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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6 19:22 수정 : 2019.08.17 00:10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 셋째)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위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 셋째)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위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일본의 수출 규제로 ‘소재·부품 국산화’라는 오래된 과제가 다시 주요 경제 현안으로 떠올랐다. 30여년의 긴 역사를 지닌 이 해묵은 숙제는 애초부터 ‘극일’이라는 목표와 맞닿아 있었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64메가 디램을 개발한 게 1992년이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최강국인 일본을 추월한 쾌거였다. 하지만 그 시절 소재·부품은 일본에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었다. 일본 경제평론가 고무로 나오키가 이런 한국 경제의 현실을 ‘가마우지’에 빗댄 것도 그즈음이다.

국산화 필요성을 절감한 정부는 1990년대 초반 자동차와 전자부품 연구원을 잇달아 설립하고, 반도체 관련 18개 핵심기술 개발을 위한 ‘일렉트로-21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하지만 큰 성과를 보지는 못했다. 당시 개발 대상이었던 반도체 소재 실리콘 웨이퍼는 지금도 일본 수입 비중이 높다. 외환위기 와중이던 1999년, “핵심 부품산업이 취약한 한국은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일본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의 비판은 또 한번 자극제가 됐다. 이에 진노한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대일적자 감축과 소재·부품 전문기업 육성을 목표로 한 산업정책이 시동을 걸었다. 2001년 특별법이 만들어졌고, 4차에 걸친 소재·부품 발전 기본계획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특별법 시행 10년 만인 2011년 이런 평가를 내놓는다. “소재 발전이 취약해 대일 무역적자의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엘시디 등 아이티(IT) 분야 핵심 소재는 여전히 대부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딱 들어맞는 평가다. 실제로 지금 일본이 필수 소재 한두 가지만 수출을 중단하면 반도체 공장이 멈춰 설 수도 있는 당혹스러운 현실을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의 소재·부품 산업은 세계 5대 강국에 오를 정도로 외형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내용을 따져보면 좀 다른 그림이 나온다. 지난해 소재·부품 수출액은 3162억달러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전자부품(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한 분야에 무려 44%(1386억달러)가 집중됐다. 핵심 소재와 장비는 수입에 의존한 채 특정 분야 부품에 기대어 소재·부품 산업의 덩치를 키워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출이 늘수록 대일 무역적자도 증가하는 익숙한 구조가 되풀이됐다. 수출 대기업 성장의 낙수효과가 점점 약해지고 있는 우리 경제 현실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왜 이렇게 됐을까? 대기업 쪽에선 세계 최고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국제 경쟁의 불가피한 결과라는 설명이 나온다. 자유무역에 기반한 한·중·일 분업구조에 발맞춰, 우리가 잘하는 중간재(부품)에 집중하고 소재와 장비는 일본 등으로부터 최고의 품질을 찾아 수입하는 게 효율적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선 대-중소기업 상생 생태계 부재,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 정책 실패, 기초과학 역량 부족 등도 원인으로 지목한다.

문제는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수출 규제에서 볼 수 있듯이, 자유무역 선도국들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소재·부품이나 기술을 전략무기로 활용하면서 기존 교역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일본(소재·부품·장비)→한국(전자부품 등 중간재)→중국(완제품)으로 이어지는 동북아 밸류체인은 중국이 소재·부품의 자체 생산에 적극 나서면서 이미 수년 전부터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었다. 기존 분업구조에서 통했던 효율성 논리를 재점검하고, 이전보다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국산화라는 과제에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더불어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고부가가치 소재의 산업적 잠재력에도 주목할 시점이다.

일본 언론인 이즈미야 와타루가 쓴 <전자재료왕국 일본의 역습>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소재산업은 인내의 산업이다. 개발에 10~15년이 걸리는 일이 다반사다. 일련의 장기 작업은 일본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 인내할 수 있는 체력과 지력, 전략이 없으면 소재업체로서 이름을 내걸 수 없다. 당장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대만과 한국이 이 분야에 진입할 수 없는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100년 이상의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 일본 소재산업에 대해 자부심 가득한 이 책이 나온 게 2006년이다. 1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뼈아픈 지적이다. 결국 장기적 안목과 철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우리는 과연 이번엔 오래된 과제를 제대로 풀어낼 수 있을까.

김수헌 경제팀장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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