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히토시 일본총합연구소 국제전략연구소 이사장과 강창일 한일의원연맹 회장이 20일 오전 부산 헤운대구 벡스코(BEXCO)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19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 <미-중 전략경쟁과 동아시아: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개회와 도전> 에 참석해 '한-일관계, 평화, 동북아 안정'을 주제로 대담을 하고 있다. 부산/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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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
대담 | 다나카-강창일 ‘한일관계 개선’
동북아 평화 위해 한일관계 개선
한목소리 냈지만 현안엔 이견
다나카 일 국제전략연구소 이사장
한일관계 악화, 내셔널리즘 충돌 탓
강제동원도 ‘1965년 협정’ 존중을
강창일 한일의원연맹 회장
‘한국은 비우호국’ 일 자기모순
강제동원, 외교협상으로 해결해야
다나카 히토시 일본총합연구소 국제전략연구소 이사장과 강창일 한일의원연맹 회장이 20일 오전 부산 헤운대구 벡스코(BEXCO)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19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 <미-중 전략경쟁과 동아시아: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개회와 도전> 에 참석해 '한-일관계, 평화, 동북아 안정'을 주제로 대담을 하고 있다. 부산/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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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히토시 일본총합연구소 국제전략연구소 이사장. 부산/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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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일 한일의원연맹 회장. 부산/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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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2002년 북-일 정상회담 성사 뒷얘기
“한반도 평화 돕겠다 300시간 북 물밑설득”
다나카 히토시 일본총합연구소 국제전략연구소 이사장은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내각에서 2002년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년 동안 외무성 차관으로 일했다. 다나카 이사장은 일본 외교정책의 주요 설계자로 일본의 동아시아 외교정책, 특히 대북 관계 정책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했다.
20일 심포지엄에서는 2002년 당시 북한과 30여 차례 비밀 교섭 끝에 북-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뒷얘기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다나카 이사장은 “그때 (북한과 일본의) 과제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며 “당시 북한 쪽을 만나 ‘일본은 오랫동안 한반도에 많은 피해를 주는 존재였다. 이제부터 한반도 평화 구축에 도움이 되려고 한다’고 지속적으로 설득했다”며 “1년 동안 30번 정도, 한 번에 10시간 이상 얘기했으니까 총 300시간이나 물밑에서 대화했다”고 말했다.
북한 쪽과 접촉하면서 한국인의 ‘한’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북한 협상 상대가 만날 때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일본 이름이 있다. 일본은 강제동원뿐만 아니라 이름까지도 빼앗아갔다’고 말했다. 여러 얘기를 들으면서 한국인이 느끼는 감정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결국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있었음에도 2002년 9월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하고, 과거 청산과 북-일 수교 등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담아 ‘북-일 평양선언’을 발표했다. 북-일 간 사상 첫 정상회담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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