 폭력적 상황이 연출되긴 했지만, 절대다수 시민은 평화시위를 벌였다. 집회와 행진을 불허해도 시민 대부분은 예정대로 참여한다. 행진을 금지하면 여기저기서 각자 알아서 움직인다. 그러다 보면 결국 폭력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어쩌면 그게 당국의 목적일지도 모른다.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을 부추겨, 보다 강압적인 방식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명분을 만들려고 한 것 같다.
특히 ‘8·31 집회’는 2014년 8월31일 중국 당국의 홍콩 행정장관 간선제 유지 결정에 대한 항의 시위다. 시위의 목적이 처음부터 중국 정부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으니, 당국이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초기에 정부가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일정한 양보를 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국 당국이 실제 무력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홍콩 당국도 사실상 ‘계엄령’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중국 정부도 탱크와 군대를 홍콩으로 보내기 싫은 거다. 중국으로서도 손해고, 딱히 그럴 필요도 없다. 홍콩에 인접한 선전에 군대가 모여 훈련을 하는 건 괜히 겁을 주려는 것뿐이다. 홍콩 경찰도 3만명이나 된다. 홍콩 정부의 ‘계엄령’ 카드도 역시 위험하다. 자유로운 국제무역과 금융 중심지란 홍콩의 명성에 치명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 자유를 억압하고 통신까지 검열할 수 있게 된다면, 홍콩은 더 이상 홍콩이 아니게 된다. 결국 중국 당국이 현 상황을 얼마나 위협적이라고 판단하는지가 중요하다. 현재로선 그 단계가 아니라고 본다.”
―반송중 시위가 석달째로 다가서고 있지만, 시민들의 참여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2014년 우산혁명이 끝난 뒤 홍콩 사회는 한동안 잠잠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분노가 사라진 건 아니다. 홍콩 정부와 중국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쌓이다 ‘범죄인 인도 조례’란 스파크가 일면서 폭발한 것이다. 6월9일 첫 집회 때 100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홍콩 방식의 생활’이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시위의 동력이 유지될 수 있었던 몇 가지 계기가 있다. 6월12일 입법회 포위 시위가 첫번째 전환점이다. 그날 경찰은 과잉·유혈진압을 해놓고 되레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했다.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인 셈이다. 결국 입법회 회의는 열리지 못했고, 정부는 조례 제정 추진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시민들은 처음으로 ‘승리감’을 맛봤다.
7월12일 지하철 위안랑역에서 벌어진 ‘백색테러’ 당시 괴한들은 시위대뿐 아니라 주민까지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 당시 경찰 관계자가 괴한들과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이 또한 시위에 불을 댕긴 계기였다. 계속되는 경찰의 무분별한 강경대응과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당국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고.”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일부 시위대의 과도한 물리력 사용에 대한 우려도 나오는데.
“과거에도 홍콩에서 장기간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때면 이른바 ‘폭력 대 비폭력’ 논쟁이 있었다. 이번 시위에선 둘 사이에 일종의 ‘화해’가 이뤄졌다. 절대다수는 평화적 시위를 하고, 청년들은 ‘행동’으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맨 앞에서 싸우는 친구들과 수많은 대중이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고 있다. 경찰의 폭력·과잉 진압에 똑같이 분노하고 있다. 청년들도 다치기 전에 먼저 물러서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분명한 건 경찰의 폭력과 시위의 강도는 정비례한다는 점이다.”
―여전히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반송중 시위는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종착역이 있을 수 없다. 정부는 시위대의 요구조건 가운데 단 하나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의 목표는 민주주의이고, 이는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재 반송중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은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문제를 찾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테면 여성들은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성희롱 문제에, 의료계는 폭력진압과 과도한 최루탄 사용 문제에, 노동조합은 불법해고 문제에, 법률가는 인권적 측면에, 교회는 평화 옹호에 집중하고 있다. 중산층의 적극적인 참여로 시위 지원금(6·12 기금) 모금이 7천만홍콩달러(약 108억원)를 훌쩍 넘어섰다. 모두가 자기 역할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대안이 만들어지면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 모든 걸 정부가 막을 수 있을까?”
―흔히 이번 시위의 특징으로 ‘지도부가 없다’는 점을 꼽는다.
“모두가 각자 자기 역할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특정 지도부가 있을 수 없다. 분야별로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인물도 제각각이다. 그러니 이른바 ‘시위 지도부’를 체포해도 시위는 계속될 것이다. 지도부가 없는 것의 장점은 모두가 자기들 역할을 자발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조율이 안 된다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시민들이 시위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게 바로 반송중 시위의 힘이다. 맨 앞에서 행진을 이끄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조차도 시민들은 ‘지도자’로 여기지 않는다. 시민들을 대신해 당국과 조율을 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
―반송중 시위는 결국 ‘한 국가 두 체제’(일국양제)로 모아지는 것 같다.
“일국양제는 홍콩 반환에 앞선 중국의 약속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절대로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 권위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체제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신뢰하지 못하고, 개입하고, 위협할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가 홍콩을 내버려둘 때도 있지만, 일이 생기면 언제든 다시 개입한다. 가치와 체제가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홍콩 기본법(헌법 격)에 이미 권위주의적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가 포함돼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이 홍콩을 내버려둘 수 없다는 점에서 일국양제는 지키지 못할 것을 알고도 한 약속일 뿐이다.”
―반송중 시위가 길어지면서, 기업 쪽에 대한 중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그것 자체가 일국양제의 근간을 파괴하는 행위다. 홍콩은 정치적 개입과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게 기업 활동이 가능한 곳이었다. 그런데 중국 당국이 반송중 시위에 참가한 승무원은 중국행 근무를 할 수 없게 하라는 식으로 항공사 쪽에 직접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항공업계뿐 아니다. 중국 쪽과 거래를 하고 있는 회계법인과 은행 등 금융권에서도 직원들의 소셜미디어 활동까지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홍콩으로 외국 자본이 들어오겠나?”
―중국 당국의 다음 선택은 뭘까? 홍콩의 자치는 2047년 끝난다.
“중국이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10년 뒤나 20년 뒤쯤이면 홍콩을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여길 것이다. 일국양제도 사라질 것이다. 최선은 중국이 조금씩이라도 변해가는 것이다. 어느 쪽으로 갈지는 알 수 없다. 1980년대 홍콩은 중국 개혁개방에 영감을 줄 수 있었다. 선전의 경제발전도 홍콩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고, 선전 모델이 중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이제 홍콩이 중국에 정치적 영감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홍콩을 정치적으로 자유롭게 하고 높은 수준의 광범위한 자치를 하게 하면 어떨까? 홍콩인 절대다수는 독립을 원하는 게 아니라 높은 수준의 민주적 자치를 누리기를 원한다. 홍콩식 생활방식이 유지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중국과 공존할 수 있다. 중국 경제 발전에 영감을 줬던 홍콩이 중국 정치 발전의 영감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홍콩/글·사진 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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