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이번 한-일 갈등은 전례 없는 양상이다. 과거사를 둘러싸고 일본이 공세적인 건 처음이다. 과거사 갈등이 경제·무역갈등으로 확대된 것도 이전에 없던 일인데, 이젠 한술 더 떠 안보 분야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걸 보면 우리 주변 환경이 의미심장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진단에 기꺼이 ‘한 표’ 던지고 싶어진다. 한-일 갈등이 어디로 갈지는 아직 추측의 영역이다. 많은 이들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거부한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과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의 압류 국내 자산이 현금화되는 시기를 주목하고 있다. 이들 자산이 경매를 거쳐 징용 피해자의 위자료로 지급되면 일본 정부가 추가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 정부도 맞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되면서, 한-일 관계는 더 엄중한 시기를 맞게 될 개연성이 크다. 때늦은 얘기지만, 문제 해결 방법이 아주 없던 건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문제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한-일 간 상충하는 판단을 어떻게 절충하느냐에 있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됐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우리 대법원은 “불법적인 강제징용 문제는 민사적·재정적 채권·채무관계를 정리한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정반대의 판결을 내놓고 있다. 한-일 간 입장 차이가 확연해서 당장 좁혀질 여지가 없는 게 현실이라면, 차라리 이를 두고 파열음을 낼 게 아니라 우선은 차이를 인정하는 건 어땠을까? 그래서 한국의 주장은 한국의 영토 안에서 효력을 갖고, 일본의 주장은 일본의 영토 안에서 효력을 갖도록 놔두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한국 법원의 압류 대상은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신일철주금의 경우 현재 압류가 가능한 자산은 제철 부산물 재활용업체 ‘피엔알’(PNR)의 지분 30%(주식 234만주)라고 한다. 설립 자본금(390억원) 기준으로 130억원이며, 자산총액(2018년 12월 기준 707억원)을 기준으로 하면 235억원이다. 이 가운데 주식 8만1075주(약 4억원)가 압류된 상태다. 한 해 매출액 60조원이 넘는 신일철주금으로선 큰돈이 아니다. 미쓰비시는 가치 평가가 어려운 상표권과 특허권 등 지식재산권이 압류돼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한-일 관계 악화를 볼모로 정면으로 반발할 만큼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광복 74돌을 맞아 8월15일 서울 태평로 서울광장에서 열린 ‘일본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대회’에 참가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와 시민들이 주한 일본대사관까지 평화행진을 벌였다. 이춘식 할아버지(오른쪽 휠체어 앉은 이)와 양금덕 할머니(왼쪽 휠체어)는 일본 정부의 사죄와 일본 기업의 배상을 요구하는 시민 1만7천 명이 참여한 서명지(맨 왼쪽 보퉁이 두 개)를 직접 전달하려고 빗속에서 기다렸지만, 일본대사관 쪽에선 끝내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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