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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법 반대 시위가 열린 8월25일, 홍콩 신계 지역 스카이워크 쇼핑몰 일대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했다. 경찰은 시위대에 최루탄을 쏘았고, 시위대는 화염병을 던졌다. 시위대는 “광복홍콩, 시대혁명”을 외치며 카이청운동장에서 췬완공원까지 행진했다.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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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홍콩 시위 현장
“광복홍콩 시대혁명” 외치며 행진
우산혁명 계승한 ‘반송중’ 시위대, 채증 피하려 우산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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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법 반대 시위가 열린 8월25일, 홍콩 신계 지역 스카이워크 쇼핑몰 일대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했다. 경찰은 시위대에 최루탄을 쏘았고, 시위대는 화염병을 던졌다. 시위대는 “광복홍콩, 시대혁명”을 외치며 카이청운동장에서 췬완공원까지 행진했다.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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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홍콩 시대혁명!”(光復香港, 時代革命)
집회 구호로는 역시 4·4조, 8음절이 제격이었다.
8월25일 일요일, 홍콩 ‘반송중’(중국 송환 반대) 집회의 구호가 처음 울려퍼진 건 오후 2시30분께 카이퐁과 인접한 쇼핑몰 ‘메트로플라자’에서였다. 검은 옷을 입은 한 시위 참가자가 외치자 일부 시민이 구호를 따라 외쳤고, “홍콩 파이팅”이라는 추임새를 넣어 장단을 맞췄다.
이날 집회는 카이청운동장에서 오후 3시에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세차게 내리자 시위 참가자들이 인근 쇼핑몰에 몰려들었다. 평화로운 주말 오후의 느낌이 물씬 풍겼던 메트로플라자는 오후 2시가 지나면서 긴장감이 맴돌았다. 빨강, 노랑 등 각양각색의 옷을 입고 나왔던 사람들은 오후 2시가 지나면서 쇼핑몰 안 화장실에서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마스크를 썼다.
20대 청년층 선두, 고령층은 뒤에서 지원
가방에서 검은 운동화를 꺼내 갈아신는 사람들도 있었고, 안경을 바꿔 쓰는 사람들도 보였다. 일부는 착용하고 있던 반지와 귀걸이, 시계를 빼서 가방에 넣었다. 이동 과정에서 마주치는 감시카메라와 경찰 채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조처다.
오후 3시가 되자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사람이 우산을 쓰고 거리로 나와 행진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카이청운동장에서 3㎞ 떨어진 췬완공원이었다. 거리행진 선두 그룹에서 뒤쪽 그룹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였다.
시위대는 “오대요구 결일불가”(五大訴求 決一不可)를 외치기도 했다. 송환법 완전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 독립조사위원회 설치, 체포된 시위 참가자 전원 석방과 불기소,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홍콩 행정장관과 입법회 직선제 실시 등 다섯 가지 요구사항을 속히 수용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였다. 일부는 오른쪽 눈에 안대를 쓰고 나와 “(잃어버린) 눈을 되돌려놔라”고도 요구했는데, 지난 8월11일 침사추이 지역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한 여성 시위자가 경찰이 쏜 고무탄에 눈을 맞아 실명 위기에 처한 것에 항의하는 목소리였다.
시위 참가자 대부분은 20대 전후의 학생이었다. 이들은 6월 이후 계속된 반송중 집회를 무력으로 강경 진압한 경찰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반송중 집회에 다섯 번째 참여한다는 홍콩대 대학원생 양시아(25·가명)가 말했다. “법을 지키고 홍콩 시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홍콩 경찰이 시위대에 최루탄과 고무탄을 쏘는 것에 큰 분노를 느낀다. 시위 참가 학생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위협을 받고 있다. 다섯 가지 요구사항을 홍콩 정부가 수용할 때까지 집회에 계속 나올 계획이다.”
젊은 시위대 무리 사이에서 고령층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대부분 집회에서 선두에 나서지는 않고 평화롭게 시위대를 따라 행진하면서 구호를 외쳤다. 에어컨 수리공이라고 밝힌 한 시민(60)은 이렇게 요구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홍콩에서 열린 시위에도 참여했다. 그때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했다. 중국은 일국양제의 약속을 어기고 홍콩 일에 간섭하는 것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직선제 약속을 이행하라.”
경찰 실탄 경고사격 소리가 옆 골목까지
평화롭게 진행될 것처럼 보였던 시위는 오후 4시가 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됐다. 복면으로 얼굴을 거의 가린 청년들이 우산 끝으로 보도블록을 파냈다. 지나가던 시위대는 우산을 펴서 보도블록을 파내는 청년을 가려줬다. 파낸 보도블록을 능숙하게 반으로 깬 청년들은 공사 현장에서 가져온 드럼통에 모아 담았다. 경찰에게 던지기 위한 것이었다. 일부 청년은 공사 현장에서 가져온 여러 가지 철골 구조물로 차단벽을 만들었다. 식기 세제를 차단벽에 뿌려 나중에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달려오는 경찰들이 넘어지도록 준비하는 모습도 보였다.
2014년 경찰이 시위 진압을 위해 뿌리는 최루액을 막기 위해 우산을 썼던 홍콩 시위대는 ‘우산혁명’을 계승하는 ‘반송중 시위대’답게 우산을 혁명적으로 사용했다. 비를 막는 것뿐만 아니라, 두들겨서 소리를 낼 때도, 감시카메라가 나오면 얼굴을 가릴 때도, 날아오는 최루탄을 막을 때도 우산을 썼다.
오후 5시께 췬완공원 옆, 광장에 다다른 시위대는 무장하고 기다리는 홍콩 경찰과 대치했다. 해산 명령이 적힌 구호를 손팻말로 들어 보이던 경찰은 시위대가 해산하지 않자 5시30분쯤 최루탄과 고무탄을 쏘며 진압을 시작했다. 방독면을 쓰지 않은 시위대는 비명을 지르며 앞다퉈 상가 건물 안으로 몸을 피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시위대는 기침하고, 눈물을 흘렸다. 실신해 부축받고 옮겨지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방독면을 쓴 선두 시위대는 노련하게 경찰이 쏜 최루탄과 고무탄을 막아내며 반격했다. 준비한 벽돌을 던지고, 화염병도 던졌지만 비가 온 이날 화염병 중 절반은 불이 붙지 않았다. 경찰이 쏜 최루탄을 집어 경찰 쪽으로 던지거나, 잽싸게 고깔 모양 로드콘으로 최루탄을 덮은 뒤 물을 부어 끄기도 했다.
9월에도 시위는 줄줄이
경찰은 저녁 6시30분께부터 시위대를 진압했지만, 시위대는 더욱 강하게 반발했다. 이날 홍콩 당국은 집회 장소 인근 콰이퐁, 췬완 등지의 지하철역을 오후 1시30분께부터 잠정 폐쇄했다. 시위대는 “해산하라면서 해산할 길을 터주지 않았다”고 항의했다. 저녁 8시30분쯤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실탄 경고사격을 했다. 다른 골목에 있었던 기자에게도 들릴 정도로 총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경찰은 췬완 지역 점포를 부수던 시위대를 진압하려는 경찰에게 시위대가 쇠막대기를 휘두르며 저항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경찰이 무릎을 꿇고 막아서는 시민에게 총을 겨누며 발길질하는 모습이 촬영돼 공유되면서 홍콩 경찰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맨몸으로 경찰의 총에 맞선 중년 남성은 ‘피스톨 맨’으로 유명해졌는데, <한겨레21> 취재 결과 그는 홍콩 종교계 지도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집회는 밤 11시께 삼서이보 경찰서 앞에서 마무리됐다.
반송중 시위대와 경찰의 갈등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집회를 수차례 주도한 민간인권전선(민전)은 8월31일 오후 3시 홍콩 도심인 센트럴 차터가든에서 대규모 거리시위를 계획했지만, 홍콩 경찰은 이 시위를 불허할 것을 발표했다. 경찰 당국이 집회 완전 불허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8월31일은 2014년 8월31일 홍콩 행정장관 간접선거제가 결정돼 우산혁명을 촉발한 날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9월에도 1일부터 홍콩국제공항 교통방해 운동, 총파업과 동맹휴학이 줄줄이 예고돼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는 계속될 전망이다.
홍콩=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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