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22 21:14
수정 : 2019.08.2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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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 내용을 보고받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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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한-미 관계 파장
8·15 경축사 등 대화 노력에도
무시 일관한 일본에 ‘정면승부’
미국은 한-일 갈등 해소 뒷전
방위비 인상·미사일 배치 압박
한-일 군사정보 공유 토대로
MD 구축하고 지역동맹 발전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균열’
“한·미·일 안보협력 미래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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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 내용을 보고받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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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동북아 질서의 핵심인 한-미-일 안보협력의 상징적 장치에 균열이 생겼다. 한-미-일 안보협력의 수준은 이번 한-일 갈등으로 인한 상처를 안은 채 2016년 11월 지소미아 체결 이전으로 돌아갔다. 일본의 대응에 따라선 그보다 더 후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일 관계도 갈등의 긴 터널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 한-일 장기 갈등의 터널로 지소미아 종료는 일본의 보복적 조처에 더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단호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청와대는 “일본이 한국을 ‘안보상 믿을 수 없는 나라’로 취급하며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가)에서 배제하면서, 일본이 한국을 안보우호국으로 보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도 그런 나라와 민감한 군사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일본을 향해 대화의 신호를 보냈는데도, 일본이 이를 무시하고 대화를 거부한 데 대해, 정면승부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으로 해석한다. 수출 규제를 주도한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 정부의 협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고, 21일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일본 정부는 기존 입장만을 되풀이했다. 남기정 서울대 교수는 “일본이 타협할 수 있는 여지를 전혀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해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라는 예상보다 강한 카드로 반격한 것”이라며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역사 문제에서 한-일 관계 재구축의 장기적 과정으로 진입하는 신호탄이라면 지소미아 종료는 한-일 관계가 지정학적 재구축의 장기적 과정에 진입하는 출발점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 기업들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화해 의사가 있었는데도 일본 정부가 나서 배상도 막으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당분간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한국이 지소미아를 종료하기로 함에 따라 일본이 확전에 나설지도 주목된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조처를 시행하는 28일 개별허가를 받아야 하는 품목을 늘리면서 강경대응할 수도 있다. 양기호 교수는 “일본이 ‘한국은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며 기술 패권을 이용한 한국 때리기를 강화할 수도 있다”며 “이 경우 한국도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해상 방류 문제를 더욱 강하게 제기하고, 도쿄올림픽 방사능 안전 문제를 국제적으로 제기하면서 강대강 대응으로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 동북아 질서에도 파장 정부의 이번 결정은 한-일 관계를 넘어, 한-미 관계, 나아가 동북아 질서에도 파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는 동맹에 대한 책임과 존중을 요구하는 경고라고도 할 수 있다. 한-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한국의 노력을 방관하고, 방위비 분담금 인상, 호르무즈해협 파병, 중거리 미사일 배치 카드로 한국을 압박하는 데 대한 문재인 정부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미국은 최근 방한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통해 한국이 지소미아를 유지하길 희망했으나, 한-일 갈등은 두 나라가 풀어야 할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일본은 미국과 함께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면서 한-일 관계를 수직적인 관계로 바꾸려 했고, 미국은 한국을 인도-태평양 전략에 포섭하는 데만 몰두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한반도 주변 구도가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따라 재편되는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의미도 있다. 미국의 기존 동북아 전략은 미국이 중심축이 되고 한국과 일본이 바큇살로서 미국과 동등한 관계를 맺는 구조였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서는 한국이 아세안 국가들과 함께 하위 파트너로 재편되는 흐름이 진행되고 있다.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한-일 군사정보 공유를 토대로 한-미-일 미사일방어체제(MD)를 구축하고 궁극적으론 이를 지역동맹으로 발전시킨다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도 균열이 생겼다. 미국이 지금까지 추진해온 한-미-일 안보협력이라는 전략적 방향이 한-일 갈등 속에서 중대한 기로에 섰음을 의미한다. 한 군사전문가는 “지소미아의 다음 단계로 지목돼왔던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도 물건너갔다”며 “한-미-일 안보협력의 미래가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한-일 갈등의 성격이 애초부터 한-미-일 안보협력 구상과 양립할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에 근거한 군국주의화와 한-일 협력은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방대학원 교수는 “한-미-일 안보협력은 한국과 일본을 활용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북한의 위협에 맞서려는 미국의 구상에 기초한다”며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이 강화될수록 한국의 반발도 거세지는 내적 모순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의 균열에 대처하는 숙제가 부상했다. 중국, 러시아, 북한 등 한-미-일 안보협력을 불편하게 여기는 주변국들은 이미 그런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군 관계자는 “한-일 갈등이 노출되자 중국과 러시아가 동해에서 군사훈련을 벌이고, 러시아 군용기가 영공을 침범한 것도 이런 허점을 파고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강문 선임기자, 박민희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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